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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5 (토)

40년 간 소록도서 한센인 치료 오스트리아 간호사 '마리안느와 마가렛' 노벨평화상 추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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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병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당시 의료진도 환자를 제대로 만지지 못했어요. 하지만 그들은 달랐어요. 무려 40년간 환자의 고름을 닦아주고 사랑과 희생을 실천했습니다.”

지난 1962년 전남 고흥 국립소록도병원에서 40여년간 한센인들을 돌봐온 2명의 오스트리아 출신 간호사 마리안느 스퇴거와 마가렛 피사렛에 대한 노벨평화상 추천이 본격 추진된다.

17일 소록도성당 김연준 신부는 세종청사 총리실 브리핑실에서 열린 정부 합동 인터뷰에서 40년간 수녀로 잘못 알려졌던 ‘마리안느와 마가렛’의 이야기를 소개하고 노벨평화상 추진 계획을 발표했다.

조선비즈

김연준 소록도성당 신부 / 연합뉴스 제공



사단법인 마리안마가렛, 전남도청, 오스트리아 등은 ‘마리안느와 마가렛’에 대한 노벨평화상 후보 추천을 본격 추진할 방침이다. 최근 이낙연 국무총리는 김황식 전 국무총리를 ‘(가칭)마리안느-마가렛 노벨평화상 범국민 추천위원회’의 위원장으로, 김정숙 여사를 명예위원장으로 위촉하는 민간의 의견을 청와대에 건의했다.

노벨평화상 추진 논의는 지난 4월 개봉한 다큐멘터리 영화 ‘마리안느와 마가렛’을 이낙연 국무 총리와 김연준 소록도 성당 신부가 함께 시청하면서 시작됐다. 현재 김황식 전 총리는 추진위원장을 맡기로 합의했으며 김정숙 여사 역시 긍정적으로 검토 중이다.

오스트리아 인스부르크 간호대학 동기였던 마리안느 스퇴거(83·사진)과 마가렛 피사렛(82)은 각각 1962년, 1966년 소록도 병원에 자원 봉사자 자격으로 입국해 각각 43년과 39년간 한센인들을 치료하고 돌봐왔다.이들은 오스트리아로 돌아가서도 한센인 자녀 영아원 운영, 재활치료, 의료시설 모금 등을 위해 공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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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국립 소록도 병원 100주년을 맞아 한국을 방문한 마리안느 스퇴거 간호사 / 연합뉴스 제공




파란눈의 젊은 외국인 여성 마리안느와 마가렛은 소록도 한센인들에게 살아있는 천사였다. 1960년대 전세계에서 GNP가 가장 낮은 나라 대한민국 작은 섬에서 월급도, 연금도 받지 않고 환자들을 위해 봉사했고 무려 40년을 헌신해왔다.

그동안 마리안느와 마가렛은 소록도의 수녀로 알려져 있었지만 실제로는 간호사였다. 김연준 신부는 “한센인들이 감사한 마음에 ‘수녀님’이라 불렀던 것이 지금까지 잘못 알려져왔다”며 “사실 그 호칭 때문에 두 분이 큰 피해를 보게 됐다”고 밝혔다.

김 신부는 “수녀로 알려지는 바람에 그들은 보건복지부가 관할하는 국립 소록도 병원에서 봉사하면서도 월급을 받지 못했고, 연금도 없었다“며 “젊은 시절 한국에서 수십년을 봉사하다 일흔이 넘은 나이 빈손으로 먼 고국을 어쩔수 없이 떠나야했다”고 토로했다.

소록도를 떠나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두 여성은 병에 걸려 어쩔 수 없이 한국을 떠나게 됐다. 백발 할머니가 된 마리안느 여사는 대장암에 걸렸고 마가렛 여사는 현재 치매를 앓고 있다.

마리안느 여사가 대장암에 걸린 사실을 알게 됐을 때 소록도에서 인근 가장 큰 병원인 순천가롤로병원까지 연결된 다리가 없었고 치료를 받으려면 왕복 4시간이 넘는 거리를 배를 타고 왔다갔다 해야 했다.

현재 오스트리아의 한 시립 양로원에 있는 마가렛 여사는 자신이 치매에 걸렸다는 사실을 스스로 주지하고 있다. 어제의 일은 기억하지 못하지만 소록도에서의 기억은 지금도 뚜렷이 기억하고 있다. 한국에서 빈손으로 돌아갔으나 오스트리아 정부는 30년간 이들에게 최저연금을 지원했다.

김 신부는 “소록도는 쇠약해진 그들이 치료를 받기는 힘든 환경이었고, 치료비 역시 거액으로 부담이었다”며 “두 분은 부담을 주기 싫다는 말을 남기고 40년간 지내온 곳을 떠나 오스트리아 고국으로 돌아가야 했다”고 말했다.

김 신부는 “타국에서 평생 헌신하고 봉사해온 이들의 노후를 보장해주지 못했다는 사실을 알고 큰 충격과 부끄러움, 죄책감을 느꼈다”며 "지난해는 국립 소록도 병원 100주년이 되는 해였다. 100년의 역사 속 이분들의 삶을 알려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노벨평화상 추진 배경을 밝혔다.

그는 “인간성 상실의 시대에 대한민국에 감동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면서 “사랑과 희생으로 고통을, 운명을 극복한 소록도가 많은 이들에게 희망과 감동을 주는 ‘치유의 땅’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 신부는 “한국에서 평생을 쏟으신 분들의 노후를 우리가 돕지 못하는 것은 국격(國格)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며 “감사할 것에 적어도 감사해야 한다. 그게 인권이고, 국격”이라고 강조했다.

김 신부에 따르면 문재인 대통령은 당선 이전인 지난해 외부에 알리지 않고 마리안느와 마가렛 여사와의 만남을 요청한 유일한 사람이다. 당시 문 대통령은 별도 만남을 가졌으며 성당에서 하룻밤을 보낸 뒤 다음날 함께 미사를 하고 떠났다.

마리안느와 마가렛의 노벨평화상 추천은 오는 9월까지 TFT 구성을 마치고 본격적으로 추진될 예정이다.

허지윤 기자(jjyy@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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