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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30 (목)

주택담보대출 대란도 심각 | 주택자금, 신용대출로 줄서기 ‘대혼란’ 가계부채 대책 나와도 혼선 계속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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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보가 없는 것도 아닌데 추가 대출을 받을 수 없다뇨?”

오는 9월 이사를 앞두고 시중은행 대출창구를 찾은 전 모 씨(54)는 잔금 납부에 필요한 자금을 대출받으러 왔다가 갑자기 대출이 불가하다는 안내를 받았다. 입주를 앞둔 집은 서울시 마포구 소재 아파트. 전 씨는 이 집을 담보로 잔금을 치르려 했지만 현재 거주 중인 또 다른 집이 투기지역으로 묶인 마포구 소재인 데다 이미 주택담보대출이 한 건 껴 있어서 추가 대출을 해줄 수 없다는 것이다. 전 씨는 “대책이 발표된 건 알았지만 그게 이렇게 금방 시행될 줄은 몰랐다. 당장 자금 조달 계획에 차질이 생길 판”이라고 토로했다.

8·2 부동산 대책발(發) ‘대출대란’이 현실화되는 모습이다. 정부가 금융권과 주택담보대출 규제 기준 등에 대한 협의를 거치지 않은 채 대책을 급하게 내놓으면서다. 대책이 발표되고 3주가량 지난 8월 23일에야 은행업 감독규정이 개정됐지만 이미 대책 발표 직후인 8월 3일부터 주택담보대출비율(LTV)·총부채상환비율(DTI)이 강화 규제를 적용해온 곳도 있어 은행마다 혼선을 빚는 모습이다.

매경이코노미

주택담보대출 규제가 강화되며 자금줄이 막힌 수요자는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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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출 규제 시행…은행 창구 혼선

▷입주자, 잔금 마련 어려워 ‘발 동동’

금융권에서는 서울, 과천, 세종 투기과열지구 또는 투기지역에 대해 LTV와 DTI를 각각 40%로 강화하는 감독규정이 지난 8월 22일 정식 개정돼 이튿날인 23일부터 본격화됐다. LTV·DTI 규제 비율을 지키지 않으면 감독규정 위반으로 처벌받게 된다. 은행 창구의 혼란을 야기한 건 바뀐 감독규정을 두고 금융당국과 금융권이 해석을 달리했기 때문이다.

당초 금융당국은 두 차례의 가이드라인을 통해 ‘8월 2일 이전에 주택 매매계약을 맺었고 기존 주택을 2년 안에 파는 1주택자는 예외를 인정한다’고 밝혔다. 따라서 이미 계약을 체결한 투기과열지구의 다주택자는 나머지 주택을 2년 내 처분한다는 전제하에 종전대로 LTV 60%, DTI 50%를 각각 적용한다고 해석됐다.

그런데 정작 감독규정 시행 첫날 금융당국은 2년 내 기존 주택을 처분하더라도 이미 주택담보대출이 있다면 LTV 50%, DTI 40%로 10%포인트씩 낮춰 적용한다는 해석을 추가했다. 별도 예외 규정은 두지 않았다. 금융당국이 이런 내용을 따로 설명하지 않은 탓에 은행들은 우왕좌왕했다. 물론 시중은행은 저마다 영업지점에 공문이나 안내서를 발송하는 등 대비는 해왔지만 개정된 규정이 당초 금융위가 예상한 날짜(8월 17일)보다 늦어져 혼란스러웠다는 반응도 나왔다.

서울 중구 A은행 대출 담당 직원은 “기존 주택을 2년 안에 팔고 해당 대출을 상환한다는 약정만 맺으면 LTV 60%를 ‘예외’로 적용한다고 이미 고객들에게 안내했는데 50%로 정정해야 하는 상황이다. 고객들이 설명을 요구하는데 아직 본점에서도 구체적인 지침이 없어 대출 담당 직원들도 내용을 파악하지 못한 채 고객을 응대하고 있다”며 한숨 쉬었다.

그 ‘예외’를 인정받지 못한 기존 분양계약자들은 이들대로 불만이 폭주한다. 대출 문턱은 높아지고 한도는 줄어든 상황에서 입주가 대거 시작되다 보니 입주 전 잔금을 마련하기가 더 어려워졌다. 지난 8월 22일엔 ‘8·2 부동산 대책 소급 적용으로 인한 피해자 모임’ 20명이 금융위를 찾아 항의하기도 했다. 이들은 지난 5~7월 투기과열지구에서 아파트 분양계약을 했지만 아직 은행과 중도금 대출 협약이 이뤄지지 않아 강화된 LTV 40%를 적용받게 됐다.

▶정비사업 단지 이주비 대출 급감

▷조합, 대출도 양도도 안 돼 ‘진퇴양난’

8·2 부동산 대책으로 대출 규제가 대폭 강화되면서 재개발·재건축 등 정비사업을 추진 중인 아파트 단지도 이주비 문제로 비상이 걸렸다.

이주비 대출은 정비사업 단지 철거가 시작될 때 소유자들(조합원)이 대체 거주지를 찾을 수 있도록 지원하는 집단대출이다. 통상 사업시행인가일 기준 감정평가금액을 기준으로 LTV 60%(기본 이주비 30%+추가 이주비 30%)를 적용받았다. 아파트를 짓는 동안 조합원은 이 대출금을 이용해 다른 곳에 거주하거나 기존 세입자에게 전세금을 돌려줘야 한다.

그러나 투기지역, 투기과열지구 내 LTV, DTI가 30~40%(기본 이주비 30%+추가 이주비 10%)로 쪼그라들면서 당장 몇 개월 안에 집을 비워줘야 하는 조합원은 자금 계획이 틀어진 상황이다. 특히 다주택자는 투기지역 내 대출이 가구당 1건으로 제한되면서 이주비 대출을 받기가 어려워졌다. 당장 올해 안으로 이주가 계획된 서울 주요 재개발·재건축 사업장에선 “자금이 부족해 이사를 못하게 됐다”는 불만이 나온다.

게다가 이번 대책으로 다주택자는 재건축·재개발 단지 조합원 지위를 양도할 수 없게 된 상황. 보유 중이던 집을 처분하는 것조차 여의치 않은 상황이다.

일례로 서울 강남구 개포동 ‘개포주공1단지’는 은행과 중도금 대출을 협의 중이던 상황에서 강남구가 투기지역으로 지정됐고 조합원 지위 양도도 전면 금지, 이주비 대출까지 축소됐다. 개포주공1단지에서 가장 면적이 작은 전용 35㎡는 이주비 총 한도가 1억3900만원가량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9월 입주를 시작하는 ‘개포주공4단지’는 지난 7월부터 이주비 신청을 받아 대출을 진행한 덕분에 간발의 차이로 강화된 규제를 피했다.

▶9월 가계부채 종합대책 예고

▷당분간 ‘대출대란’ 계속될 듯

문제는 이 같은 대출 혼란이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오는 9월 초 ‘가계부채 종합대책’이 발표될 예정이기 때문. 이번에 발표될 가계부채 종합대책의 핵심은 갚을 능력만큼만 대출받도록 대출 심사를 강화하는 ‘신(新)DTI’ 도입이다.

신DTI는 여신심사 감독지표를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로 전환하기 위한 전 과도기적 단계라고 보면 된다. 2019년부터 본격 적용되는 DSR은 상환액을 산정할 때 기존 주택담보대출은 물론이고 신용대출, 할부, 리스 등 모든 대출의 원리금을 상환액 산정에 반영한다. 가계부채 건전화를 위한 조치지만 당장 자금 마련이 시급한 수요자로서는 난감한 상황이다. 주택담보대출 문턱이 높아진 대신 은행권 개인 신용대출 잔액은 눈에 띄게 증가하는 배경이기도 하다.

실제로 올 들어 신한·KB국민·우리·KEB하나·NH농협 등 국내 5대 은행의 개인 신용대출 잔액은 총 93조1171억원(지난 8월 18일 기준)으로 파악됐다. 지난 7월 말(92조5289억원)과 비교하면 보름 남짓 새 5882억원이나 증가했다. 가계 신용대출이 급증하는 건 대출대란의 ‘풍선효과’로 풀이된다. 주택담보대출 규제가 강화돼 대출길이 막힌 다주택자 등이 신용대출로 돌아섰다는 얘기다.

아예 개인이 부동산 담보 P2P 대출로 주택 마련 자금을 충당하려는 움직임도 포착된다. P2P 대출 연구기관인 크라우드연구소에 따르면 지난 7월 부동산 담보 P2P 누적 대출액은 2819억원으로 전달 6월에 비해 10% 급증했다. P2P 대출은 현재 대부업으로 분류돼 LTV 규제 대상이 아니다. 그래서 우선 은행 대출을 받은 뒤 후순위로 집값의 70~90%까지 대출받는 것이 가능하다. 이 때문에 은행 대출만으로 주택 구입 자금 마련이 어려운 수요자가 연 10%대 높은 금리를 감당해가며 P2P 대출을 이용하는 것이다. 개인 신용대출은 원칙상 부동산 구입 용도로 쓰는 것이 금지돼 있지만 사실상 실제 사용처를 파악하는 것이 쉽지 않다.

서정렬 영산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주택 수요자가 자금 마련을 위해 금리가 높은 신용대출로 옮겨가기 시작하면 가계부채 질이 더욱 악화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정다운 기자 jeongdw@mk.co.kr / 사진 : 최영재 기자]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1923호 (2017.08.30~09.05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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