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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5 (토)

[기자 24시] 식약처장을 정치적 자리로 만든 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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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류영진 식품의약품안전처장은 불과 일주일 전 "국내산 (계란은) 문제가 없으니 안심하고 생활해도 된다"고 말했다. 지난 4월부터 '살충제 계란'에 대한 경고의 목소리가 있었지만 어떤 조사도 해보지 않고 무책임하게 답변한 것이다. 16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 출석해서도, 17일 이낙연 국무총리에게 보고를 할 때도 업무 파악조차 안 돼 있는 모습이었다. 오죽하면 이 총리가 "제대로 답변 못할 거면 기자들에게 브리핑하지 말라"고 면박을 줬겠는가.

류 처장은 억울할 수도 있겠다. 이미 앞선 정권, 전임자 때부터 키워오던 문제가 터진 것일 뿐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지난 3년간 식약처는 계란의 잔류농약 검사를 한 번도 하지 않았다. 여러 차례 살충제의 유해성 문제가 제기됐지만 어떤 조치도 하지 않았다.

지난해 3월 당시 새누리당은 4월 총선을 앞두고 비례대표 후보자 신청을 받았다. 여기에 3명의 전·현직 식약처장이 이름을 올렸다. 이희성 전 처장, 정승 전 처장과 김승희 당시 현직 처장이 주인공이었다. 특히 김승희 처장은 그해 신년사에서 '안전한 먹을거리, 국민 행복'을 식약처의 도전과제로 삼겠다고 했지만 이 말을 3개월 만에 헌신짝처럼 버렸다. 정작 그 자신의 도전과제는 '국회의원' 자리뿐이었다.

식약처는 국민이 안심하고 음식을 먹고 의약품을 복용할 수 있도록 하는 마지막 검색대의 역할을 해야 하고, 식약처장은 전문성과 책임성을 갖춘 세심한 관리자여야 하는데 권력은 식약처장 자리를 정치적인 자리로 만들어버렸다. 그 비극을 우리는 지금 목도하고 있다.

류 처장은 문재인 대통령의 선거를 도운 공로로 지금의 자리를 얻었다. 그가 갖춘 자격은 '약사 자격증'뿐이다. 고도의 전문성을 가진 거대 조직을 관리해본 경험도, 공적 영역에서 공익적 가치에 헌신한 경험도 없다. 식약처장 임명 후 자신이 운영하던 약국 운영과 관련한 질문을 받고 그는 "계속해야죠"라고 답했다. 이 대답에서 그의 앙상한 공익 의식이 읽힌다.

류 처장은 취임 100일을 맞은 문 대통령에게 앞으로 인사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살아 있는 교보재다. 잘못된 인사가 어떤 참사를 빚을 수 있는지 '살충제 계란 파동'을 통해 계란 노른자보다 선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정치적 전리품으로 삼아도 되는 자리가 있고 그래서는 안 되는 자리가 있다.

[정치부 = 김기철 기자 kimin@m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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