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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3 (목)

[통신비 인하 정책, 글로벌 리스크 비화]〈3〉FTA 규정 국제소송요건 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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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계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4조6000억원대 통신비 인하 정책이 자유무역협정(FTA)이 규정한 투자자-국가소송제(ISD)의 소송 제기 요건에 해당한다는 시각이다.

전자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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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칫 국제 협정 위반에 따른 글로벌 투자자의 소송 위협에 따라 정부 예산과 행정력을 낭비할 수 있다. 이를 예방하기 위해선 분쟁 절차를 살펴보고 국제 협정 위반 가능성을 점검해야 한다는 게 중론이다.

◇ISD 재판, 관습법과 판례로 결정

외국인 투자자가 한국 정부를 상대로 ISD를 제기하면 국제상사분쟁재판소(ICSID) 등 제3국 재판소가 6개월 동안 중재와 협상 절차를 진행한 후 결렬되면 재판을 시작한다.

국제재판소는 FTA 또는 투자보장협정(BIT)에 포함된 일반 및 선언성 규정에 비춰 각국 사례가 합당한지를 판단한다. 국내 전기통신사업법처럼 기업이 할 수 있는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세세하게 규정한 성문법 체계가 아닌 '관습법' 체계다. 재판에서는 판례가 중심이 되고, 기간도 길어진다.

재판에 들어갈 경우 판단 근거가 되는 ISD 핵심 조항은 '공정하고 공평한 대우'로 요약된다.

ICSID는 협정 당사국 간 △정부 규제와 조치는 합리적 절차에 근거해야 하고 △투자자의 합리적 기대와 예측 가능성을 배신하지 않아야 하며 △이해 당사자에게 소명 기회를 주면서 이뤄져야 한다는 원칙에 따라 판결한다.

◇한국 통신비 정책, 공정·공평한지 여부 쟁점

이 같은 기준에 따라 정부 통신비 정책을 살펴보면 법조계 전문가는 관례와 법리로만 살펴볼 때 소송이 성립할 요건을 충족한다고 분석했다.

과기정통부는 선택약정할인율 25% 상향을 법률 개정으로 추진하기 때문에 형식상 합리적 절차라는 입장이다.

그러나 국제법 전문 변호사는 법률이라는 형식보다 내용의 합리성과 예측 가능성이 더 중요하기 때문에 국제 재판에서 쟁점이 형성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대형 로펌 국제변호사는 “ISD 재판 과정에서 중요한 관습법 판례를 살펴보면 법률 조치라 하더라도 국제 기준에 현저하게 부합하지 않을 경우 패소 판결을 내리는 사례가 있다”고 말했다.

멕시코 정부는 인공감미료를 사용한 탄산음료에 고시 개정을 통해 차별화한 소비세를 부과했다가 미국 음료 회사에 패소했다.

ICSID는 개별 국가 법률보다도 국제 협정에 명시된 합리적인 기대와 예측 가능성을 우위에 놓고 판결한다. 정부 규제가 합리적 근거 없이 과도한 수준으로 변경된다면 ISD 구성 요건에 해당한다는 것이 법조계 일반의 시각이다.

국제변호사는 “외국 투자자가 ISD를 제기한다면 국제재판소에서는 선택약정할인율을 기존 20%에서 25%로 올리는 것이 예측 가능한 일인지, 합리적인지, 투자자에 소명 기회를 줬는지를 중점 심리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선택약정할인과 취약계층할인 등은 정부가 취할 수 있는 정당한 복지 정책이지만 해외 자본 입장에서는 할인율이 합당한지 시비를 걸 수 있다는 의미다.

보편 요금제의 경우 일반 요금 할인에서 벗어나 정부가 통신요금을 직접 설정하고 개입하는 정책이라는 점에서 외국 투자자가 불합리하다고 느낄 가능성이 더 짙다.

◇정부 정책으로 인한 손해 규모, 인과관계 따져야

ISD 분쟁 절차는 상세한 손해 규모와 인과 관계도 핵심 요건으로 따진다.

과기정통부는 총 4조6000억원대의 통신비를 절감하겠다고 밝혔지만 사업자 손실 규모 자체보다는 정책이 이통사의 외국 주주가 보유한 주식 가치에 얼마나 손해를 끼쳤는가가 더 중요하다.

대형 로펌 변호사는 “ISD에서는 정부 정책 불합리성에 더해 투자자 손해가 명확하게 증명돼야 한다”면서 “정책으로 인한 주가 하락이 증명돼야 하는데 이 부분은 쉽지 않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ISD 내 '간접 수용' 조항도 쟁점이 될 수 있다. 한·미 FTA에 따르면 투자 유치국 정부는 원칙상 투자자의 재산권을 침해해선 안 되지만 공중보건, 안전, 환경 및 부동산 가격 안정화 등 정당한 공공 복지 목적에 부합할 경우 예외를 인정한다. 통신 복지가 과연 시급한 수용을 요하는 정책인지를 두고 국제법상 다툼이 가능하다.

한편 또 다른 국제 변호사는 “통신비 정책을 두고 해외 자본이 막심한 손해를 보지 않는다면 소송을 하진 않을 것”이라면서도 “ISD가 엄연한 국제 룰로 자리 잡은 현실을 고려한다면 우리 정부도 충분히 점검, 준비할 필요성이 있다”고 조언했다.

박지성기자 jisung@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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