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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0 (금)

과학계 여성 정규직 15%…`경단녀` 지원 꼭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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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KC서 만난 김명자 과총회장·서은숙 한인과학자협회장

매일경제

서은숙 재미한인과학자협회 회장(왼쪽)과 김명자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회장.


"우리가 깬 '유리천장'의 힘든 과정을 후배 여성 과학자들은 밟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올해로 19회째를 맞은 '한미과학자대회(UKC)' 행사가 열리던 지난 10일(현지시간), 이번 대회 공동 대회장인 김명자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회장과 서은숙 재미한인과학자협회(KSEA) 회장을 만났다.

공교롭게도 한국과 미국의 한인 과학기술 단체 대표가 모두 여성이다. 과총은 설립 51년 만에, KSEA는 설립 45년 만에 처음으로 여성이 회장에 올랐다. 그만큼 여성 과학기술자에 대한 사회적인 인식이 높아진 것일까. 11년 전인 2006년, 여성 과학자들의 이야기를 다룬 '과학해서 행복한 사람들'의 출판으로 인연을 맺은 두 사람은 "아직 여성 과학자들이 헤쳐나가야 할 길은 험난하다"고 말했다.

두 회장은 무엇보다 '첫 여성 회장'이라는 타이틀에 어깨가 무겁다고 말했다. 서 회장은 "여성이라는 대표성을 띠는 만큼 책임감도 느낀다"며 "아직 우리 사회에서 여성이라는 이유로 능력을 인정받지 못하는 사례가 많은 만큼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김 회장은 "과거 여성이라는 편견을 깨기 위해 '슈퍼우먼'으로 살았던 삶이 떠오른다"며 "하지만 유리천장 깨기는 지금도 진행 중"이라고 했다.

여성 과학자들의 고충을 알기 때문인지 이들은 회장직에 오른 뒤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시도를 계속 하고 있다. 과총은 여성·남성 과학자들의 소통을 위해 '과학기술젠더 네트워크'를 신설했다.

김 회장은 "여성 과학기술 단체가 남성 중심 학회나 단체들과 네트워킹을 구축해 과학기술계 젠더 이슈에 대해 공론화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며 "과학기술계 여성 인력 활용은 여성만의 문제가 아니라 남성 과학자 사회와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올해 UKC에서는 아이와 함께 참석한 여성 과학자들을 위한 작은 배려도 있었다. 서 회장은 "육아로 학회 참석이 어려운 여성 과학자들을 위해 아이를 돌봐주는 프로그램을 만들었다"며 "앞으로 더 많은 여성 과학자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제도를 다듬어 나가겠다"고 말했다.

최근 국내 과학기술계에서 여성 활약이 눈에 띄지만 여전히 정규직 비중은 15% 남짓. 여성 과학자가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바로 경력단절이다. 육아, 출산 등으로 공백이 생기면 과학기술 분야의 경우 경쟁력을 회복하기가 더 어렵다.

김 회장은 "일과 가정의 딜레마는 과학기술 전공에서 특히 심각하다"며 "막대한 자원을 투입해 양성한 인력이 여성이라는 이유로 사장되는 악순환은 국가 차원에서 차단돼야 한다"고 말했다. 서 회장은 "미국은 여성 교수의 경우 육아·출산 등의 시간을 감안해 테뉴어(교수의 종신 재직) 심사 기간을 5년에서 6~7년까지 늘려주는 제도를 도입하고 있다"며 "또한 미국은 계약직으로 일하더라도 일자리에 탄력성이 있기 때문에 다른 일자리를 구하면 되지만 한국의 상황은 전혀 다르다"고 했다.

두 여성 과학자는 누가 봐도 '슈퍼우먼'의 길을 걸었다. 남성 중심의 과학기술계에서 인정받기 위해 더 악착같이 일했다. 김 회장은 "고리타분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우리 세대는 '견디고 인내하는' 시대적 가치를 갖고 살았다"며 "하지만 지금 세대에게 같은 삶을 강요할 수 없다"고 말했다.

서 회장은 "미국에서 꾸린 연구실 학생들의 경우 성비가 일대일"이라며 "동등한 기회만 주어진다면 여성 과학자들이 능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또 "어떤 말을 해도 여성 과학자들을 위로할 수 없지만 기회를 잡기 위해서는 항상 준비된 자세로 기다려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 회장은 "여성 개개인이 해결하기에는 너무나 높은 장벽이 존재하므로 정부, 사회적 차원의 전략적이고도 적극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며 "모성 보호와 고용 촉진 등 맞춤형 대책 등의 적극적 조치로 출중한 역량을 갖춘 여성 인재가 남성과 어깨를 나란히 해 사회 발전에 기여할 수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 회장은 서울대 화학과를 나와 미국 버지니아대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숙명여대 교수, 환경부 장관, 17대 국회의원 등을 지냈다. 서 회장은 고려대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루이지애나주립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미국 메릴랜드대 종신교수로 재직 중이다.

[워싱턴DC = 원호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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