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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문 대통령이 던진 직접민주주의, 어디까지 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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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성한용 선임기자의 정치막전막후 162

국회서 열린 직접민주주의 토론회 열기

“국민의 적극적 정치참여 의지가 진화의 동력”

“민(民)의 요구로 대의제 권력지형 자체 변화”

“직접민주주의로 오히려 대의제 민주주의 강화”

“독재자나 무책임한 정치인의 책임전가 우려도”



한겨레

지난 8월20일 문재인 대통령 취임 100일 대국민 보고대회가 열렸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마무리 발언에서 직접민주주의를 언급해 화제가 됐습니다. 대략 이런 내용입니다.

“국민은 주권자로서 평소에 정치를 그냥 구경만 하고 있다가 선거 때 한번 행사하는 이런 간접민주주의로는 만족하지 못하고 있다. 그렇게 한 결과 우리 정치가 낙후됐다고 생각하고 계신 것이다. 그래서 촛불집회처럼 정치가 잘못할 땐 직접 촛불을 들어서 정치적 의사표시를 하고, 댓글을 통해 정치적 의사표시를 하고, 정당의 권리당원으로 참여하고, 또 정부의 정책도 직접 제안하고, 그것을 반영해줄 것을 요구하고, 이런 직접민주주의를 국민께서 요구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도 이런 국민의 집단지성과 함께 나가는 것이 성공의 길이라고 생각한다. 온라인, 오프라인 가리지 않고 끊임없이 소통하는 노력을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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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8월 20일 오후 청와대에서 열린 문재인정부 출범 100일기념 국민인수위원회 대국민 보고대회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한겨레 김경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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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의 직접민주주의 발언에 대해 일부 언론 사설이 대의제 헌법 정신에 어긋난다고 비판하는 등 잠시 논란이 일기도 했습니다. 저는 문재인 대통령의 발언을 국민이 대의제에 대해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공백을 직접민주주의로 메워 민주주의를 완성해 나가자는 제안으로 받아들였습니다.

한 달 뒤인 9월19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흥미로운 토론회가 열렸습니다. 더불어민주당 정당발전위원회에서 주최한 ‘왜 직접민주주의인가?’라는 제목의 토론회입니다. 정당발전위원회는 추미애 대표가 혁신위원회를 설치하려다 당내에서 반발이 일자 정당발전위원회로 이름을 바꾸어 출범시킨 조직입니다. 추미애 대표와 가까운 최재성 전 의원이 위원장을 맡고 있습니다.

토론회가 열린 국회 의원회관 제1소회의실에는 펼침막이 걸렸습니다. ‘왜 직접민주주의인가?’라는 제목 옆에 ‘금기시 되던 직접민주주의를 본격적으로 다루는 최초의 국회 토론회’라는 설명이 붙었습니다. 대의제 민주주의를 상징하는 국회에서 직접민주주의를 주제로 한 토론회가 열린 것 자체가 이채로운 것은 사실이었습니다.

토론회 좌장은 박광온 의원이 맡았고, 문재인 대통령의 핵심 측근으로 알려진 김경수 의원이 토론자로 참여했습니다. 발제는 이정옥 대구가톨릭대 교수와 오현철 전북대 교수가 했습니다. 이정옥 교수는 사회학자이고 오현철 교수는 정치학자입니다. 토론회 내용을 간략히 소개하겠습니다. 먼저 최재성 위원장의 인사말입니다.



“대한민국은 지난 촛불혁명을 거치며 새로운 사회로 진화하는 와중에 있습니다. 특히 국민의 적극적인 정치참여 의지는 그 진화의 핵심적인 동력이 되고 있습니다. 그간 대한민국 정치가 국민의 의사를 묻고 실행한다는 대의 민주주의의 기본적인 원칙을 소홀히 해왔기에, 지금의 국민은 더욱 적극적으로 직접 참여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국민의 참여는 반헌법, 비민주적인 정권을 끌어내렸고 새로운 정부를 탄생시켰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정부에 다양한 목소리를 반영시키기 위해 국민은 다양한 정치적 의사표시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현재의 정치 현실은 그런 목소리를 적절히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런 문제의식에서 우리는 직접민주주의에 주목하게 되었습니다. 그간 직접민주주의는 물리적 한계와 포퓰리즘, 중우정치라는 이미지에 갇혀 제대로 평가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국민의 열광적인 촛불이 정권을 바꾸는 경험을 통해 우리는 직접민주주의가 생각보다 가까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밝힌 직접민주주의를 더불어민주당 안에서 구현하겠다는 강한 의지로 읽혔습니다. 이날 토론회 참석자들은 대부분 직접민주주의를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을 내놓았습니다. 첫 번째 발제를 맡은 이정옥 교수는 “민주주의는 Democracy의 번역어로 정확하게 번역하면 민치(民治)”라며 “대의제 통치 방식은 미완의 제도”라고 지적했습니다.

“촛불정국은 대의제 권력에 의해 이끌려진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민(民)의 요구가 선거라는 제도를 통해 정권교체를 가져왔고, 또한 민(民)의 요구가 헌재의 재판에도 영향을 미쳤다. 또한 민(民)은 제도권 언론이 공론 형성을 외면할 때, 다양한 독립언론을 만들어 스스로 공론을 형성하였다. 누가 만들어준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 대의제 권력지형 자체를 변화시킨 것이다. 이런 사례는 전례가 없다.”

오현철 교수는 ‘정당들의 적대 정치를 넘어 시민들의 토의민주주의로’라는 제목의 발제에서 공론조사와 시민의회를 강조했습니다.

“신고리 5,6 호기 폐기에 대한 공론조사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불러일으킬 필요가 있다. 공론조사가 유용하고 타당할 뿐만 아니라 전문가들의 전횡으로부터 전체 국민의 이익을 수호하는 방법이라는 사실을 공유하는 것이다. 발전소 건설 문제에 봉착한 미국 텍사스주에서 20년 전에 활용하여 성공한 방법임에도 불구하고 그 정당성과 효용성을 의심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기우에 불과하다.”

“헌법 개정을 위한 시민의회를 지지할 필요가 있다. 헌법이나 선거법처럼 국가의 근간과 정치체제 구도를 결정하는 중요한 법률 개정 논의를 정치인이 아닌 시민들이 주도할 때 특정 정당이나 정파에 치우치지 않고 전 국민의 관점에서 공정한 결정을 끌어내기 때문이다. 이러한 구상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개헌을 위한 시민의회 구성을 위해 정당과 시민사회의 노력이 필요하다.”

토론을 한 이관후 서강대 글로컬 정치사상연구소 연구원은 정당에서 직접민주주의를 강화할 경우 나타날 수 있는 문제점을 지적했습니다. 당내 민주주의를 강화하고 세력을 확장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당내 세력 간 갈등을 악화시키고 당내 당이 출현할 수 있는 단점이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김경수 의원은 자신의 경험을 근거로 “정당 민주주의를 강화해 권리당원을 대폭 확대하고 지역위원회와 시도당 운영에 당원들이 직접 참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제안했습니다. 김경수 의원은 직접민주주의를 풀뿌리 민주주의와 어떻게 결합시킬 것인지 고민이 필요하다고 제안했습니다.

그런데 이정옥 교수가 흥미로운 내용의 토론을 이어갔습니다. 이정옥 교수는 “서구의 사례를 살펴보면 직접민주주의 강화는 주로 보수당의 의제였다”며 “1990년대에 전 세계의 독재자들이 자기 정당화를 위해 직접민주주의 제도를 도입한 경우가 많았다”고 지적했습니다. 또 “유럽에서는 유럽연합 가입이나 브렉시트처럼 정치가들이 중요한 결정에 대한 책임을 미루는 수단으로 국민투표를 자주 했다”며 “국민의 발의권을 갖지 않는 직접민주주의는 독재자나 무책임한 정치인들에 의해 악용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정옥 교수는 “악마는 디테일에 숨어 있다는 말처럼 직접민주주의는 제도 설계에 의해 성패가 좌우된다”며, 직접민주주의의 잘못된 사례로 주민소환제를 지적했습니다. ‘사안’에 대한 문제를 ‘사람’에 대한 문제로 환치시켜 오히려 적대적인 정당정치를 증폭시킬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는 주민소환제보다는 주민들에게 발의권을 부여해 직접민주주의의 효능감을 느낄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이 바람직하다고 제안했습니다.

이정옥 교수의 지적대로 우리나라에서도 과거 독재자들이 대의제 민주주의보다는 직접민주주의를 선호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1961년 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 정권은 국가재건최고회의가 제안한 3공화국 헌법을 국민투표로 개정했고, 1969년 3선 개헌도, 1972년 유신헌법도 모두 국민투표를 해 확정했습니다. 박정희 정권은 1975년 유신헌법에 대한 신임을 국민투표로 묻기도 했습니다.

1980년 집권한 전두환 정권도 5공화국 헌법을 국민투표로 확정했습니다. 95.5%가 투표하고 91.6%가 찬성했습니다. 물론 3공화국과 유신, 그리고 5공화국 당시 모든 국민투표는 국가기관의 철저한 감시와 통제 아래 치러졌습니다.

박정희 전두환 정권과 마찬가지로 박근혜 전 대통령이 대의제 민주주의보다는 직접민주주의를 더 좋아했던 것은 우연일까요, 필연일까요?

정치학자인 박상훈 정치발전소 학교장이 9월19일 치 <동아일보>에 ‘대통령이 하지 말아야 할 일’이라는 제목으로 칼럼을 썼습니다. 박상훈 씨는 반정치주의의 폐해와 위험에 대한 칼럼을 자주 쓰는 사람입니다. 이번 칼럼에서 그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반정치주의를 조목조목 지적했습니다. 이런 내용입니다.

“권위주의에서와는 달리 민주주의에서 대통령은 국가 지도자가 아니라 정치 지도자다. 국가를 대신하는 지도자로서 정치에 지시하는 존재가 아니라, 그 스스로 정치가로서 변화를 이끄는 책임을 가져야 한다는 말인데, 박근혜 전 대통령만큼 이를 경시한 사례도 드물다.”

“재임 기간 내내 국회, 야당과 함께 일하기보다는 그 밖에서 지시하고 요구만 했다. 급기야 국회와 야당을 적폐로 몬 것은 치명적인 잘못이었다. 민주주의는 ‘법에 의한 통치’의 원리 위에 서 있고, 그런 의미에서 ‘시민 주권의 제1부서’는 대통령이 아니라 입법부라는 사실이 중시되어야 한다.”

“박정희 정권 때의 ‘구악일소’나 전두환 정권 때의 ‘사회정화’처럼 대통령이 ‘적폐청산’을 앞세운 것도 다시 생각해 볼 점이다. 이것들은 하나의 옳음만 정당화될 수 있는 정치 언어이자, 반대할 수가 없는 강요로 작용한다. 그런 점에서 다원주의를 억압하는 부정적 효과를 낳는다.”

“정치가 적폐 세력과 적폐척결 세력의 싸움으로 정의되면, 나머지 세력은 적폐옹호 세력, 방조 세력으로 단순화되게 마련이다. 자신과 가장 가까웠던 세력을 배신자로 공격하려는 열정도 제어되지 못한다.”

“이 모든 일은 결국 국민을 앞세우는 한편 대의민주주의를 부정하는 반(反)정치주의로 귀결되었다. 대통령이 20대 국회의원 총선에서 국민들에게 국회를 심판해 달라고 요청했던 것은 최악의 일이었다. 이런 무모한 일에 당당했던 건 국민의 지지가 콘크리트처럼 단단하다고 오해했기 때문이었다.”

박상훈 씨의 지적대로 권력자가 국민을 지나치게 앞세워 국회를 공격하고 나설 경우 자칫하면 대의민주주의를 부정하는 반정치주의로 흐를 수 있습니다. 그는 문재인 대통령이 그런 잘못에 빠지지 않기를 기대하며 이런 말을 덧붙였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다른 통치 모델을 보여줄까? 아니면 적폐청산을 앞세워 정치로부터 멀어지는 대통령, 국민과 직접 소통하겠다며 대의제를 우회하려는 대통령, 극성 지지자 저편에서 이미지로만 보이는 대통령이 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스스로도 돌아볼 일이 아닌가 한다.”

그러나 문재인 대통령은 박근혜 전 대통령과 전혀 다른 사람입니다.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박정희 전두환 독재와 맞서 싸웠던 사람입니다. 오랫동안 인권 변호사와 청와대 참모, 국회의원으로서 민주주의와 법치를 몸에 익힌 사람입니다.

19일 국회에서 열린 직접민주주의 토론회에서 이관후 서강대 글로컬 정치사상연구소 연구원은 “대표제 민주주의와 직접민주주의를 대립시킬 이유가 없다”며 “정치 엘리트들뿐만 아니라 일반 시민도 정치 전문성을 높여야 하는데, 직접민주주의로 시민들의 정치 전문성을 높임으로써 대표제 민주주의를 더욱 발전시킬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이관후 연구원의 의견에 동의합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헌법이 규정하고 있는 대의제 민주주의를 훼손하지 않을 것입니다. 직접민주주의로 오히려 대의제 민주주의를 완성해 나갈 것으로 예상합니다. 그는 민주주의자이기 때문입니다.

성한용 선임기자 shy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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