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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3 (금)

[현장에서] 기아차 노사관계가 조화롭다니…통상임금 판결문에 재계 ‘한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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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아차 노사 상호신뢰’ 인식에 재계 어리둥절

노조 ‘회사 중대한 어려움’ 이미 수수방관

‘과도한 이익’ 아니라지만, 노조는 억대 연봉

지난달 31일 기아자동차 통상임금 판결을 법원이 내리자 재계는 집단으로 반발하는 분위기다. 전국경제인연합회·대한상공회의소·한국경영자총협회 등 재계와 한국자동차산업협회·한국자동차산업협동조합 등 자동차 단체는 “기업 현실을 너무나 모르는 판결”이라는 인식을 내비쳤다.

재계는 노사 관계에 대한 법원의 인식이 현실과 괴리가 있다고 보고 있다. 판결문은 기아차 노사가 그동안 ‘상호신뢰를 바탕으로 합의를 이루고, 자율적이고 조화로운 관계를 유지하며 공동의 이익을 추구했다’고 평가했다. 겉보기로는 매년 노사가 합의에 성공했지만 한 꺼풀 벗겨보면 순탄한 적이 드물다. 기아차 노동조합(노조)은 1991년 이래 27년간 단 두 해(2010년·2011년)만 빼고 파업했다. 90년대부터 지금까지 연도별 파업률이 92.6%에 달한다.

중앙일보

논란 된 통상임금 판결문과 재계 입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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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친구’의 한 장면처럼, 기아차 화성공장에서 일부 노조원이 쇠파이프로 공장 벽을 부수다가 구속된 전례도 있다. 법원이 ‘노사 관계가 신뢰·자율적이다’라고 하자 자동차업계 관계자가 눈을 껌뻑이며 먼 산을 바라본 배경이다.

이런 인식을 바탕으로 법원은 기아차가 4223억원을 근로자에게 추가 지급해도 별일 없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판결문은 ‘기아차가 4223억원을 일시불로 확보하기 어렵다면, 노사가 합의해서 매년 조금씩 지급(연차적)하거나 분할상환하면 된다’고 했다. ‘회사의 중대한 어려움을 근로자가 방관하지 않을 것’이라는 게 이런 ‘친절한(?)’ 조언의 근거다. 회사가 어려울 때 근로자가 모두 힘을 모아 위기를 극복하는 극적인 드라마가 떠오르는 대목이다.

하지만 이론과 현실은 다르다. 기아차 노조는 이미 ‘회사의 중대한 어려움’을 방관하는 것으로 보인다. 올해 들어 회사가 최악의 판매 부진을 지속하는 상황에서, 기아차 노조는 지난달 22일 부분 파업을 실시했다. 6년 연속 파업이다. 실적이 평년 대비 여실히 악화했지만, 기아차 노조는 아름답게 임금및단체협상을 마무리하는 드라마같은 장면을 보여주지 않았다.

법원은 또 일부 상여금을 통상임금에서 포함할 경우 ‘사측에게 예측하지 못한 재정적인 부담을 줄 가능성은 있지만, 노조가 예상외로 과도하게 이익을 추구하는 건 아니다’고 봤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기아차 근로자(생산·사무직 전체)의 평균임금은 연 9600만원 수준이다. 이번 판결이 임금 인상에 미치는 요인을 추정하면 이론적으로 기아차 근로자 연봉은 1억원을 훌쩍 뛰어넘는다. 2015년 300인 미만 중소기업 평균연봉(3493만원·고용노동부 고용형태별 근로실태조사)의 3배에 달한다.

자동차업계는 ‘노조가 연장·야간·휴일근로를 하면서 발생한 이익을 사측이 모두 향유했다’는 법원 주장에도 고개를 갸우뚱한다. 이익이 발생할 때마다 노조에게 성과급을 지급했기 때문이다. 판결문도 기아차가 최근 9년간 경영성과급으로 5조4679억원을 근로자에게 지급했다고 명시했다. 이를 두고 법원은 그간 지급한 성과급에 비하면 청구금액(3126억원·이자 제외)은 ‘푼돈’이라며, 이번 판결이 경영상 위기를 초래하지 않을 거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뒤집어보면, 사측이 이미 성과급 형태로 이익을 노조와 공유했다고 볼 수도 있다.

재계가 가장 우려하는 건 ‘과거’가 아니라 ‘미래’다. 이번 판결로 과거 임금 미지급분을 지급하고 끝난다면 자동차업계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다. 하지만 이번 판결처럼 상여금·중식비가 통상임금에 해당한다면 앞으로 기업이 근로자에게 지급해야할 심야·연장·휴일·연차 등 각종 수당도 함께 증가한다. 통상임금 소송을 진행 중인 115개 기업뿐만 아니라, 노조가 강성인 대부분의 대기업에서 비슷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재계 전체가 이번 판결에 주목한 이유다.

중앙일보

문희철 기자


법치주의 국가에서 법원 판결은 가장 큰 권위를 갖는 이른바 ‘최고 존엄’이다. ‘법리(法理)’적으로 법원의 판단은 언제나 객관적이라고 믿는다. 다만 법원이 ‘정당(正當)한 이치’를 판단하는 과정에서 ‘정당(精當)한 현실’을 감안해주길 재계는 바라고 있다.

문희철 산업부 기자 report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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