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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취재파일] '울먹 구형' 나창수 검사와 검사의 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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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창수 검사

지난 22일 나는 '인천 초등학생 살해 사건'의 주임검사였던 나창수 검사를 인터뷰했다. 나 검사가 언론 인터뷰에 응한 것은 처음이었다. 단독인터뷰 내용이 취재파일로 올라가자 생각보다도 반응이 더 뜨거웠다. 한 포털 사이트에는 댓글이 1천 7백 개 넘게 달렸다.
(** 후배인 원종진 기자가 인터뷰를 받아쳐서 정리하는 수고를 했다.)

▶ [취재파일][단독 인터뷰] "아이한테 미안해 가슴졸였습니다"…초등생 살인사건 '울먹 구형' 나창수 검사 인터뷰

댓글에서 드러난 사람들의 감정은 주로 '놀라움'과 '낯섦'이었다. "대한민국에 이런 검사도 있었구나." "이런 검사는 처음 봤다."는 취지의 댓글이 가장 많았다. 평범한 부모의 사정에 공감하고, 억울함을 풀어주기 위해 눈물까지 흘려가며 법정에서 치열하게 싸우는 검사의 모습이 대단히 낯설게 느껴진 것 같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검사의 이미지와 달랐기에 나 검사의 이야기가 신선하고 감동적이던 것이다.

● 낯설게 느껴진 '검사의 본업'

사람들이 더 익숙하게 느끼는 검사의 이미지는 권력기관의 일원으로서의 모습이다. 영화나 드라마에 나오는 것처럼 청와대 하명을 받아 누군가를 "밑창까지 탈탈 터는" 모습이나, 반대로 부패한 재벌과 정치인 같은 거악(巨惡)을 척결하는 정의로운 칼잡이의 모습이다. 어느 쪽에도 특별할 것 없는 길고 지루한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보통사람의 이익을 대변하기 위해 눈물을 흘리는 검사는 없다.

그러나 특별할 것 없는 사건을 가지고 평범한 이들의 이익을 위해 싸우는 것이야 말로 검사의 본업이다. 검찰청법 4조는 검사의 직무를 "공익의 대표자"라고 규정하고 있다. 국가가 규정한 형사사법제도 안에서 평범한 시민들의 이익, 즉, 공익을 위해 대표로 싸우는 것이 검사의 역할이다. "공익의 대표자로서 정의와 인권을 바로 세우고 범죄로부터 내 이웃과 공동체를 지키라는 막중한 사명을 부여받은 것"이라는 '검사 선서'의 두 번째 문장도 같은 뜻이다.

본업에 충실한 것을 두고 대중이 낯설게 느끼며 열광하는 현상 자체가 검찰의 비극이다. 물론 나 검사같이 보통사람을 위해 정성을 다하는 검사들은 결코 적지 않다. 가장 많은 검사들이 배치된 전국 검찰청의 형사부는 매일 매일 이런 일을 하고 있다. 그러나 검찰 조직 내부에서든 외부에서든 보통사람의 이익을 대표하는 형사부 검사를 조직의 핵심으로 간주하는 분위기는 그동안 없었다. 형사부는 열심히 해서 빨리 성과를 낸 뒤 떠나야 하는 곳이거나, 표창줄 때 특별히 챙겨서 사기를 복돋아야 하는 곳이었다. 언론도 관심을 두지 않았다. 나창수 검사가 맡은 '인천 초등생 살해 사건'은 사건의 잔혹성 때문에 언론의 주목을 받은 매우 특별한 경우였다. 검찰도 언론도 본업에는 관심이 없었던 셈이다.

● 지금은 서민들의 억울함에 관심을 주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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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검찰이나 법무부 조직이 본업에 큰 관심이 있는지 의심하게 하는 사례도 있다. 재심에서 무죄가 확정된 익산 약촌오거리 살인 사건 담당 검사들에 대한 조치가 그렇다. 2000년 약촌오거리 택시 기사 살인 사건이 발생했을 때 평범한 소년을 경찰이 강압적 수사로 억울하게 범인으로 몰았지만 첫 번째 주임검사는 이를 걸러내지 못했다.

그로부터 3년 뒤 지금은 '진범'으로 알려진 용의자를 경찰이 붙잡았는데도 두 번째 주임검사가 경찰이 신청한 압수수색영장을 기각했고 진범은 풀려났다. 이 사건의 사실상 마지막 주임검사는 살인자로 몰려 감옥에 있던 소년과 진범을 대질신문까지 한 뒤, 진범을 무혐의 처분하고 미제로 남아있던 사건을 종결했다.

그러나 약촌오거리 사건에 대한 재심 무죄가 확정되고 진범에게 1심에서 유죄가 선고된 뒤에도, 그리고 검찰개혁을 외치는 정부가 출범한 이후에도 이 사건 담당 검사 중 2명은 누가 봐도 도드라지게 영전했다. 과연 거물 정치인과 관련된 사건이거나, 민주화 운동 등과 관련된 시국 사건이어도 법무부와 검찰이 이런 조치를 취했을까?

약촌오거리 사건 재심을 맡았던 박준영 변호사가 정치권과 검찰, 언론을 향해 "서민들의 억울함에는 어떤 관심을 주고 있는가"라고 외친 것에는 이유가 있다. 전국 검찰청의 많은 형사부 검사들의 노고와는 별도로, 검찰은 평범한 사람들의 억울함과는 별 관계가 없는 조직이라는 이미지, 힘 없는 사람을 위해 눈물을 흘리며 법정에서 싸우는 검사가 예외적이라는 이미지가 형성된 것에도 이유가 있다.

-관련기사

▶ '좋은 자리'로 옮긴 '약촌오거리' 검사…檢 사과 의구심

● 본업에만 충실한 검사와 검찰 개혁

앞서 김명수 대법원장이 대법원장 후보자로 지명됐을 때 판사의 본업인 재판만 해온 판사가 후보자가 된 것에 의미가 있다는 취재파일을 쓴 적이 있다. 본업에만 충실해도 엘리트 조직의 수장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 법원 조직을 넘어 사회 전체에 긍정적 메시지를 준다는 내용이었다.

검찰도 마찬가지다. 특수부나 공안부 검사 역시 본업이 아닌 일을 한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공안이나 특수처럼 힘 있는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그들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위치에서 근무한 적이 없어도, 형사부 검사로서 "공익의 대표자"라는 검사의 본업에만 충실해도 인정받을 수 있다는 당연한 이야기가 현실이 되어야 비로소 검찰이 달라질 것이다.

최근 문무일 검찰총장은 개혁 과제로 형사부 강화를 제시하고, 약촌오거리 사건의 재심을 맡았던 박준영 변호사를 검찰개혁위원회 위원으로 위촉하는 파격을 선보였다. 검찰이 정말 달라질지 앞으로 지켜볼 일이다.

나창수 검사 인터뷰 기사에 달린 댓글 중에 이런 내용이 있다: "검사님 지금과 같은 맘 잊지 마시고 검사님 같은 분이 출세하셨음 합니다." 본업에만 충실한 검사가 출세하는 조직, 그리고 출세한 검사가 본업을 잊지 않는 조직으로 바뀐다면 검찰은 더이상 개혁이 필요 없는 조직이 될 것이다.

[임찬종 기자 cjyim@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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