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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2 (일)

마지막 '창업 1세대' 김준기의 퇴진..'이근영의 동부號' 과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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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경계영 양희동 기자] 창사 이래 처음 총수를 떠나보낸 동부그룹은 술렁였다. 비록 불명예스러운 이유로 퇴진했지만, 반세기 동안 동부그룹을 이끌면서 ‘흥망성쇠(興亡盛衰)’를 함께 한 김준기 회장의 전격 퇴진을 바라보는 직원들의 눈에는 아쉬움이 가득했다.

김 회장은 산업화 시대를 겪은 국내 주요 그룹 총수 가운데 사실상 마지막 남은 창업 1세대로 꼽힌다.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 등 4세 경영인까지 전면에 등장한 상황에서 김 회장은 1969년 미륭건설을 창업한 이래 꿋꿋이 현장을 진두지휘한 ‘뚝심’의 경영인이다.

◇건설서 시작해 반도체, 금융, 농업 등 영역 넓혀온 동부

김 회장은 21일 사임의 변을 통해 “최근 제가 관련된 사건으로 물의를 일으킨 것에 대해 사과드린다”며 “제 개인의 문제로 인해 회사에 짐이 되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해 오늘 동부그룹의 회장직과 계열회사의 대표이사직에서 물러나겠다”고 밝혔다.

이로써 김 회장은 1969년 미륭건설을 창업후 49년간 굳건하게 지켜온 그룹 총수 직에서 스스로 내려왔다. 상습 성추행 혐의로 여비서로부터 고소 당했다는 경찰 발표가 나온 지 이틀 만이다. 동부그룹의 핵심 인사들도 사임 발표 직전까지 인지하지 못했을 만큼, 전격적으로 내려진 결정이었다.

김 회장은 1970년대 중동 건설 붐을 타고 미륭건설을 빠르게 성장시켰다. 또 건설업을 통해 벌어들인 자금으로 한국자동차보험(현 동부화재)을 인수해 외형을 키웠다. 금융뿐 아니라 철강, 반도체, 석유화학, 농업 등 사업 다각화에 나서면서 60여개 계열사를 거느린 그룹을 일궈냈다. 2013년에는 총자산 17조1000억원의 재계 서열 13위 그룹으로 올라섰다.

하지만 1997년 설립한 동부전자(현 동부하이텍)가 IMF 외환위기의 직격탄을 맞으면서 그룹이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다. 당시 동부전자는 대만, 싱가포르 업체와의 경쟁에서 뒤처진 데다 대규모 차입에 따른 이자 부담이 커지면서 경영난을 피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김 회장은 사재를 출연하면서도 끝내 동부하이텍은 포기하지 않았다. 이때부터 그의 이름 앞에는 ‘뚝심’이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동부그룹의 사세는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급격하게 꺾였다. 업황 불황에 1조3000억원을 들였던 동부제철 전기로 사업은 실패로 돌아갔고 동부건설 등 비금융 계열사는 재무적 어려움을 겪었다. 이후 동부그룹은 동부제철, 동부건설, 동부익스프레스 등 제조업 계열사를 팔아야 했다.

이 과정에서 평생 동부를 일궈왔던 김준기 회장의 스트레스도 극에 달했고, 결국 건강 악화로 이어졌다. 정확한 병명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김 회장은 간, 심장, 신장 등이 편치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김 회장은 2015년 초 신년사에서는 “지난 반세기 동안 땀 흘려 일군 소중한 성과들이 구조조정 쓰나미에 휩쓸려 초토화되고 있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수년간 구조조정 홍역을 치른 동부그룹은 동부하이텍의 실적 개선과 금융 계열사의 실적 호조를 발판삼아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던 찰나였기에 김 회장의 퇴진이 더욱 아쉽다는 평이다.

◇‘금융 전문가’ 이근영 신임 회장, 향후 동부 미래는

동부그룹은 김 회장의 후임으로 이근영 동부화재 고문을 선임했다. 현재 동부화재 금융연구소 상무로 근무하는 김 회장의 아들인 김남호 상무가 경영권을 승계하기보다는 전문경영인 체제로 가는 것이 낫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 신임 회장은 재무부 출신으로 한국산업은행 총재, 금융감독위원장 겸 금융감독원장을 지낸 이 신임 회장은 2008년 동부메탈과 동부생명 사외이사를 맡으며 동부그룹과 처음 인연을 맺었다.

동부그룹은 향후 이 회장을 중심으로 계열사별 전문경영인에 의한 자율 책임 경영을 강화할 방침이다. 구조조정을 거치면서 재계 30위권 밖으로 밀린 동부그룹의 총수를 맡게 된 이 회장의 어깨는 무겁다.

당장 동부대우전자의 지분 매각 문제를 풀고 이를 지켜내야 하는 숙제를 떠안았다. 동부그룹이 동부대우전자를 인수할 당시 자금을 댄 재무적투자자(FI)는 내건 조건이 지켜지지 않자 동반매각청구권(드래그얼롱)을 행사키로 했다. FI는 당장 이달 말 예비 입찰을 통해 동부대우전자 매각을 추진할 예정이다.

지난 1971년부터 써오던 ‘동부’라는 사명을 ‘디비(DB)’로 전환하는 작업도 진행하고 있다. 동부그룹 계열사들은 오는 11월 계열사 별로 이사회를 열어 사명변경 안건을 승인할 예정이다. 동부그룹은 “신임 회장은 앞으로 그룹 내부 혼란을 수습해 분위기를 다잡고, 경영 쇄신에 주력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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