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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핀란드 간 교사들, 15년째 "숙제 안 내요?" 똑같은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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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세상]

혁신 교육현장 연수 보냈더니 인터넷 검색 수준으로 다녀온다

수십명 우르르, 주제도 두루뭉술… 이틀 일정에 하루는 문화재 관람

핀란드 교사 "매번 같은 질문… 한국, 연수 경험도 공유 안 하나"

일본, 소수 정예로 한 주제 집중 예습하고 질문거리 미리 보내

최소 일주일 머물며 밀착 연수

공예 수업을 하던 핀란드 헬싱키의 한 초등학교 교실에 지난 5월 A교육청 소속 연수단 20명이 찾아왔다. 한 초등 교사가 바퀴 달린 교실 의자를 가리키며 "남학생들이 장난치다 다치지 않느냐"고 물었다. 또 다른 교사는 "이런 (공예) 수업은 성적을 어떻게 매기느냐"고 질문했고, 초등 교사와 함께 방문한 특수 교사는 "장애 아동도 한 교실에서 같이 수업받느냐"고 물었다.

쏟아지는 질문에 대답을 이어가던 핀란드 학교 교감은 "질문 주제가 너무 다양해 한 가지를 충분히 이야기할 시간이 없다"고 했다. 연수단 소속 중·고교 교사들은 뒷짐 진 채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연수 기획 여행사에 일임

핀란드 교육 현장은 한국 교육가들에게 인기가 높다. 지난 2002년 핀란드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국제학업성취도 평가(PISA)에서 1등을 차지하면서 '교육 강국'으로 떠오르자 15년간 한국 연수단 방문이 줄을 잇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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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란드 헬싱키의 한 초등학교에서 학생들이 모여앉아 수업에 참여하고 있다. 매년 20~30차례에 걸쳐 한국의 교원, 공무원, 정치인 등이 선진 교육을 배우기 위해 핀란드로 연수를 가지만‘수박 겉 핥기’식 방문에 그친다는 지적이 나온다. /헬싱키=정경화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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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20~30차례에 걸쳐 초·중등 교원, 교육부·교육청 공무원, 국회·지방의회 의원 등 수백명이 핀란드를 방문한다. 문제는 15년 전이나 지금이나 '판박이 연수'라는 점이다.

7박 9일짜리 북유럽 교육 연수는 보통 이렇게 진행된다. 보통 20~30명 정도로 구성된 연수단이 핀란드·덴마크·스웨덴 등 3개국을 한꺼번에 둘러본다. 많게는 100여명이 한꺼번에 올 때도 있다. 연수 비용은 1인당 300만~400만원 수준. 앞뒤 하루씩은 비행기에서 보내고, 한 나라마다 머무는 시간은 이틀쯤 된다. 하루는 문화 탐방 일정으로 왕궁, 성당, 박물관 등을 돌아보고, 나머지 하루는 학교 수업을 참관하는 식이다.

저녁에는 현지 교민이나 교육공무원 간담회가 열린다. 초·중등 교사, 교장·교감 등 관리자, 교육행정직 공무원이 섞여 있다보니 관심 분야가 서로 달라 한 가지 주제로 깊이 있게 토론하는 것 자체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핀란드에서도 교사가 인기 있는 직업인가요?" "정말 숙제를 내주지 않나요?" "왜 무상급식을 하나요?"… 인터넷으로도 쉽게 답을 찾을 수 있는 질문이 대부분이다.

한국 교사와의 간담회에 여러 차례 참석했던 핀란드 교사는 "한국 선생님들은 매번 똑같은 걸 물어본다. 한국에 돌아가면 연수 내용을 공유하고 토론하지 않느냐"고 되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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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수단이 한번 다녀가는 데 최소 수천만원이 든다. 그런데 이런 전문적인 교육 연수 프로그램을 여행사에 짜도록 일임하는 경우도 있다. 교사 연수를 사실상 여행사가 책임지도록 한 것이다.

매년 고만고만한 연수단 방문이 이어지자 최근 핀란드 수도권 일대 학교와 국가교육위원회 등은 대규모 교육 연수단으로부터 방문료를 받기 시작했다. 헬싱키 인근 베드타운인 에스포(Espoo)시 학교들은 지난 8월부터 방문 비용 300유로를 받기로 일괄 결정했다. 올해 초 다녀간 또 다른 교육 연수단은 핀란드 국가교육위를 두 시간 방문하는 데 무려 1400유로(약 190만원)를 지불했다.

◇일본은 깊이있는 주제 정해 집중 탐구

일본 교사들도 핀란드 학교를 자주 방문한다. 그러나 연수 모습은 사뭇 다르다. 연수단 규모가 10명 안팎으로 작고, 핀란드에만 최소 1주일에서 한 달을 머무른다. 연수 주제도 우리와 수준 차이가 난다. '서술형 시험에서 공정한 평가는 어떻게 이루어지나' '중학생 대상 직업 교육 프로그램과 학부모·지역사회의 협력' 등 구체적이고 전문적이다.

핀란드 교육을 전공한 일본인 전문가를 통해 핀란드 교육의 기본적인 철학과 시스템 등에 대해선 예습을 하고, 방문할 교육기관에 질문거리를 미리 보내는 것도 우리와 차이점이다.

다쿠미 야다 이위베스퀼라(Jyvaskyla) 교육대학원 박사과정생은 "철저한 예습을 마친 뒤 학교를 방문한 일본 교사들은 핀란드 교사들과 한 주제에 대해 집중적으로 토론한다"면서 "일본 여행사는 연수단이 계획한 일정에 맞게 숙박과 교통, 식사만 담당한다"고 말했다.

일본 문부성에서는 매년 교사 혹은 예비 교사 20여명이 핀란드 학교에서 1~2학기에 걸쳐 보조 교사로 일하며 교육 현장을 밀착해 들여다보도록 하는 장기 연수 프로그램도 실시하고 있다.

류선정 한국-핀란드 교육연구센터장은 "교육 연수의 목적을 분명히 하고 주제를 좁혀야 단순 견학 수준을 넘어 핀란드 교육가들과 깊이 있는 교류를 나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헬싱키(핀란드)=정경화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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