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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2 (수)

[이슈헌터] 정진학교로 가는 1시간21분 버스 안에선... 등굣길 동행 취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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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서구 가양2동에 사는 이 씨와 지적장애학생 지원이가 학교 갈 준비를 하고 있다./사진=정용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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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원이 엄마가 딸과 함께 쓰는 소통 노트를 펼쳐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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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지원이가 서로 손에 글을 쓰며 장난을 치고 있다.

"지원아, 일어나 학교 가야지"
새벽 6시30분, 지원이 엄마(이현정·47)가 지원이(이지원·19·여)를 깨웠다. 여느 학생들과 마찬가지로 지원이는 아침에 일어나는 게 쉽지 않다. 특히 이날은 학교에서 등산을 가는 날이라 더욱 힘들어했다. 다만 엄마가 “일요일”이라고 말하자 금세 얼굴을 폈다. 엄마는 군에 있는 친오빠를 만나는 날인 오는 일요일을 상기시켜 지원이의 기분을 풀어준 것이다.

20일 오전 <파이낸셜 뉴스>는 강서구 가양2동에 사는 고등학교 3학년 지적장애 학생 지원이와 구로구 궁동 서울정진학교까지 등굣길을 동행했다.

지원이는 일어나자마자 화장실부터 갔다. 엄마도 지원이가 화장실에 있는 동안은 아무 소리 하지 않았다. 그리곤 아침 밥상에 앉은 지원이에게 조금만 먹자고 했다. 혹시나 가는 도중 용변 때문에 버스를 세울까 걱정이 앞서기 때문이다.

엄마는 지원이가 집어든 크림빵도 다시 넣었다. 빵을 좋아하는 지원이는 어느 날 통학버스를 세워 급히 화장실을 가야 했다. 아침에 먹은 빵이 원인이었다. 엄마는 “버스에서 한 명이 내리면 다른 학생들도 우르르 따라 내려요”라면서 “그때 생활 지도사 선생님이 힘드셨을 거예요”라고 말했다. 그 뒤로 아침에 빵을 먹이지 않는다.

■ 공진초등학교와 담장 하나 사이 두고 있는 지원이네 집
지원이네 아파트는 공진초와 담장 하나 차이를 두고 있다. 지원이가 사는 가양4단지 아파트에선 공진초와 공진중이 훤히 내려다 보였다.

지원이는 오빠와 같이 공진초와 공진중을 나왔고 이때까지만 해도 학교까지 도보 5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공진초 너머로 유명 건설사의 A브랜드 아파트 단지가 보였다. A브랜드 아파트에선 가구당 500원씩을 관리비에서 수금해 공진초터 특수학교 설립 반대 운동을 펼치기도 했다.

엄마는 5년 전부터 공진초에 특수학교가 들어선다기에 고등학교를 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결국 바램은 이뤄지지 않았고 중학교에 이어 재수 끝에 고등학교 과정을 정진학교로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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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원이네에선 공진초와 공진중학교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그 뒤로 유명 건설사의 A브랜드 아파트 단지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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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양2동의 한 아파트 단지 안에 걸려있는 특수학교 설립 반대 현수막

■ 앞 좌석 치기, 소리지르기… 지루함을 이겨내기 위해 생긴 나쁜 버릇
지원이가 정진학교 통학버스에 올라 탔다. 생활지도사 윤 씨가 지원이를 맞았고 버스엔 이미 두 명의 학생이 앉아 있었다.

정진학교 3호차는 강서구와 양천구 일대를 돈다. 버스 기사는 약 29km 거리를 운행하는데 정진학교의 통학버스 7대 중 가장 긴 운행 거리와 시간이라고 설명했다. 이날 버스는 총 13번의 정차지를 거쳐 17명의 장애학생을 태웠다.

지원이는 7시 24분께 두번째 정차지에서 버스를 타 12번의 정차지를 뺑뺑 돌아 8시 45분께 학교에 도착했다. 버스에서 1시간 21분을 머물러야 했다. 뒷 정차지에서 승차하는 아이들보다 몇 배는 피곤할 법하다.

버스 안 모습은 어떨까. 가는 동안 주로 남학생들이 가만히 앉아 있기 힘들어했다. 한 학생은 연신 앞 좌석을 주먹으로 쳤다. 또 다른 학생은 이따금 노래를 부르거나 소리를 질렀다. 윤 씨는 “현수(가명)는 앞 좌석을 주먹으로 치고 승원이(가명)는 차에서 노래를 부르는 버릇이 생겼어요”면서 “계속 주의를 주지만 쉽게 고쳐지지 않네요”라고 밝혔다.

그렇게 주의를 주기를 몇 번, 또다시 승원이가 노래를 부르자 자리로 간 윤 씨는 “승원아 차에서 노래 부를 때는 어떻게 해야 한다고? 작게! 노래방에서는 크게!”라며 타일렀다. 하지만 승원이는 이후에도 몇 번 더 주의를 받았다.

가뜩이나 집중력이나 참을성이 부족한 아이들이 스스로 지루함을 이겨내기 위해 생긴 버릇인 셈이다.

학교에 도착했다고 등교가 끝난 건 아니다. 7대의 통학버스가 학교에 모두 도착할 때까지 앞서 온 학생들은 버스 안에서 대기했다. 각반 선생님은 모두 운동장으로 나와 7대에서 우르르 나오는 학생들을 인솔해 들어갔다. 다행히 이날은 늦는 버스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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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로구 서울정진학교의 통학버스에 지원이가 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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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학교의 7개 통학버스에서 장애학생들이 등교를 하고 있다. 한 학생이 학교를 가지 않겠다며 부모와 선생님이 실랑이를 벌이고 있다.

■ 고등학교를 특수학교로 보냈더니…
이번 강서구 특수학교 주민 토론회 사태는 애초에 장애 학생의 '교육권' 부족이 불러온 사태다. 현재 강서구에는 645명의 특수교육대상자가 거주하고 있고, 204명의 장애학생 만이 특수학교를 다니고 있다. 교육부에 따르면 전국 전체 학생 중 장애학생 30%만이 특수학교를 다니고 있다.

지원이 엄마는 “가끔 어린 학생을 둔 이웃 엄마가 아이를 일반학교와 특수학교 중 어딜 보내야 하나 물어요”라고 말을 꺼냈다. 이어 그는 “하지만 그때마다 할 말이 없어요. 가고 싶지만 갈수가 없기 때문이에요”라고 밝혔다. 보내고 싶어도 보낼 수 없는 사정을 잘아는 엄마들이 장거리 통학을 감수할 수 밖에 없는 이유다.

지원이 엄마는 지원이가 특수학교를 다닌 뒤로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지원이가 특수학교로 간 뒤로 두 달간은 얼마나 뛰어놀았던지 집에 오면 곯아 떨어지기 일쑤였어요"라면서 "학교도 잘 안 빠지고 성격이 굉장히 활발해졌어요”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사실 일반 학교에선 그렇지 않았는데, 지금은 마음껏 뛰어노는 모습만 봐도 너무 기뻐요”라고 덧붙였다.

지원이는 특수학교를 다니면서 좋아하는 것도 찾았다. 한날 지원이 엄마는 담임 선생님과의 통화에서 지원이가 조리 시간과 제과제빵 수업을 제일 좋아하고 잘한다는 말을 들었다. 믿기지 않았던 엄마는 몇 번을 되물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집에선 요리를 시킬 생각도 못했는데 학교에서 수업을 통해 스스로 적성을 보인다고 하니 걱정을 한시름 놓는다.

이렇듯 장애학생들은 특수학교에서 실생활에 꼭 필요한 것들 배울 수 있다. 예를 들면 수공예, 분리수거, 옷 개기, 전기·불 사용법 등 이런 것들이다. 등산과 노래 부르기 등 다양한 문화·스포츠 활동도 할 수 있다. 일반인이 당연하다 여기는 것들이 장애를 가진 학생에겐 가르쳐줘야 할 것들이다.

다만 현행 특수교육법과 특수교육 전문가들은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같은 공간에서 교육하는 ‘통합교육’이 올바른 방향이라 입을 모은다. 지원이 또한 초등학교에 이어 중학교에서 일반 학생과 통합교육을 받았으며 고등학교 과정에서부터 특수교육을 받고 있다.

서울정진학교 김춘예 교장은 “정진학교의 모든 반 정원은 현행 법정 120% 상태다. 정진학교가 주변 네개 구를 통괄하고 있어 장애학생을 더 받아들이고 싶어도 다 못 받아들이는 형편이다”라고 말했다.

이어서 “만약 공진초 터에 학교가 생기면 강서구와 양천구 일대의 학생들이 가까운 곳에서 학교를 다닐 수 있고, 여기도 이 지역 학생들을 더 많이 받을 수 있어 한결 여유가 생긴다”라며 기대감을 보였다.

demiana@fnnews.com 정용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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