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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뉴스깊이보기]트럼프, 아프간 추가파병 결정...16년 전쟁의 출구는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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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1일(현지시간) “아프가니스탄을 탈레반에게 넘겨줄 수 없다”며 추가 파병을 선언했다. 미국의 아프간 정책이 단계적 철군을 추진하며 발을 빼던 전임 버락 오바마 정부의 기조에서 다시 개입으로 돌아서는 순간이다.

그러나 여전히 아프간전의 출구는 잘 보이지 않는다. 16년이 다 돼 가는 지난한 전쟁 속에서 민간인과 군인 등 11만여명이 목숨을 잃었다. 미군은 2001년 아프간전을 시작해 탈레반 정권을 축출했지만 재건된 탈레반은 2017년 지금 기세가 등등하다. 여기다 이슬람국가(IS)까지 아프간에 근거지를 마련하고 있다. 천문학적 비용이 투입됐지만 아프간의 재건은 멀기만 하다.

■도돌이표 16년, 돌아온 탈레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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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10월7일 미국은 ‘항구적 자유’ 작전이라는 이름으로 아프간을 침공했다. 한 달 전 9·11 테러를 기획한 것으로 지목된 알카에다의 지도자 오사마 빈라덴을 탈레반이 은신시켜주고 있다는 이유였다. 미국의 파상공세에 탈레반은 일주일 후 빈라덴을 제3의 중립국가로 넘겨주겠다고 제안했지만 미국은 거절했다. 11월이 되자 수천명의 탈레반 지도자와 전사들은 파키스탄 정보국(ISI)의 지원을 받아 파키스탄으로 넘어갔고 탈레반 정권은 5년만에 붕괴했다.

그러나 미국이 2003년부터 이라크 침공하면서 중동에 힘을 쏟는 사이 탈레반은 부활했다. 2000년 중반부터 수도 카불 등 주요 도시에서 자살폭탄테러 등 탈레반의 공격이 이어졌다. 탈레반은 점차 아프간을 잠식해 들어갔다. 오바마가 취임한 2009년 탈레반은 사실상 재건된 상태였다. 오바마는 그해 12월 뉴욕 웨스트포인트 육군사관학교에서 TV연설을 하며 ‘전쟁을 끝내자’고 했지만 미군 철수는 2년 뒤에야 시작할 수 있었다. 2010년 8월 아프간에 보낸 미군은 10만명까지 늘어나 정점을 찍었다.

오바마는 2011년 그해 말까지 1만명을, 2012년 말까지 2만3000명을 철수시키겠다고 선언했다. 2014년 12월 오바마는 13년 만에 ‘항구적 자유’ 작전의 종료를 선언했다. 그는 2013년~2015년 주둔 규모를 줄이면서 순차적으로 철군을 시도했지만 2015년 말 철군을 중단하고 8400명을 남긴 채로 임기를 마쳤다.

미국이 아프간에서 힘을 빼는 사이 탈레반의 세는 더 커졌다. 미국 아프간재건특별감찰관(SIGAR)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5월 기준 탈레반은 아프간 전체 407개 행정구역 중 45개 지역(16.2%)을 장악하고 21%에서 아프간 정부와 세를 다투고 있다. 부패하고 무력한 아프간 정부가 통제력을 갖고 있는 지역은 전 국토의 62.8% 밖에 되지 않는다.

■미국은 왜 떠나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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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간 전쟁은 미국이 치르는 가장 긴 전쟁이다. 미국에 치욕을 안겨 준 베트남전(10년 2개월)을 훌쩍 넘겼다. 미국은 2001년 이후 아프간 전쟁에만 8000억 달러(약 908조원)를 쏟아 부었다. 재건비용에도 1173억달러(약 133조원)가 들어갔다. 미국은 아프간군 운영에 드는 비용을 다 대고 있고 아프간 정부 예산의 80~90%도 미국에서 온다. 인명피해도 막심하다. SIGAR에 따르면 아프간전 시작 후 지난해까지 아프간 민간인이 3만1419명, 아프간 군경이 3만470명, 미군 2371명, 탈레반 및 무장세력 4만2100명 등 모두 11만1442명이 숨졌다.

그럼에도 미국은 다시 개입을 결정했다. 트럼프는 이날 TV연설에서 “미국인들은 승리 없는 전쟁에 지쳤다”며 “마지막에는 우리가 이길 것”이라고 강조했다. 워싱턴포스트는 21일 트럼프 정부 고위 관계자 등 10여명을 인터뷰해 파병 결정 막후를 전하며 “승리에 강박적인 트럼프가 수개월 고심한 끝에 ‘패배할 수 없다’고 마음을 정했다”고 보도했다. 파병 결정은 특정 외교기조에 얽매이지 않지만 강력하고 단호한 지도자로 보이고 싶은 트럼프의 욕구와, 적극적 개입을 원하는 군 장성 출신 핵심 참모들의 설득이 만난 결과라는 설명이다.

미군 수뇌부 사이에는 미국이 떠난 공백으로 아프간이 IS 등 테러리스트의 본거지가 돼 버리고 미국이 패배를 인정해야 하는 상황은 받아들이기 힘들다는 생각이 강하다. 미국은 이라크에서 조기에 철군하고 시리아 내전에 적절한 때 개입하지 않아 IS가 활동할 공간을 줬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조지프 던퍼드 미군 합참의장은 지난 6월 상원 군사위 청문회에서 “우리가 지난 15년 동안 아프간의 테러리스트 세력에 가한 압박이 바로 다른 곳에서 또 다른 9·11을 겪지 않은 이유라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존 니콜슨 아프간 주둔 미군 사령관도 최근 의회에 출석해 “아프간에 머물러 있는 것은 미국의 안보에 중대하고 대테러 기지를 지속시키려는 노력의 일환”이라고 말했다.

■출구는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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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가 야심찬 파병 계획을 발표한 21일에도 아프간 북부 주즈잔 주 하맙 지역이 탈레반에게 넘어갔다. 이곳을 포함해 지난달부터 탈레반의 수중에 넘어간 곳만 6곳이다. 탈레반과 정부군이 치열하게 전투 중인 파키스탄 국경 지역 자니 하엘 같은 곳은 지난해에만 3번째, 이달에만 2번째 주인이 바뀌었다. 그 사이 IS도 아프간에 들어와 동남부 지역에서 세를 키우고 있다. 적대관계였던 탈레반과 IS는 아프간 정부에 맞서 잠정 정전협정을 맺기도 하고 아예 탈레반 일부가 IS에 충성맹세를 하며 넘어가는 등 공생하고 있다.

우드로윌슨센터의 마이클 커글만 연구원은 “지금 아프간에서 승리는 둘째 치고 바랄 수 있는 가장 좋은 방안은 전쟁을 끝내는 협상”이라며 “미국이든 아프간 정부든 지금 상승세인 탈레반을 협상테이블로 데려올 만한 조건을 제시하기가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완전한 승리도, 패배도 없는 지루한 싸움 속에서 민간인들은 계속 희생되고 있다. 지난 6월 수도 카불에서 일어난 대형 폭탄 테러는 150명의 목숨을 앗아 가 16년만의 최악의 테러로 기록됐다. 유엔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민간인들은 하루에 9명씩 목숨을 잃었다. 아프간 사람들의 좌절은 깊어지고 있다. 아시아재단의 지난해 여론조사를 보면 아프간이 제대로 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느끼는 아프간인들은 23.9%로 조사를 시작한 2004년 이래 가장 낮았다. 이들은 가장 큰 문제로 치안불안(48.8%), 실직(27.5%), 부패(14.6%), 경제(10.4%), 무능한 정부(8.7%)를 꼽았다.

미국이 탈출하려면 근본적으로는 아프간 정부가 자립해야 한다. 미국은 아프간의 재건을 위해 2차 세계대전 후 유럽을 재건하기 위한 마셜 플랜보다 더 많은 돈을 들였지만 결과는 형편없다. SIGAR은 “미국은 별 관리 감독 없이 너무 작은 규모의 경제에 너무 많은 돈을 투입해 아프간의 문제들을 야기했다”고 지적했다. 카불 주둔 미군의 한 관계자는 워싱턴포스트에 “우리는 장기전으로 본다”며 “군대를 더 보내고 전쟁에 투자하면 아슈라프 가니 아프간 대통령의 4개년 아프간군 발전계획이 완성되고 아프간 공군이 거의 자립하는 2020년까지 잘 관리해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오바마 정부에서 아프간 특사를 지낸 제임스 도빈스의 말은 의미심장하다. “승리하는 건 선택가능한 답이 아니다. 선택은 패배하는 것과 패배하지 않는 것 사이에 있다. 철수하면 트럼프는 빨리 질 수 있고, 현상을 유지하면 천천히 질 수 있다. 미군을 미미하게 늘리면 패배하지 않을 수 있다.(로이터통신)”

<이인숙 기자 sook97@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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