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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25년 맞은 한·중 경제관계…‘역전의 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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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합성수지 교역사 살펴봤더니…

중국개발 붐 타고 늘어 2009년 정점

주력산업중 경합 가장 치열해지더니

이젠 중국산 공급과잉으로 되레 몸살



“2000년대 초 중국 경제 붐을 타고 석유화학업체마다 범용 합성수지 생산을 대대적으로 늘렸다. 중소 사출성형 업체들도 거대 중국 시장을 향한 열기에 휩싸이긴 마찬가지였다. 합성수지의 한 원료인 고밀도폴리에틸렌(HDPE)을 석유화학회사에서 앞다퉈 구입한 뒤 심지어 ‘빨간 고무다라(양동이)’까지 중국 수출용으로 만들어 팔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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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석유화학업체 관계자의 말이다. 폴리에틸렌은 ‘팰릿’으로 불리는 하얀 쌀 모양의 알갱이로, 각종 플라스틱 제품의 원료다. 국내 화학사들은 중국에 고도기술이 필요 없는 범용 제품을 내다팔며 급성장했다.

22일 한국무역협회 자료를 보면, 고밀도폴리에틸렌의 대중국 수출은 1992년 16만800톤에서 2000년 45만3천톤, 2009년 84만1천톤으로 사상 최대 실적을 냈다. 플라스틱공업협동조합연합회 쪽은 “중국 경제가 두자릿수 성장을 지속하던 2000년대 중반에 중국 현지에서의 플라스틱 가공 수요가 워낙 많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호황은 잠시뿐이었다. 수출은 2010년(70만톤)부터 줄기 시작했고 지난해에는 54만2천톤까지 급감했다. ‘중국 특수’는 옛말이 됐다. 중국의 합성수지 자급률이 80%대까지 높아지면서 이제는 오히려 중국발 공급과잉 문제로 업계가 몸살을 앓고 있다. 지난해 중국 수출액이 2조9천억원에 이르는 롯데케미칼 쪽은 “중국에 합작법인 1곳과 자회사 4개가 있지만 중국 내 생산 사업은 규모가 작아 현지에서 발생하는 매출은 미미하다”고 말했다.

석유화학업체의 부침은 최근 중국 시장에서 점유율을 잃고 있는 삼성전자 갤럭시와 현대차 등과 궤를 같이한다. 수년 전까지 중국 휴대전화 시장의 30%대로 1위를 차지한 삼성전자 휴대전화는 이제 5위권에서조차 밀려났고, 한때 ‘현대속도’라는 신조어가 나올 정도로 급성장한 현대차도 최근 들어 차량 판매가 줄고 있다. 중국의 등에 올라타 한때 완제품은 물론 중간재가 호황을 누렸지만, 이제는 함께 부진한 셈이다. 한-중 수교 25년간 우리 산업의 부침과 당면 상황을 잘 보여준다.

무엇보다 화학은 한국의 8대 주력산업 가운데 대중국 수출 의존도가 가장 높다. 고밀도폴리에틸렌은 지난해 국내 총생산량(212만톤) 중 절반(111만톤)을 수출했는데 중국 시장이 50%(54만톤)를 차지한다. 우리나라 전체 수출액 중 중국 시장 의존 비율(25.1%·2016년)보다 훨씬 높다. 현대경제연구원이 계산한 한-중 수출경합도를 보면, 1995년엔 8대 주력산업 중에 석유화학(0.17)이 가장 낮아 절대 우위에 있었다. 그러나 2005년 0.39로 오르더니 2015년 0.72까지 수직 상승하며 이제 주력산업 중에 경합이 가장 치열한 품목으로 뒤바뀌었다. 중국이 양국 수교 20년 만에 자체 생산을 늘리고 원가경쟁력마저 확보하면서 어깨를 나란히 하는 구도다.

무역협회 관계자는 “중국 자체적으로 부품·소재를 조달하는 ‘차이나 인사이드’ 물결과 ‘제조 2025’ 전략 같은 대대적인 제조업 육성으로, 가공무역에 기초한 양국간 상호보완적 경제 교역 구조의 황금기는 이제 유지되기 힘든 상황에 직면했다”며 “상호 경쟁이 격화되고 보호무역주의 대두와 사드 갈등까지 겹치면서 양국 경제관계는 한-중 수교 이래 가장 큰 역사적 변곡점에 직면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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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대중국 수출에서 중간재 비중은 1992년 76.9%에서 지난해 74.0%로 여전히 높다. 수교 이후 양국이 중간재 중심의 가공무역 구조를 지속해온 셈이다. 그러나 무협은 “중국 경제가 투자 주도형에서 내수와 서비스 중심의 소비 주도형으로 급속히 변모하고 있고, 이에 따라 앞으로 대중국 수출구조는 가공무역에서 일반무역 중심으로 재편될 것”으로 내다봤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1992년 이후 25년간 중국의 연평균 성장률은 9.9%다. 고도성장의 폭과 지속 기간이 한국·일본보다 더 높고 길다. 중국의 성장이 계속되면서 오히려 우리 석유화학업계가 ‘휘청거리고’ 있는 셈이다. 정철길 에스케이(SK)이노베이션 고문은 2015년 중국 시장을 빗대 “우리 정유·화학사업은 알래스카의 여름 같은 짧은 호황과 그 뒤의 긴 불황이 오는 시대에 접어들었다”고 말했다. 합성수지의 경우 1992년 한국의 대중국 수출품목 중 2위(전체 대중국 수출액의 11.1%)였고 2000년에도 2위(8.6%)였으나 지난해엔 4위(4.9%)로 내려앉았다.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중국 현지에 진출했던 우리 기업들이 중국 경제성장률에서 바오치(7%)가 무너진 2015년 즈음부터 공장 시설을 뜯어 베트남 쪽으로 옮겨오는 흐름이 일어났다”며 “이런 탈중국 움직임이 지난해 11월 이후 9개월 연속 우리의 수출 증가를 이끄는 동력으로 작용한 것 같다”고 말했다.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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