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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8 (화)

자금난 몰린 한계기업, 구세주로 부상한 증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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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권사들이 신용도가 낮은 비우량 기업들의 자금을 조달해주는 구세주로 부상하고 있다. 시중은행이 기업 대출에 소극적 태도를 이어가고 있는 상황에서, 증권사들의 IB(투자은행) 사업 확대가 자금난에 몰린 기업들의 숨통을 틔워주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19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최근 이랜드리테일, 이랜드월드, 두산엔진, SK해운 등 증권사 주도로 자금조달에 성공하는 비우량기업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이랜드리테일의 경우 신용등급이 BBB로 무보증 회사채 발행이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KB증권과 캠코의 협업으로 발행에 성공해 이목을 끌었다. 이랜드리테일은 2001아웃렛 천호점을 담보로 2년 만기 회사채 500억원어치를 발행할 계획인데 캠코가 일부를 보증하고 주관사를 맡은 KB증권이 총액 인수에 나서면서 발행이 성사된 것이다. 캠코가 보증한 공모채 300억원은 캠코와 같은 AAA 등급으로 평가를 받았다. 이는 공모 방식으로, 나머지 200억원은 사모 방식으로 발행할 계획이다.

지난 8월 두산엔진의 경우 대한토지신탁을 담보권자로 하고 토지, 건물, 기계장치를 담보로 사채를 진행했다. 두산엔진은 조선업황의 부진으로 신용도가 BBB+ 등급으로 낮아졌지만 KB증권이 이에 적극 나서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KB증권은 두산엔진의 창원공장 토지와 기계장치 등의 담보가치와 두산엔진이 보유하고 있는 3800억원 규모의 두산밥캣 지분가치를 고려해 총액 인수 방식을 제안했다. 발행액의 3배에 달하는 담보를 제공함에 따라 담보부 사채는 두산엔진의 신용등급보다 한 단계 높은 A-를 받았고, 회사채 발행을 주관함으로써 자금 조달에 성공했다.

이들 기업들은 대부분 올해 들어 시중은행의 대출태도가 부정적으로 변하면서 자금난에 시달렸던 곳이다. 은행들이 충당금에 대한 위험부담과 위험가중자산을 관리하기 위해 대기업 여신을 전략적으로 축소했기 때문이다. 회사채 발행은 일부 우량기업 위주로 진행됐다. 다수의 기업들은 제2금융권 또는 담보대출 등 대체조달에 나설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증권사는 비우량 기업의 불확실성과 리스크를 완화해 부담을 덜어주고 있다. 증권사들은 크게 두 가지 방식으로 기업에 자금을 조달하고 있는데, 제2금융권을 포함해 투자자를 모집해주는 중개자가 되거나 증권사가 직접 투자하는 방식이다. 실제로는 이 두가지를 한꺼번에 진행하는 경우가 많다. 증권사가 딜을 체결하기 전에 전액을 투자자 모집에 성공할 수도 있고 일부를 증권사가 직접 계약하기로 하고 투자자 모집을 이후에 진행하는 사례도 많다. 특히 한계 기업에 대한 대출의 경우 불확실성이 크기 때문에 투자자 모집을 위해 증권사가 직접 투자에 나서는 방법을 택하고 있다

조선비즈

조선비즈DB



이랜드월드(BBB-) 역시 저조한 실적과 그룹의 과도한 차입금 등으로 복수의 신용평가사로부터 '부정적' 등급전망을 받았지만 메리츠종금증권의 역할에 힘입어 자금 조달에 성공했다. 이랜드월드는 토지와 건물을 담보로 1년 만기 담보대출을 실행, 총 530억원 규모의 자금조달에 성공했다. 이 중 130억원의 경우 ABCP(자산유동화기업어음) 기초자산으로 활용됐는데, 신한금융투자와 케이프투자증권 등 증권사의 기업금융을 통해 비교적 수월게 자금을 조달할 수 있었다.

SK해운은 'SK마리타임'과 'SK해운'으로 물적분할을 함으로써 사업을 개편하는 가운데, 지난 5월 삼성증권을 통해 총수익스와프(TRS) 방식으로 신규자금을 확보했다. TRS란 증권사가 SPC(특수목적회사)를 세워 지분을 인수한 후, 실제 투자자로부터 해당자산에서 발생하는 총수익을 받는 방식으로 투자자가 현금이 부족한 경우 유용하게 활용된다. SPC는 SK해운 지분에서 발생하는 총 수익을 손실보전 주체인 SK에 이전돼, 만기일까지 고정된 수수료를 받게 된다. 이 과정에서 SK는 삼성증권에 SK해운의 IPO(기업공개)를 보장하고, 상장이 실패할 경우 투자원금과 추가 이자까지 지급하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증권사들의 비우량 기업 자금 조달은 그동안에도 종종 있어왔던 사업이지만, 최근 수익 다각화를 목적으로 IB 사업을 강화하면서 더욱 빈번하게 이뤄지고 있다. 특히 지난해부터 증권사의 재무건전성을 나타내는 NCR(순자본비율) 규제가 수정, 더 많은 자원을 IB업무에 투입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고, 대형IB 또는 초대형 IB 육성 정책이 추진되면서 기업 금융이 활성화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박태우 삼성증권 연구원은 최근 보고서에서 주요 증권사의 대출자산 데이터를 통해 증권사의 기업 직접 투자가 증가 추세라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ABCP 우발채무에 대한 매입약정 혹은 지급보증 등이 포함돼 있는 채무보증 항목, 또는 일반자금대출 항목 등이 기업의 대체조달 수단으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 지표의 최근 3년간의 추이를 살펴보았을 때, 상위 5개 증권사 기준으로 채무보증액은 2014년 1분기 2조7000억원에서 2017년 1분기 11조3000억원까지 4배 이상 증가했다. 대출금 역시 3조원을 넘어섰다.

박 연구원은 “증권사는 발행사와 투자자 사이를 잇는 중개자로서 다양한 영업채널을 보유하고 있다”며 “기업금융 계약 체결 과정에서 증권사가 일시적으로 일정 수준 이상의 위험부담을 안게 되더라도, 다양한 위험 성향의 투자자 접촉을 통해 리스크에 노출된 비용을 덜어낼 수 있고 이 과정에서 거액 여신을 분산시키면서 투자자별 위험부담을 줄여주는 효과도 있다”고 설명했다.

조선비즈

삼성증권 제공



김유정 기자(kyj@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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