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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미래의 눈]스승의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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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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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의는 다섯 번째 안건이 나올 때까지 아무 문제 없이 진행되었다. 다섯 개의 안건은 전년도 결정안을 그대로 답습하고 어휘만 다듬은 것에 불과했다. 가장 중요한 부서라고 말들은 하지만 실제로는 늘 뒷전으로 밀리고 마는 위원회, 즉 교육위원회의 오늘은 1년 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위원장은 저전력 스크린페이퍼를 살짝 흔들어 다음 안건을 눈앞에 띄웠다. 한 시간 만에 처음으로 위원장의 눈썹이 위로 치솟았다.

“다음은… 이게 무슨 뜻이죠? 발안자가 최정안 위원이군요.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최정안은 의자를 조금 뒤로 밀어 등받이에 체중을 맡기고 최대한 천천히 대답했다.

“안건 명은 최대한 간단하게 작성했는데요. ‘인공지능 교사 도입을 위한 준비작업 - 개요부터 결론까지.’ 제목에 오해할 여지는 없는 걸로 보이는데요.”

“누가 말뜻을 모른답니까. 이미 과목별로 인공지능들이 도입돼 있잖습니까. 학습 효율은 거의 최대치에 도달했고요. 궁금하거나 모르는 부분이 있으면 인공지능이 즉석에서 답을 내주고, 평가도 과목별 인공지능이 전부 해주는데 뭘 더 도입하자는 겁니까. 혹시 교육 현장을 전혀 모르는 거 아니에요?”

정안을 윽박지른 건 위원장이 아니었다. 한국교육위원회에서 가장 오래 위원직을 맡고 있는 손현식이었다. 교육 관련 이사장 이력만 열두 가지가 되는, 말하자면 사학계의 최고 원로였다. 손현식은 학습 특화 인공지능을 납품하는 ‘에듀아이’사의 대표이기도 했다.

정안은 심호흡을 하고 회의 시간 전부터 차곡차곡 쌓아두었던 말을 풀어내기 시작했다.

“제가 오 년 이상 교사로 일했다는 걸 아신다면 현장을 언급하실 순 없었을 겁니다. 과목별 인공지능을 말씀하신 걸로 보아 아마 에듀아이사의 ‘런소프트’ 시리즈를 염두에 두신 모양인데요. 그렇다면 제가 제출한 안건을 미리 검토해보시지 않았다는 얘기겠죠. 제가 말씀드리려는 건 인공지능 ‘교사’입니다. 학습 도우미 프로그램이 아니고요. 제가 인공지능 교사 후보로 제시한 건 인문과학계에서 개발을 마친 ‘만학 1.0’입니다.”

손현식과 위원장을 비롯한 교육위원들은 즉석에서 ‘만학’을 검색했다. 그리고 정안의 의견에 반박하기 시작했다. 만학은 교육 목적으로 제작된 인공지능이 아니다, 인류의 문화를 고루 학습하도록 만든 인공지능이니만큼 교사보다는 학생에 불과한 것 아니냐, 아이들은 나이에 걸맞은 학습 능력을 키우는 게 우선이다, 이건 인공지능을 학습 도우미가 아니라 말 그대로 ‘선생’으로 인정하자는 것 아니냐…. 정안은 소란이 잦아들기를 기다렸다가 하고픈 말을 꺼냈다.

“실시간 검색이 우리 삶에 완전히 녹아든 뒤로 기계적인 정보 습득 능력은 아주 크게 향상됐습니다. 그건 아이들도 마찬가지죠. 정보 습득과 재활용이 교육의 전부인가요? 그렇다면 아이들은 이미 교육 과정을 전부 이수한 것과 같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은 선생을 통해 사회를 배우고, 사회의 건전한 일원이 과연 무엇인지 깨달아가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 그 역할을 누가 하고 있나요? 저 같은 현장 교사들은 런소프트 활용법을 알려주고, 평가에 오류가 없는지 검사하고, 인성검사 소프트에 큰 오류는 없었는지 점검해주는 사람들에 불과합니다. 그런 선생들의 인사를 좌지우지하는 교장들은 뭘 하죠? 상위 계층의 안위나 걱정해서 그들을 옹호하는 훈시를 하거나 비슷한 내용의 메일이나 보내는 게 전부입니다. 만학이라는 프로그램은 적어도 그러지 않을 겁니다. 인간의 언어를 능숙하게 구사하는 건 물론이고, 사람의 역사와 문화를 분석적으로 학습해서 평가까지 할 수 있는 인공지능이니까요. 그러기 위해서 사람과 의견을 교환할 수 있는 기능까지 완벽하게 구사하고 있습니다. 또한 만학은 상사의 눈치를 볼 필요도 없고 악행을 옹호하거나 약자층을 폄하할 이유도 없습니다. 위원 여러분, 저는 이 자리에서 결론을 바라는 게 아닙니다. 대신 공청회 안건화를 신청하겠습니다. 그러면 선생으로서 만학이 얼마나 부족한지, 우리 어른이 아이들의 선생으로 얼마나 충분한지 많은 사람들이 의논해볼 수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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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기술적 특이점과 새 산업혁명이라는 용어에 대해 많은 의견들이 오가고 있다. 한편에서는 급격한 변화가 갑자기 도래할 거라 주장하고, 다른 편에서는 기술 발달의 영향은 조금씩 꾸준히 누적되는 것이니 유난을 떨 필요가 없다고 강변한다. 어느 쪽이든 변화가 다가올 거라는 데에는 많이 공감하는 모양새다. 그러면서도 정작 그 변화가 무엇일지 아무도 정확히 예측하지 못한다. 우리는 아직 디지털과 정보기술이 전면적으로 우위를 점한 세상에 살아본 적이 없으니까.

경향신문

그래도 마음의 준비를 하고 싶다면 이것 한 가지는 생각해보자. 과학기술과 우리 삶은 이미 오래전부터 한몸이었다. 동그란 바퀴가 그랬고 화약이 그랬고 전기기술이 그랬다. 기술이 야기하는 큰 변화란 판잣집에서 고급 아파트로 이사가는 것 정도에서 그치지 않을 것이다. 수많은 SF가 그려왔듯 사람과 사람의 소통은 이미 디지털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앞으로는 현 자본주의 사회의 구성 요소인 고용주와 피고용인의 관계, 노동의 의미도 완전히 재정립될 수 있다. 그러면 그보다 더 기본적인 관계는 온전할까? 부모와 자식, 상급자와 하급자, 학생과 선생, 연인 사이 역시 새로 만들어질 수 있지 않을까?

열린 자세로 준비하라는 말은 가볍지 않다. 문을 열면 내 안에 가득 찬 것들이 쏟아질 수도 있다. 하지만 변화를 담고 싶다면 녹슨 자물쇠가 완전히 부서질 수도 있다는 상상도 한 번쯤 해봐야 할 것이다.

<김창규 SF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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