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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1 (화)

장준하 선생 추모식에 추도사 보낸 文대통령, 어떤 관계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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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준하 선생 추모식에 추도사 보낸 文대통령, 어떤 관계길래?

장준하 선생 추모식에 문재인 대통령이 추도사를 보내 이목이 집중되고 있습니다.

17일 오전 경기도 파주시 장준하공원에서 장준하 선생 서거 42주기 추모식이 열려 피우진 국가보훈처장이 참석했습니다.

이에 문재인 대통령이 추도사를 보내 피 처장이 대독했습니다.

문 대통령은 추도사에서 "42년 전 오늘, 우리 민족은 위대한 지도자를 잃었고, 민주주의는 독재의 어둠 속에 숨죽여 울어야 했다"며 "장준하 선생은 정의와 평화, 민주주의를 갈망하는 모두에게 꺾을 수 없는 자긍심이자 지표가 됐다"고 밝혔습니다.

이어 "국민은 장준하와 함께 승리했다"며 친일과 독재 세력이 그토록 감추고 없애려 했던 평화와 정의, 민주주의를 향한 선생의 의지와 충정은 87년 6월 항쟁의 함성으로, 2016년 촛불혁명의 불꽃으로 기어이 다시 살아났다"고 말했습니다.

장준하 선생 죽음의 진상규명에 대해서도 언급했습니다.

추도식에는 장준하 선생의 유가족들, 피 보훈처장, 더불어민주당 김해영·김홍걸·박정 의원을 비롯한 각계 인사, 기념사업회원 등 200여명이 참석했습니다.

이낙연 국무총리, 정의당 이정미 대표, 더불어민주당 김두관 의원 등은 조화를 보내 추도식 참석을 대신했습니다.

장준하 선생은 독립운동가이자 민주화 운동가로 1918년 평북 의주에서 태어났습니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어로 된 교과서로 배울 수 없다며 일본어 교과서 찢기 운동 등을 주도하기도 했습니다.

당시 그의 친구는 윤동주 시인과 문익환 목사입니다.

이후 교육활동을 하다가 일본군에 강제징병됐습니다. 이후 탈출해 한국 광복군에서 활동했습니다.

해방 후에는 반공주의자로 활동했습니다. 1967년부터 7대 국회의원을 지내기도 했습니다.

5·16 쿠데타 당시 지지하는 글을 기고하기도 했지만 이후 민정 이양을 할 의도가 없음을 알게 된 후 반대하는 입장으로 선회했습니다.

1962년 막사이사이 언론상을 수상했고, 박정희의 독재 행위를 막기 위해 윤보선을 후보로 지지하며 비판적인 언론활동을 했습니다.

박정희 정권 시절 삼성그룹의 사카린 밀수사건에 대해 "박정희가 밀수 왕초"라며 박정희가 사카린 밀수사건의 배후임을 주장한 것이 지금까지도 회자될 정도로 유명한 발언으로 남아있습니다.

그러던 중 결국 1975년 8월 17일 경기도 포천 약사봉에서 의문사했습니다.

당시 정부는 실족사로 발표했지만 아직까지 고인의 사망에 관한 의혹은 완전히 해소되지 않고 있습니다.

당시 정권이 장준하를 암살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당시 정권이 고인이 계획했던 '유신개헌운동'을 저지하기 위해서 고인을 살해한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2002년에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가 타살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조사해 시뮬레이션을 통해 사망원인이 추락사가 아닐 가능성을 제기하기도 했으나, 진상 규명 불능으로 최종 발표했습니다.

하지만 후에 '장준하 공원'으로 묘지를 이장하면서 유골을 검사한 결과 머리뼈에 구멍이 뚫려 있는 것으로 확인됐고, 다른 신체부위에서는 추락시 발견되는 굴절이 발견되지 않아 타살 가능성이 높아졌습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장준하 선생의 부인 김희숙씨를 만나 의문사에 대해 역사가 말해줄 것이라고 답했지만, 막상 타살의혹이 불거지자 이전 정부에서 조사가 다 이루어졌고 이미 끝난 사안이 아니냐며 책임을 회피하여 김희숙 여사를 비롯한 유족들의 분노를 산 바 있습니다.

[MBN 뉴스센터 / mbnreporter01@mb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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