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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9 (일)

인지과학이 인간을 진화시킬 시대가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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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인간 감각 다루는 인지과학의 최전선

증강현실, 원격수술 등 새로운 미래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 동시에 열어




한겨레

감각의 미래-최신 인지과학으로 보는 몸의 감각과 뇌의 인식
카라 플라토니 지음, 박지선 옮김/흐름출판·1만9000원


노래 테이프를 선물하던 때가 있었다. 요즘은 엠피(MP)3로 파일을 전송하면 그만이다. 청각이기에 가능한 얘기다. 향기나 맛, 또는 키스도 멀리 떨어져 공유할 수 있을까. 이론적으로 가능하다. 광섬유를 뉴런에 연결하여 뇌의 적절한 부분을 자극해 각각의 감각에 해당하는 변화를 일으킨다면. 이는 오감이라는 게 외부자극을 전기신호로 바꾸어 뇌로 전달하여 일으키는 뇌의 물리적 변화라는 사실에서 비롯한다. 가상과 실제는 이렇게 경계가 소멸한다.

<감각의 미래>는 과학전문기자인 지은이가 리포트하는 최전선 인지과학 이야기다. 4개국 8개주, 신경과학자, 심리학자, 유전학자, 외과의사, 미래학자, 기업인, 군인, 요리사, 조향사 등 100여명을 만나 녹음기 4대, 공책 37권에 기록한 것을 재미나게 풀었다. 현장성과 가독성 모두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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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존스홉킨스 응용물리연구소에서 부상당한 병사를 위해 개발한 의수. 두뇌로 제어되어 실제 기관처럼 자연스럽게 움직이도록 만들어졌다. 출처 미국 해병대 누리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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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바닥 다지기. 우리는 짠맛, 단맛, 신맛, 쓴맛 등 4개가 기본 맛이라고 배웠다. 그런데 2000년에 ‘우마미’가 다섯 번째 맛으로 공인됐다. 1908년 이케다 기쿠나에가 발견한 지 100년이 지나서다. 다시마나 가다랑어포를 우려낸 맛인데, “바로 이 맛이야”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는 그런 맛이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인지세계가 비단 우마미뿐이겠는가.

후각은 생사와 직결된 원초 감각이다. 희한하게도 냄새는 특정한 기억을 불러 과거로 여행하게 한다. 사회화에 따라 시각이 지배적인 감각이 되면서 시각 피질이 비대해지고 후각 중추가 줄어들고 후각의 기능 다수가 기억을 관장하는 대뇌변연계로 이동하면서 발생한 현상으로 본다. 자기공명촬영을 통한 뇌 연구의 심화에 따른 추론이다. 자극→인지의 순방향 연구와 함께 뇌의 인지를 자극으로 발현하는 역방향 연구도 한창이다. 뭐냐면, 청각·시각을 수용한 뇌의 반응을 그대로 재연하여 원래의 소리와 이미지를 복원해 보려는 시도. 발화된 문장의 경우 복원해보니 염소 울음 같더란다. 알아듣기 힘들지만 억양이 있고 자·모음이 구별되는 수준. 원문장을 아는 사람만 인지할 수 있었다. 이미지는 애매한 수준. 카드실험 결과 포도가 버섯으로, 코끼리가 수탉으로 재현됐다. 하지만 그 짝에는 무언가 공통점이 있어 범주를 세분하면 기대치에 근접해질 거라는 희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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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 자극 실험을 위해 피험자의 머리에 전극을 심는 모습. 미국 공군 누리집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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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고통, 감정 등 초감각적 인식 이야기는 자못 철학적이다. 시공간을 담당하는 감각기관은 없다. 태초부터 지금까지 언제 어디에나 존재하기에 그렇다고 본다. 그런데 속도가 점점 중시되면서 사람들은 선거나 패션처럼 짧은 주기의 시간에 관심이 쏠려 있다. 지구 온난화 같은 긴 시간에 걸친 문제는 느끼지 못한다. 지은이는 지난 1만년, 다가올 1만년, 즉 ‘롱 나우’로 생각을 넓힐 것을 주문한다. 그리고 고통과 공감능력은 사회를 유지하는 기둥이라고 본다. 고통은 위험, 위협, 해악을 경고하는 지표이기에. 또한 몸을 위한 진통제가 마음의 고통을 가라앉히듯 마음을 위무하는 사랑은 외상을 치유하는 연고 구실도 한다.

인지과학은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를 동시에 연다. 증강현실을 실은 안경은 어둠에서도 볼 수 있게 하고 기계 팔다리는 장애인을 걷게 하고 노약자를 청년으로 되돌린다. 생각으로 작동하는 원격시술 장치는 미국에서 전장의 야전병원용으로 개발되어, 현지에 가지 않고도 오지의 환자를 살릴 수 있다. 허공에서 손을 올리고 내리고 오므리고 비트는 볼썽사나운 모습이긴 하나 유토피아의 단면일 테다. 이 모든 것은 기술을 확보하고 이를 향유할 수 있는 계급의 이야기다. 첨단기술의 미래는 어쩌면 지금보다 더 첨예한 계급사회가 될지도 모른다. 다행히 증강현실의 현재는 걸음마 단계. 뤼미에르 형제가 찍은 기차 영상이 관객을 공포로 몰아넣었던 1903년 수준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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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짜 과학자’ 스티브 만은 일찍부터 디지털 기술을 통해 인간의 오감을 확장하거나 대체하는 실험을 해왔다. 출처 위키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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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다. 자석을 피어싱처럼 달고 철새나 바다거북처럼 지구 자기장을 활용해 여섯 번째 감각을 얻어보겠다는 사람들까지 등장하고 있는 것은. 이들은 인간의 뇌가 워낙 가소성이 뛰어나 새로운 자극에 맞춰 반응하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고민은 인간의 진화가 과학의 발전 속도를 결코 따라잡지 못했다는 사실. 하지만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앞으로 과학기술이 진화를 견인하게 될지.

임종업 선임기자 blitz@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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