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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7 (화)

한평생 나답게 살아온 그녀, 너답게 사는 걸 고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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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펴낸 강수진 국립발레단 예술감독

'황홀감'에 무대 오르던 무용수

은퇴 후 예술감독이 된 지금도

무대에 공연 올릴 때마다 벅차

춤도 인생도 '나만의 개성' 중시

단원에게도 각자 色 살려주고파

'안무가 육성 프로젝트' 만...

이데일리

[이데일리 장병호 기자] “10대 때는 그저 발레가 좋았다. 20대 때는 무조건 열심히 했다. 30대 때는 내가 뭘 하는지 정확하게 알고 춤을 췄다. 그리고 40대가 되고서야 비로소 무대를 즐길 수 있게 됐다.”

강수진(50) 국립발레단 예술감독은 최근 출간한 책 ‘한 걸음을 걸어도 나답게’에서 발레리나로 살았던 30여 년간의 인생을 이렇게 돌아봤다. 아무리 즐거운 것도 나이가 들면서 점점 즐거움이 사라지기 마련인데 그렇지 않았다는 고백이 인상적이다.

최근 예술의전당 국립발레단 사무실에서 강 예술감독을 만나 그 이유를 물었다. 강 예술감독은 “‘황홀감’ 때문이었다”고 답했다. 무대에서 맛본 황홀감을 잊지 못해 다시 무대에 섰다는 것이다. 현역 무용수에서 은퇴한지 어느 덧 1년. 지금 강 예술감독은 무대 밖에서 또 다른 황홀감을 맛보며 ‘인생 2막’을 즐기고 있다.

△힘든 순간에도 늘 한결같이 ‘나답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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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걸음을 걸어도 나답게’는 강 예술감독이 2013년에 발표한 ‘나는 내일을 기다리지 않는다’에 이은 두 번째 에세이다. 지난해 7월 슈투트가르트 발레단 은퇴 이후 이야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강 예술감독은 “국립발레단 예술감독으로 인생의 두 번째 막을 올리면서 좋은 단원과 팀원들을 만났다. 그런 것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책을 내게 됐다”고 말했다.

책은 강 예술감독이 살아온 인생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내성적인 소녀 시절의 일화, 모로코 왕립 발레학교에 홀로 유학을 떠나게 된 사연, 슈투트가르트 발레단 수석무용수에 올라 은퇴하기까지의 과정, 국립발레단 예술감독으로서의 삶, 남편 툰츠 셔크만과 반려견 써니와 함께 보내는 일상 등이 빼곡하게 펼쳐진다.

책에 수록된 많은 에피소드를 관통하는 주제는 ‘나답게’다. 강 예술감독은 “현역 무용수였을 때도 은퇴한 지금도 책 제목처럼 언제나 ‘나답게’ 살고 있다”고 말했다. “자신만 생각하고 타인은 신경 쓰지 않는 이기적인 삶을 말하는 건 아니에요. 나만의 개성, 나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스타일을 찾아서 사는 것이죠.”

쉬운 일은 아니다. 살다 보면 때때로 마음에 들지 않는 일도 해야 한다. 강 예술감독도 그런 때가 있었다. 무용수 시절 감정 표현보다 형식적인 기교에 초점을 둔 모던 발레 작품과 만났을 때가 그랬다. 강 예술감독의 표현에 따르면 “꼭두각시가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럴 때마다 강 예술감독은 스스로 동기부여를 했다. “나와 잘 맞지 않는 작품이라도 흥미를 잘 찾아내면 재미를 발견할 수 있어요. 인생도 마찬가지죠. 사는 게 쉽지 않아도 살아갈 수밖에 없잖아요. 그러니 어떤 상황이 주어지든 지혜롭게 헤쳐 나가는 게 중요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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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발레단 더욱 빛나기 시작해”

강 예술감독은 2014년 국립발레단 예술감독을 처음 맡았을 때 “국립발레단만의 색깔을 만들겠다”는 목표를 내세웠다. 무용수로 ‘나답게’ 걸어왔듯 국립발레단도 국립발레단다워야 한다는 생각에서였다.

실제로 국립발레단은 강 예술감독 부임 이후 많은 변화와 발전을 이뤄냈다. 대표적인 것이 안무가 육성 프로젝트인 ‘KNB 무브먼트’ 시리즈다. 국립발레단 솔리트스 강효형은 이 프로젝트를 통해 안무가로 주목을 받아 올해 무용계 아카데미상으로 불리는 ‘브누아 드 라 당스’에서 안무가 부문 후보에도 올랐다. 지난 5월에는 첫 전막 발레 안무작품인 ‘수월경화_허난설헌’을 발표하기도 했다.

강 예술감독은 올해 초 예술감독으로 연임돼 앞으로 3년 더 발레단을 이끌게 됐다. 강 예술감독은 “이제는 어떤 작품을 해도 단원들이 지닌 각자의 개성이 잘 드러나고 있다”고 지난 3년간을 평가했다. 또한 “이제 더욱 빛이 나기 시작한 단원들에게 각자에게 맞는 길을 열어주는 것이 앞으로 제가 할 몫이라고 생각한다”며 앞으로의 운영 방향을 설명했다.

이제는 예술감독으로 무대 바깥에 서 있지만 무용수로 느꼈던 황홀감은 여전히 느끼고 있다. 강 예술감독은 “직원들과 소통하면서 작품을 선정하는 과정부터 단원들의 연습을 거쳐 오케스트라, 무대 세트와 함께 모든 것이 하나가 돼 공연으로 올라갔을 때는 무대에 섰을 때와는 또 다른 황홀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신작 ‘안나 카레니나’ 작업에 매진

강 예술감독은 오는 11월 선보이는 국립발레단 신작 ‘안나 카레니나’(11월 1~5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작업에 매진할 계획이다. 톨스토이의 동명 소설을 취리히발레단 예술감독 크리스티안 슈푹이 안무한 작품이다. 이번이 국내는 물론 아시아 초연이다.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개최를 기념하는 작품으로 내년 2월엔 평창과 가까운 강릉에서 공연한다. 강 예술감독은 “라흐마니노프를 비롯한 익숙한 음악, 클래식 발레와 모던 발레 스타일을 한꺼번에 만날 수 있는, 올림픽에 걸맞게 전 세계인이 모두가 즐길 수 있는 작품이 될 것”이라고 소개했다.

잠자는 시간까지 줄여가며 연습에 몰두했던 무용수 시절처럼 지금도 강 예술감독은 하루 24시간이 모자랄 정도로 바쁘게 일상을 보내고 있다. 그러나 일상에서 느끼는 행복도 크다. 이날 강 예술감독 곁에는 반려견 써니가 함께하고 있었다. 강 예술감독은 매일 아침 남편 툰츠와 함께 써니를 데리고 사무실에 출근한다. 강 예술감독은 “남편과 써니와 함께 소파에 가만히 앉아 같이 있을 때, 그리고 함께 산책할 때가 일상에서 가장 최고인 순간”이라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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