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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0 (월)

"왜 힘없는 노인에 생색내나"…노인 울리는 강원상품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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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상품권 임금 지급 노인소득보장사업, 불만 잇따라

강원CBS 진유정 기자

노컷뉴스

노인소득보장사업에 참여하고 있는 노인들이 골목길에서 쓰레기를 줍고 있다. 이들은 임금으로 강원도와 시군이 지급하는 강원상품권을 받고 있다.(사진=진유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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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데없는 강원상품권을 공무원 월급으로나 사용하지 왜 힘없는 노인들을 일 시켜가며 치사하게 생색내는지 모르겠어"

비가 내리는 17일 오전 6시 20분. 춘천시 효자동 주민센터에 7·80대 노인 11명이 모여 있었다. 노인들의 사회참여 기회를 제공하고 소득을 보장하겠다며 강원도가 올 연말까지 추진하는 노인소득보장 증진사업에 참여한 노인들이다.

이들은 주 2~3회, 2~3시간씩 쓰레기 줍기와 집하장 정리 등을 하며 최대 월 22만원어치 강원상품권을 지급받는다.

지난달 초 지급받은 첫 월급을 어디에 어떻게 사용했느냐는 질문에 곳곳에서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일자리도 얻고 강원상품권도 현금처럼 쓸 수 있다는 말을 믿고 동의서를 쓰긴 했지만 막상 사용처도 부족하고 현금 대비 실용성이 떨어지는 현실을 마주해야했기 때문이다.

이들 가운데 가장 나이가 많은 추모(86) 씨는 "춘천에서 강원상품권을 받는 병원, 약국은 하나도 없다. 동네 마트는 물론이고 전통시장 상인들도 다 제각각이라서 상품권 사용할 수 있는 상점 찾아다니는게 또 다른 고충"이라고 말했다.

현금으로 임금을 받는 기존 어르신 일자리 사업과의 형평성 문제도 거론했다.

"옆집사는 할아버지는 현금을 받고 노인일자리를 배정받아 일하고 있는데 우리는 뭐냐, 절반이라도 현금으로 줘야 계획을 세워 생활을 하는데 일은 일대로 시키고 공무원들은 생색이나 내고, 치사하다"고 속내를 드러냈다.

한 할머니는 지난 달 38도가 넘는 무더 위 속에 쓰레기를 줍다 갑자기 숨이 막혔던 아찔한 순간을 떠올리며 강원상품권을 임금으로 주는데 원망을 쏟아내기도 했다.

김 모(76)씨는 "지난달 강원상품권 만원권 22장을 월급으로 받고 어디에 사용해야되는지 몰라 거지처럼 상점을 돌아다니며 물어봤다"며 "안아픈곳 없어 지팡이까지 짚는 노인들을 일 시키려면 정당한 대가의 돈을 줘야 되는 것 아니냐"고 항변했다.

"여기 모인 노인들 대부분이 차상위 계층이고 혼자사는 서러운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에게까지 상품권 인생을 살게 해야하냐"며 "손주 용돈으로도 쓸 수 없는게 강원상품권"이라는 말도 더했다.

비판은 강원상품권 시책을 추진한 강원도 공무원들에게 향했다.

김 모 (68)씨는 "강원도가 노인들에게 월급을 강원상품권으로 주고 있으니 공무원들도 똑같이 강원상품권으로 월급을 받아보고 석달만이라도 생활해 보라"며 "우리가 벌고 있는 돈은 세금도 내고 병원도 가고 약도 사먹어야하는 목숨과도 같은 돈인데 이를 상품권으로 준다는게 말이 되냐"고 말했다.

최 모(77)씨도 "일자리를 만들어 준 것은 고맙지만 일한 돈은 일한 만큼은 당당하게 쓸 수 있었으면 좋겠다. 우리 상품권을 공무원들이 가져가고 그만큼 현금으로 우리를 주면 숨통이 좀 트일 것 같은데 괜찮겠냐"고 되물었다.

이날 마주한 노인 11명 가운데 지난 달 받은 강원상품권을 모두 사용한 사람은 단 한명도 없었다. 고민 끝에 주변 사람들에게 부탁해 현금으로 바꾼 노인들도 적지 않았다.

강원도는 올해 노인소득보장 증진사업에 시군비 분담 20%를 포함해 300억을 책정했다. 이 예산은 모두 강원상품권으로 바꿔 임금으로 지급하고 있다.

노인소득보장 증진사업을 통해 계획한 일자리는 1만 6,578개. 지난 달까지 도내에서 이 사업 참여를 신청한 노인들은 1만 3천여명에 이른다.

강원도 관계자는 "공무원의 월급은 법적으로 상품권 지급이 금지돼 있다"며 "우선 예산이 집행됐고 현재는 과도기다. 어르신들이 편하게 상품권을 사용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

강원도가 제도의 한계는 외면한 채 외적 성과에만 치중해 도민들의 삶을 위협하고 있다는 비판도 있다.

안상훈 강원도의원은 "강원상품권 사업 목적은 강원도 돈이 외부로 막는 것인데 전혀 상관없는 사업이 진행되고 있고 경제적 지원을 받아야하는 사람들이 오히려 손해를 보고 있다"며 "보여주기식 행정이 힘없는 노인들에게 전가되고 있는만큼 집행부는 당장 사업을 중단해야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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