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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다양한 배경 지닌 판사 모여야 약자 포용 판결 내릴 수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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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짬】 소토마요르 자서전 번역 참여, 조인영 판사

한겨레

조인영 판사


“풍부한 경험을 갖춘 현명한 라틴계 여성이 그런 경험이 없는 백인 남성보다 나은 판단을 할 수 있습니다. (…) 우리의 젠더와 출신국은 다른 판결을 만들어낼 수 있고, 만들어낼 겁니다.”

2009년 미국 첫 히스패닉계 연방대법관으로 임명된 소니아 소토마요르(63)는 2001년 제2연방 항소법원 시절 캘리포니아 버클리대 강연에서 이후 자신의 행보를 예견이라도 한 듯 이렇게 말했다.

법관 구성에 다양성이 필요하다는 그의 소신은 고스란히 펜촉에 담겨 판결문으로 남았다. 2014년 미 연방대법원이 대입전형에서 소수집단 우대 정책을 폐기하는 취지의 판결을 내렸을 때 그가 다수의견을 반박하며 내놓은 58쪽의 반대의견은 여전히 미국 사회에서 성경처럼 회자된다. 미국 최초의 히스패닉계 여성 연방대법관의 일대기를 담은 <소토마요르, 희망의 자서전>(조인영·현낙희 옮김, 사회평론)이 지난 8월 나왔다.

소토마요르의 자서전을 국내에 소개한 이들은 법원 최대 연구모임인 ‘젠더법연구회’ 소속 판사들이다. 번역에 참여한 19명의 판사는 소토마요르가 여성에 대한 편견과 싸우는 과정에 특히 주목했다. “대부분의 경우 나는 모든 남자들에게 차선책 정도였고, 그래서 작은 칭찬에도 크게 감동받았다.”, “법정 경위가 여자 판사를 ‘스위티’라고 불렀다는 말도 들은 적 있다.” 소토마요르는 여성, 특히 이혼 경험이 있는 여성 법조인으로 겪은 차별을 여과 없이 토해낸다.

번역에 참여한 조인영(40) 서울중앙지법 판사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2003년, 갓 임관한 조 판사는 법정에 들어서기 전이면 꼭 머리를 질끈 묶고 뿔테 안경을 챙겼다. 20대 여성 판사를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분위기에서 ‘판사답게’ 보이기 위해 낸 고육책이다. “한참 민사사건 조정을 끝내고 나니 한 소송관계인이 ‘그런데 판사님은 언제 오시나요?’라고 묻더군요.” 육아휴직 중인 조 판사는 19일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 근처에서 기자와 만나 “여성이 그림자처럼 여겨지는 사회”에 대한 경험을 털어놨다.

‘젠더법 연구회’ 소속 판사 19명
미 최초 히스패닉 여성대법관
일대기 ‘희망의 자서전’ 번역 출판
220년 걸린 히스패닉 대법관


“평범한 개인 너무 애쓰지 않아도
일 가정 양립하는 사회 됐으면”


사정은 10여년이 지나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지난해 말 연구회가 발표한 법원 성평등 실태 조사를 보면, “여자 판사들은 야근을 덜 한다”, “출산·육아휴가로 피해 줄 거면 판사로 지원하지 마라” 등 차별적 언어가 여전히 남아 있다. 여성 법관 비율은 수년째 40% 벽을 넘지 못하고, 고법부장 이상 고위법관 비율은 5%대에 그친다. 지난해 대법원 법원행정처 내에서도 업무 강도가 상당하다고 알려진 기획조정심의관으로 일하며 번역에 참여한 조 판사는 “내가 실패하면 ‘여자 판사는 역시 안 된다’는 편견을 증명하는 것 같아서 더 악착같이 일했다”면서도 “모두 ‘슈퍼우먼’이 되길 기대하기보다 소심하고 평범한 개인이 너무 애쓰지 않아도 일과 가정의 양립이 가능한 사회가 조성되는 게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다”고 했다.

“남자와 비슷한 능력을 갖고 있으면서도 동일하게 진급하기 위해선 더 오래 기다려야 했던 여성들을 많이 봤다. 그들은 동일하게 진급하기 위해 남자보다 두배로 일해야 했다.” 소토마요르의 이 지적은 ‘여성’에 ‘소수인종’을 바꿔 넣어도 여전히 유효하다. 미국에서 히스패닉계 연방대법관이 나오는 데는 220여년이 걸렸다. 유색인종은 범죄의 가해자가 될 확률이 높다는 편견 때문에 배심원에서 배제되기도 한다는 게 소토마요르의 지적이다. 그는 평생에 걸쳐 겪은 ‘이민자 2세’로서의 고충, 가난의 경험 등을 애써 감추거나 극복의 대상으로 미화하지 않는다. 외려 ‘소수자’로서의 정체성이 자신의 가치관과 판단에 영향을 미쳤다고 인정한다. 책이 소토마요르가 연방대법관이 된 2009년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검사와 변호사를 거쳐 연방법원 판사가 되는 1992년에 마침표를 찍는 것도 이 때문이다.

“판사는 알파고가 아니잖아요. 무색투명한 판사를 기대하기보다는, 다양한 가치와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합의를 통해 약자와 소수자를 포용하는 판결을 내놓을 수 있다고 봐요.”

한겨레

소니아 소토마요르 미 연방대법원 대법관


평균치에서 멀고, ‘우등함’과는 인연이 없었던 소토마요르 같은 이들이 진입했기에 미국 연방대법원이 대개 시대를 한 보 앞서가는 판결을 내놓을 수 있었다는 진단이다. 국민 4명 중 1명(27%, 경제협력개발기구 2015년 발표자료)만이 사법제도를 신뢰하는 우리 사법부의 현실도 ‘서울대 법대 출신 50대 남성 대법관’이란 천편일률적 구성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다양한 생각을 가진 사람이 중요한 판단을 내리는 자리에 1명이라도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무게를 갖는가를 소토마요르 대법관은 자신의 삶과 판결로 보여주고 있다”고 조 판사는 덧붙였다.

현소은 기자 soni@hani.co.kr 사진 조인영 판사 제공, 미 연방대법원 누리집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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