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대목은커녕…상경한 농민도 어민도 `빈손 귀향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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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이 약 2주 앞으로 다가온 21일 오전 서울시 종로구 광장시장은 추석 차례용품을 사려는 사람들이 별로 없어 썰렁한 분위기다. [한주형 기자]

지난 20일 저녁 사흘간의 '추석맞이 농축수산물 직거래장터'가 막을 내린 서울 광화문광장. 전남 영광에서 굴비 400두름(한 두름은 20마리)을 가지고 서울로 올라온 어민 홍성훈 씨(54)는 미처 팔지 못해 쌓아 둔 굴비 상자들을 트럭에 옮겨 실으면서 연신 한숨을 내쉬었다.

홍씨는 "굴비 10만원짜리 200두름과 6만원짜리 200두름을 가지고 올라왔지만 가져온 물량의 채 3분의 1도 팔지 못했다"며 "10만원짜리는 1만원씩 낮췄는데 20두름도 팔지 못했다"고 말했다. 예전 추석 같으면 이런 '사서 고생'도 필요 없었다고 한다. 선물과 차례상 등에 오를 굴비가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가면서 지역 내 소비 물량을 대는 것도 벅찼기 때문이다. 그러나 작년 9월 '청탁금지법'(이하 김영란법) 시행 이후 판매 직격탄을 맞았고 "서울에선 좀 낫겠지" 하는 기대감에 상경했지만 실망만 안고 돌아가게 됐다고 홍씨는 하소연했다.이날 행사는 지난 18일부터 농림축산식품부와 해양수산부,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가 추석을 맞아 지난해 김영란법 시행 이후 소비 위축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농어업인에게 판로를 제공하고 소비자에게는 우리 농축수산물을 구입할 수 있는 장(場)을 마련해주기 위한 것이다.

전국 각지에서 올라온 농축산인들이 시군별로 부스를 만들어 현지에서 생산한 농축수산물 판매에 나섰지만 법 시행 이후 사회 전반에 고급 농수산물 소비심리가 바닥으로 가라앉으면서 '추석 특수'가 사라진 판매 현장에서 만난 농어민의 표정은 한결같이 어두웠다.

정치권과 정부에서 추석 전 법 개정에 대한 소문만 무성하고 실효성 있는 대책은 내놓지 못하면서 김영란법 개정이 이제는 '희망고문'이 되고 말았다는 성토가 쏟아져 나왔다.

이날 기자가 둘러본 광화문광장 장터에서는 현장에서 선물세트 신청을 받아 택배로 배달해주는 서비스와 함께 시식코너까지 마련해 지나가는 시민들의 발길을 붙잡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모습이었다. 3일 동안 진행된 행사에서 첫날 5만원 넘는 제품이 잘 팔리지 않자 농민들은 손해를 감수하고 5만원 이하로 가격을 급히 수정해 내놨다.

aT 관계자는 "농어민들이 상품 가격을 현장에서 유동적으로 조정하는 경우가 많았다"며 "5만원 넘는 제품들의 판매가 너무 저조하다 보니 할인해서라도 파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전북 장수에서 홍삼을 만들어 파는 농민 이순옥 씨가 팔던 선물세트도 그중 하나다. 이씨는 "선물용으로 많이 팔리던 10만원대 제품들은 이제 선물용으로는 찾지 않는다"며 "법 도입 이후 지난 1년 동안 매출이 반 토막 나 농가들이 이제 한계치에 다다른 것 같다"고 한숨을 쉬었다.

전국한우협회가 만든 행사 부스에선 아예 선물용 한우세트를 찾아볼 수 없었다. 아무리 양을 줄여도 10만원을 넘을 수밖에 없어 가정에서 바로 소비하는 고기만 판매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발표에 따르면 김영란법 시행 이후 맞은 첫 명절인 지난 설 전후로 농축산물 선물세트 판매 실적(주요 백화점·대형마트 기준)은 전년보다 14.4% 감소했다. 국내산 농축산물 설 선물세트 판매액은 지난해 설보다 25.8%나 줄었다. 한우 판매액은 전년 대비 24.4%, 수산 판매액은 19.8% 감소했다.

추석 선물세트를 5만원 미만으로 맞추다 보니 상대적으로 저렴한 수입산을 선호하는 '국산 역차별'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국내 농축산물업계에 '명절 대목'은 옛말이 된 것이다. 실제 5만원에 맞춘 아일랜드산 게 선물세트와 호주산 와규 세트가 추석 선물로 등장하고, 보통 12개가 기본인 사과와 배 혼합세트는 8개 세트로 출시되는 등 과거에는 볼 수 없었던 상품들이 나오고 있다.

최장 열흘에 이르는 긴 연휴로 인해 줄줄이 해외 여행을 떠나면서 차례상을 차리지 않거나 간소하게 차릴 것으로 예상돼 농축수산물 판매는 더 위축될 전망이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지난 18일 발표한 '2017년 추석 성수기 농축수산물의 소비 출하 및 가격 전망' 자료에 따르면 추석에 차례상을 차리겠다고 답한 소비자는 71.2%로 전년 대비 3.2%포인트 하락했다. 예법에 따라 차례상을 제대로 차리겠다는 소비자는 35.1%로 전년 대비 12.5%나 줄었다.

이에 따라 추석 성수기 사과 평균 도매가격은 평년 대비 15% 하락한 2만4000~2만7000원(5㎏ 기준), 신고배 평균 도매가격은 18% 떨어진 2만~2만3000원(7.5㎏ 기준) 선에서 각각 형성될 것으로 예상됐다.

[박은진 기자 / 유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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