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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8 (화)

[ESC] 알몸, 싹 다 봤드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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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ESC] 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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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프리다이빙’을 취재하면서 초보자 체험 기회를 얻었다. 이론 교육을 받고 5m 깊이의 잠수 풀 바닥까지 숨을 참고 들어갔다 나오는 체험이다. 모처럼 아늑하고 편안한 물속 유영의 자유를 맛보면서 자연스럽게 떠오른 게 ‘군대 시절’이다.

군대 얘기. 본인만 재미있고, 듣는 이는 지겨운 게 사실이다. 그래도 이 얘길 하는 건, 요즘 뜨고 있는 ‘프리다이빙’의 진수를 일찍이 군 시절에 누린 사람이기 때문이다. 강원도 동해안 경계부대에 근무하면서다. 고참이 돼가던 여름 주말, 개인 일과 시간을 이용해 혼자 바닷가로 나갈 기회가 생겼다. 당시는 해안을 따라 철조망이 설치돼 있고, 포구나 해수욕장을 제외하곤 외지인 출입이 통제되던 때다. 화창한 날씨, 아무도 없는 바닷가. 기암괴석 우거진 깨끗한 바위 해안은 천국과도 같았다. 여기서 나는 무엇을 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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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옷을 홀랑 벗었다. 벗는 것만으로도 날아갈 것 같은 자유를 느꼈다. 그리고 맨몸으로 물속으로 들어가 바다 밑 세상을 구경했다. 잠수라 해봐야 1~2m가 고작이었지만, 물밑 세상은 정말 아름다웠다. 무거운 돌을 안고 들어가면 좀 더 깊이 내려갈 수 있었지만 귀(고막)가 아파 포기했다. 햇살 무늬 일렁이는 바닥엔 조개·불가사리·해삼 들이 널려 있었다. 알몸으로 즐기는 바닷속 유영은 자유로움 그 자체였다. 맨몸으로 맨입으로 누리던 혼자만의 환상적 ‘자유 시간’는 1시간이 안 돼 끝났다. 딱 걸렸다. 바위 뒤 물속에서 갑자기 나타난 시커먼 물체. 해녀였다. 수경에다 잠수복을 입은 해녀. 나를 보더니 헤엄쳐 다가오는 거 아닌가. 아, 물 밖으로 나가기도, 그대로 있기도 민망했다. 다 봤을 수도 있다. 별수 없었다. 조심조심 물 밖으로 기어 나오다가, 전속력으로 달려 바위 뒤로 숨었다. 해녀가 뭐라 뭐라 외치는 듯했다. 부랴부랴 옷을 걸치고 줄행랑을 칠 수밖에 없었다. 다음날 아침 소대장 전달사항이 있었다. “해산물 보호지역에 외지인이 출입한다는 어민의 신고가 있었다. 철저히 통제하도록!” “넵!” 그 뒤론 그 바닷가 못 가봤다. 빨리 ‘자유 다이빙’을 제대로 배워야겠다.

이병학 선임기자 leebh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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