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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사진은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함이며 해당 기사와 직접적 연관이 업습니다 / 클립아트코리아 |
계절이 바뀔 때마다 가끔 들르는 매장에 들어서니 첫 눈에 가을 분위기가 한껏 나는 원피스가 눈에 띤다. 원피스에 어울릴 만한 스카프와 재킷을 걸쳐보며 옷 고르기에 여념이 없는데, 내 나이로 보이는 여자 고객 한분이 갈색 원피스 위에 남색 가디건을 걸치며 마음에 꼭 든다며 주인에게 계약금을 준다. 내일 다시 올 테니 찾는 사람이 있어도 팔지 말라며 주인과 약속을 하는데 얼굴이 완전 밀 빛이다. 몸은 그런대로 마르지 않았지만 목소리에는 힘이 없었다. "참, 좋으시겠다. 옷을 사주신다는 분이 있으시니..." 내심 부러운 듯 말을 걸자 "옷만 좋으면 뭘 해요. 몸은 이미 다 망가졌는데... " 그러고 보니 그녀의 얼굴에 수심이 가득해보였다. "지난 7월에 담도암 4기 진단 받았네요. 이미 임파선까지 전이가 되어 손을 쓸 수가 없다고 하는데, 몇 번 방사선 치료를 받아서 조금 좋아졌다고 옷을 사준다하네요" 세상 모든 걸 다 사준다 한들 기쁨이 없을 것 같은 그녀의 나이는 57세란다. 낙심이 가득한 그녀를 위로 했지만 그녀의 건강은 예전으로 되돌릴 수 없어 보였다. 암 선고 충격으로 무섭고 두려웠지만, 모든 걸 내려놓으니 지금은 오히려 편안하다며 억지웃음을 보이며 매장을 나갔다.
나는 그녀의 침착한 수행 앞에 잠시 넋을 잃었다. 한동안 그녀가 부려 놓은 간 삶의 무게가 내게로 전이 되어왔다. 나와 상관없는 사이인데도 언 가슴위로 슬픔이 밀려왔다. 앞으로 빠르면 몇 달, 하늘이 허락한다면 몇 년, 힘없이 쓰러질 운명이 처연하기만 하다. 모든 생물에게 죽음은 저주임에 틀림없다. 억겁의 시간 속에서 삶이란 한 순간의 찰나에 불과 한 것일까. 그녀와 같은 병으로 가족을 떠나보낸 지 어언 10년이 지났다. 마음이 핀 꽃은 빛이 바래지 않는 법이다. 그를 보낸 뒤, 한동안은 이렇게 밥을 먹어도 되는지, 이렇게 잠을 자도 되는지, 마치 갱도를 뚫으며 광맥을 찾아들어가는 광부와 같은 시간이었다. 그 슬픔은 아직도 내 주위를 천천히 맴돌며 공중으로 흩어지고 있다. 오늘 같은 이런 기분이 들 때마다 내게 허락한 것들이 있다면 아끼고 싶지가 않을 만큼 깊은 외로움이 찾아든다. 외식, 쇼핑, 여행 등 삶이 팔딱거리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찾아가 위로를 받고 싶어진다.
김민정 수필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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