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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30 (목)

“탄두에 충돌 흔적 없고 수목 우거져 조준사격도 불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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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대뼈 부위 사입구도 원형 유지/사격훈련부대와 이동부대 다르고/상호 일면식 없어 원한관계 배제/숨진 도로 주변 70여개 탄흔 발견/병력 통제·사격장 관리 허술 심각

국방부 조사본부는 9일 육군 6사단 이모 일병(사망 후 상병 추서)의 사망 사건 원인을 도비탄(跳飛彈·특정 대상에 맞고 튕겨나온 총알)이 아닌 유탄(流彈)에 의한 것으로 결론내렸다.

이 일병 아버지 이모(50)씨는 “군 당국이 이제라도 납득할 수 있는 수사결과를 내놔서 그나마 다행”이라고 말했다. 이씨는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누가 쏜 유탄인지 알고 싶지 않다”며 “누군지 알게 되면 원망하게 될 것이고, 그 병사 또한 얼마나 큰 자책감과 부담을 느낄지 알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어 “비록 내 아들은 군 사격장의 어처구니없는 안전불감증 탓에 희생됐지만, 부모로서 더 이상의 희생과 피해를 원치 않는다”며 “다시는 군대에 보낸 아들과 젊은이들이 희생되는 일이 없도록 해달라”고 당부했다.

세계일보

지난달 26일 육군 제6사단 이모 일병이 직선거리로 날아온 유탄에 맞아 숨진 사건과 관련, 총탄이 발사된 곳으로 추정되는 강원 철원군 동송읍 금학산 인근 군부대 사격장.세계일보 자료사진


◆도비탄 아닌 유탄으로 결론 내린 배경


사건 초기부터 군의 초기 수사 결과 발표와 달리 도비탄이 아닌 직격탄에 의한 사망 가능성이 제기됐다. 도비탄으로 병사가 사망에 이른 경우가 워낙 드물고 사격장과 직선거리로 340m 밖의 전술도로를 지나던 이 일병의 오른쪽 광대뼈를 뚫고서 관자놀이에 총탄이 박혔기 때문이다. 도비탄에 의한 사망으로 잠정 결론을 내렸던 육군의 자체 조사에 축소·은폐 의혹이 계속된 이유다.

조사본부는 그동안 사망 원인과 관련해 도비탄, 직접 조준사격, 유탄의 3가지 범주로 나눠 수사를 진행했다. 조사본부는 탄두에 충돌한 흔적과 이물질 흔적이 없고 숨진 이 상병의 우측 광대뼈 부위에 형성된 사입구(총탄이 들어간 곳)가 원형을 유지하고 있는 점 등으로 미뤄 도비탄은 아닌 것으로 판단했다.

직접 조준사격의 가능성도 작다고 봤다. 먼저 사격장 끝단 방호벽에서 사건 발생장소까지 약 60m 구간은 수목이 우거져 있고, 사선에서 사건 장소까지 거리는 약 340m로 육안에 의한 관측 및 조준사격이 불가능한 점을 이유로 들었다. 사격훈련부대가 이동하는 병력의 계획을 사전에 알 수 없어 이 일병 이동시간에 맞춰 살인 또는 상해 목적으로 조준사격을 계획한다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여겼다. 사격훈련부대와 이동하던 부대가 다르고 병력 상호 간에 일면식이나 개인적 원한관계가 없는 점 등도 고려됐다.

유탄이 이 일병 사망의 직접적 원인으로 꼽힌 이유로는 가스작용식 K2 소총의 특성상 사격 시 소총의 반동이 있고, 사격장 구조가 200m 표적지 기준으로 총구가 2.39도만 상향 조준돼도 총탄이 사건 발생 장소까지 직선으로 날아갈 수 있다는 점이 유력한 증거가 됐다. 여기에 사격장 사선으로부터 280m 떨어진 방호벽 끝에서부터 다시 60m 떨어져 있는 사건 장소 주변의 나무 등에서 70여개의 탄흔이 발견된 점 등도 유탄에 의한 사망에 무게를 실었다.

◆허술한 사격장 관리

충격적인 사실은 군부대 사격장 관리가 얼마나 허술한지를 단적으로 드러냈다는 점이다. 조사본부 수사를 통해 이 일병이 총탄을 맞고 숨진 사건 장소 주변의 나무 등에서 70여개의 탄흔이 발견되면서다. 이전 사격훈련 때도 빗나간 유탄이 표적지 뒤편 방호벽을 넘어 자주 나무를 관통했다는 것인데 이 일병이 숨진 전술도로는 그야말로 죽음의 도로나 마찬가지였다는 의미다.

군 관계자는 “해당 군이 방호벽 뒤편 나무 등에 있는 탄흔이 있다는 점을 모르고 있었을 리 없다”면서 “이번 사고는 예고된 참사”라고 말했다.

이번 수사에서는 이동하던 병력은 진지공사 후 도보로 복귀하던 중 사격 총성을 듣고도 병력이동을 중지하거나 우회하지 않고 그대로 지나갔다. 사격훈련부대는 사고장소인 영외 전술도로에 경계병 투입 때 명확한 임무를 부여하지 않아 병력이동을 통제하지 못했다.

사격장 관리부대는 유탄 차단대책을 강구하지 못했고, 사격장과 피탄지 주변 경고간판 설치부실 등 안전대책이 미흡했다. 사단사령부 등 상급부대에서는 안전성 평가 등을 통해 사격훈련부대와 영외 전술도로 사용부대에 대한 취약요소를 식별하지 못하는 등 조정·통제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것으로 밝혀졌다. 총체적인 사격장 관리 부실이었던 셈이다.

육군은 운용 중인 190개 사격장에 대한 특별점검을 통해 안전 위해요소를 파악해 보완할 예정이다.

박병진 군사전문기자, 박연직 기자

worldp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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