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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3 (월)

[시가 있는 월요일] 해질녘 서녘 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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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저 노을 좀 봐.

저 노을 좀 봐.

사람들은 누구나

해질녘이면 노을 한 폭씩

머리에 이고 이 골목 저 골목에서

서성거린다.

누가 서녘 하늘에 불을 붙였나.

그래도 이승이 그리워

저승 가다가 불을 지폈냐.

이것 좀 봐.

이것 좀 봐.

내 가슴 서편 쪽에도

불이 붙었다.

- 조태일 作 <노을>

꾸밈없는 일상의 언어로 삶의 모습을 그려냈던 조태일 시인의 시다.

확실히 노을은 일출과는 좀 다르다. 일출이 가능성이나 생명력 같은 이미지를 지니고 있다면 노을은 회한이나 쓸쓸함을 연상시킨다. 그렇기 때문에 노을에는 무엇인가를 사색하게 하는 힘이 있다.

이 시에서 가장 와닿는 부분은 "저 노을 좀 봐"라고 외치는 문장이다.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그저 나란히 서서 "저 노을 좀 봐"라고 외치는 것 이상 저 타오르는 노을에 대해 무슨 미사여구가 필요하겠는가.

노을은 공평하게 허무해서 좋다. 가난한 자에게도 부자에게도, 늙은 자에게도 젊은 자에게도 노을은 노을이니까.

[허연 문화전문기자·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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