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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9 (화)

아늑하다 못해 고요한 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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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토요판] 이재언의 섬 ⑤ 백아도

‘흰 상어 이빨’ 닮은 데서 지명 유래

낚시꾼만 가끔 찾고 원형 보존 잘 돼

특산물 섬소사나무의 집단 자생지

과거 해군 레이더 기지 자리잡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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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마을 입구엔 2000년 5월 준공된 내연발전소가 있다. 예전엔 큰마을과 작은마을 사이를 오가려면 배를 타야 할 정도로 두 마을이 서로 떨어져 교류가 없었다. 큰마을 전경. 이재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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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 덕적군도 서쪽 끝머리에 위치한 백아도(白牙島)는 인천광역시 옹진군 덕적면 백아리에 소속된 섬이다. 면적 1.76㎢, 해안선 길이 12.1㎞인 섬에 41가구, 주민 68명이 오순도순 살아간다. 인천에서 백아도에 오기 위해 거쳐야 할 덕적도에서 보자면 남서쪽으로 18㎞ 떨어져 있다. 섬의 뒤쪽 부분에 해당하는 북서쪽 해안은 가파르고 파도가 그치지 않는다. 반면 반대편 동쪽 해안은 경사가 비교적 완만한 형세다.

1861년 김정호가 제작한 <대동여지도>에는 이 섬의 이름이 ‘배알도’(拜謁島)라 기록돼 있는데, 마치 ‘허리를 굽히고 절하는 것’ 같은 모양새를 취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전해진다. 이후 섬의 모양이 오히려 ‘흰 상어의 이빨’과 닮았다며 지금의 이름으로 바뀌었다. 어찌 보면 정적이고 부드러운 이미지에서 동적이고 남성적인 이미지로의 급작스러운 변신처럼 여겨진다.

하지만 이름에서 풍기는 이미지와는 달리 백아도는 매우 아늑한 섬이다. 아니 아늑하다 못해 지나치게 조용하다고 해야 할까. 주민들 대부분도 60~70대 이상으로 구성돼 있고, 변변한 해수욕장조차 없어 옹진군 내 다른 섬들과 달리 여름철에 이 섬을 찾는 피서객도 그리 많지 않다. 인천 연안부두에서 단번에 백아도로 가는 배편도 없다. 백아도에 가려면 먼저 덕적도에 내린 뒤 다시 문갑도·굴업도·백아도·울도·지도 순으로 한 바퀴 도는 나래호로 갈아타야 한다. 덕적도 도착 즉시 나래호와 연결되므로 기다리지 않고 바로 갈아탈 수 있어 그나마 다행이다. 평일에는 하루에 한 번씩 배가 다녀, 일단 섬에 들어가면 반드시 1박을 해야 한다. 토·일요일은 오전과 오후 두 차례 배가 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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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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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엔 배 타고 두 마을 오가야

덕적도에서 나래호에 올라타고 1시간40여분을 달려오면 마침내 기관차바위가 반겨주는 백아도 품에 안긴다. 백아도 선착장 우측에 보이는 기관차바위는 실제로 증기기관차와 아주 비슷하게 생긴 것처럼 보인다. 여름휴가철에 피서객들이 많이 찾는 덕적도·굴업도와 달리, 백아도와 울도, 지도, 문갑도 등 나래호 코스에 있는 섬을 찾는 사람들은 대부분 낚시꾼들이다. 육지에서 먼 바다에 위치한 까닭에 낚시가 잘되는 편이다. 관광객 발길이 거의 없는 만큼 자연이 원형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것이 백아도만의 매력이다. 그나마 일반인들에게 알려진 것도 2012년 <한국방송>의 ‘1박2일’ 프로그램에 소개되면서다.

작은마을 선착장에서 남봉·오봉·삼봉을 올려다보면 백아도의 산들은 정말 장관이다. 이 산 밑 골짜기에 순박한 사람들이 터전을 잡고 농사와 어업을 하며 살아간다. 백아도에는 큰마을과 작은마을이 있는데, 요즘은 큰마을은 발전소마을로, 작은마을은 보건소마을로 명칭이 바뀌었다. 선착장에서 산을 넘어가야 하는 발전소마을은 7가구 10명, 선착장과 보건지소, 교회가 있는 보건소마을은 10가구 20명이 살고 있다. 큰마을과 작은마을 중간지점에 학교가 자리잡고 있다. 작은마을에 있는 선착장에서 발전소가 있는 큰마을까지 거리는 2.4㎞. 도보로 최소한 30분 정도 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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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를 타고 둘러본 백아도 뒤편엔 기암괴석과 멋진 절벽이 어우러져 있다. 이재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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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와 같은 차도선 나래호가 다니기 전에는 일반 여객선인 해양호가 이 섬을 오갔다. 1994년에 처음 방문했을 당시엔 두 마을 사이에 오솔길만 있었을 뿐, 찻길은 없었다. 두 마을 사이를 오가려면 배를 타야 할 정도로 서로 떨어져 교류가 없는 편이었다. 당시 해양호는 두 마을 모두 정박했지만, 이제는 두 마을 사이에 길이 나면서 작은마을에만 배를 댄다. 예전에 여객선을 타고 큰마을에 갈 때 한 가지 좋았던 건 백아도 뒤편의 특이한 지형을 감상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기암괴석과 멋진 절벽을 모두 마음껏 감상할 수 있었다.

여객선 선착장에서 왼쪽으로 해안길을 따라 조금 올라가면, 작은마을, 덕적파출소 백아초소, 교회, 보건진료소가 차례로 나타난다. 작은마을 앞 왼쪽은 반원형의 모래밭이 있는 해안. 왼쪽으로 방파제가 있고, 두세 척의 작은 고깃배가 정박해 있을 뿐 한적함 그 자체다. 이제 다시 오르막길이 이어진다. 전체적으로 소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으며, 한국 특산식물인 섬소사나무가 자라고 있다. 꽃이삭 하나에 꽃이 많이 달리는 섬소사나무는 옹진과 백아도에서 자란다. 모래해변을 바라보는 중턱에는 폐허로 변해버린 백아분교 초등학교 자리가 있다. 큰마을과 작은마을 중간인데, 1991년에 폐교했다고 한다. 폐교 터에는 건물이 철거돼 흔적조차 남아 있지 않고 수풀만 우거져 있다. 운동장 한구석엔 누군가 묶어놓은 염소 몇 마리가 한가로이 노닐고 있다. 조그만 잔디운동장 바로 앞에 넓은 백사장이 펼쳐져 있어, 지금까지 탐사해본 옹진군 섬들의 폐교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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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덕적도와 백아도를 오갔던 일반 여객선 해양호. 이재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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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아도는 피서객이 거의 찾지 않을 정도로 한적하다. 이재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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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 배를 타지 않고 어쩌다 두 마을을 오가려면 좁은 산길을 힘겹게 오르내려야만 했다. 지금도 흔적이 남아 있긴 하다. 작은마을 보건소를 지나 발전소마을로 가다 보면 언덕에 한 가구가 살고 있는데, 오른쪽으론 남봉, 왼쪽으론 당산에 이른다. 이곳에서 남봉 정상까지는 1.6㎞ 정도. 갈림길에서 5분가량 올라가면 전망바위에 이른다. 이곳에서부터 확 트인 시야가 한눈에 들어온다. 원시림이 무성한 산꼭대기에 오르면, 지금은 철거됐지만 군부대가 주둔했던 흔적이 남아 있다. 철수한 지 벌써 10년이 넘었으나 아직도 채 정리되지 않은 모습이다. 규모가 큰 해군 레이더 부대가 주둔하고 있던 연유로 부대마을이라 불린다. 군부대가 철수한 뒤로 마을 주민 수도 크게 줄었다.

남봉으로 가는 길엔 바위능선과 깎아지른 해안절벽이 아찔하게 보이고, 왼쪽에는 거북섬, 광대도, 그리고 멀리 울도 주변 섬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남봉은 높이가 불과 145m인 산이지만, 해안절벽 위에 높이 솟아 있어 공룡 능선처럼 생겼다. 남봉 정상에 서면 바로 아래 오섬 전망바위가 있다. 오섬은 큰마을과 지척이지만 중간 수심이 깊어 배를 타고 가야 하는 무인도다. 오섬 전망바위는 수십 미터 낭떠러지에 자리잡고 있어, 사진을 촬영하던 중 자칫 실수라도 하면 추락할 수 있으므로 아주 조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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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아도 마을 한편에 위치한 우편함. 이재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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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부대 덕택에 전기 혜택 누려

큰마을 입구엔 2000년 5월 준공된 내연발전소가 있다. 발전소를 자체적으로 운영하기 전에도 백아도 주민들은 전력 공급에 불편을 겪지 않았다. 1990년 중반까지 해군 레이더 부대가 주둔한 덕택이다. 해군 레이더 부대가 주민들에게 여러 혜택을 안겨준 건 사실. 전기가 없던 동네에 전기를 들여왔고, 해군기지에서 일반 가정에 유선 전화기를 사용할 수 있게끔 해주기도 했다. 또 직업군인 자녀들의 교육 문제 해결을 위해 백아분교가 들어섰다. 해마다 수확철에 젊은 군인들의 도움을 받기도 했다. 모든 게 옛 시절 이야기다.

발전소 옆엔 작은 선착장이 있는데, 해안이 거의 막힌 공간처럼 보일 정도다. 말 그대로 천혜의 포구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큰마을의 분위기는 꽤 침체된 듯했다. 큰마을에 배가 들어오지 않게 되면서 선착장은 폐쇄됐고, 지금은 폐허가 된 여객선 대합실이 덩그러니 남아 있을 뿐이다.

이제는 아쉬움을 간직한 채 백아도를 뒤로하고 다음 행선지로 떠나야 할 때. 뱃고동을 울리며 나래호가 저 멀리서 파도를 헤치고 선착장을 향해 달려오는 모습이 보인다. 백아도의 명물인 기관차바위도 덩달아 육지로 떠나고 싶은 마음인 듯 오늘따라 슬프게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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