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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3 (월)

[함께 만드는 세상] 금쪽같은 방학 때 ‘딴짓’ … “남을 돕는 게 이렇게 즐거운지 몰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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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들의 뜻깊은 여름 봉사활동

인도네시아 영아·산모 위해

공연·바자회로 기금 모으고

몽골 아이들 찾아가 돌봐줘

“작은 것 주고 더 큰 기쁨 얻어”

중앙일보

서울 한남동에서 14일 한국컴패션 청소년 홍보대사 YVOC 멤버들이 플래시몹을 연습하고 있다. [사진 컴패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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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오후 전신거울 앞에 20여 명의 학생이 줄을 맞춰 섰다. 노래가 흘러나오자 학생들은 연습한 안무대로 율동을 시작했다. 어설프게나마 군무가 이어졌다. 학생들은 곧 있을 행사에서 선보일 ‘플래시몹’을 연습하고 있었다. 연습이 끝난 뒤 한 학생이 말했다. “여기, 음악만 나오면 로봇이 되는 친구들이 있어요!” 학생들 사이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이 학생들은 국제어린이양육기구 한국컴패션의 청소년 홍보대사 ‘YVOC’ 멤버다. 중학교 1학년~고등학교 3학년 학생들이 주축이 돼 활동하는 일종의 동아리다. 이들은 19일 북서울꿈의숲에서 ‘첫 번째 생일파티’라는 제목으로 인도네시아 태아·영아 생존 프로젝트 행사를 개최한다. 행사에서는 멤버들의 플래시몹, 노래공연과 함께 미니 바자회, 각종 빈곤 체험 부스 등이 운영된다.

행사 수익금은 인도네시아 태아·영아 및 산모 지원을 위한 기금으로 사용된다. 이 프로젝트에 참여한 이다원(17)양은 “개발도상국 아이들 중에는 한 살 생일도 제대로 보내지 못하고 죽는 아이가 많다고 들었다. 우리에겐 너무 당연한 것조차 존중받지 못하는 아이들을 위해 같은 뜻을 가진 친구들과 모여 이번 프로젝트를 기획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지금 아니면 해보지 못할 소중한 경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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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선 바자회를 연 대일외고 학생들. [사진 월드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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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프로젝트는 학생들이 두 달 전 회의를 거쳐 직접 내놓은 아이디어로 시작됐다. 기획부터 준비 과정 모두 학생들 몫이었다. 덕분에 여름방학은 거의 통째로 이 프로젝트를 위해 반납해야 했다. 서울외고 2학년인 이유빈(17)양은 “‘공부할 시간이 부족하지 않냐’고 주위에서 걱정하는 시선도 있지만 학교에서 배울 수 없는 것을 이 활동을 통해 배우고 있다. 좀 더 시야를 넓혀 세상을 보고 싶다”고 했다.

YVOC는 2009년 창단한 후 1000여 명의 청소년이 활동해 왔다. 매월 정기 모임을 통해 학생들은 스스로 다양한 행사를 기획하고 진행한다. 지난해에는 ‘필리핀 어린이 교실 지어주기’ 프로젝트를 성공리에 마쳤다. 고교 1학년 때부터 YVOC 활동을 해 현재는 대학생 멘토로 YVOC와 함께하고 있는 양유진(19)군은 “내 고등학교 시절을 돌아보니 같은 마음을 가진 친구들끼리 함께 행사를 기획하는 이 시간이 가장 행복했다”고 말했다.

‘입시지옥’에 사는 한국 청소년들에게 방학은 결코 한가한 시간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올해 여름방학을 그 누구보다도 특별하게 보낸 학생들이 있다. 혹자는 이 학생들에게 “성적 관리하기에도 바쁠 시기에 무슨 활동을 그렇게 하느냐”고 묻는다. 하지만 이들은 말한다. 지금 이 시기가 아니면 해 보지 못할 소중한 경험들을 쌓아 나가는 중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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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 초에 몽골로 해외 봉사활동을 다녀온 김희선(17)양.[사진 굿네이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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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고양시 백신고에 재학 중인 김희선(17)양은 지난 1일부터 일주일간 몽골 굿네이버스 사업장으로 해외 봉사를 다녀왔다. 그전까지만 해도 봉사활동은 ‘봉사 시간을 채우기 위한 것’ 정도로 생각해 온 김양은 이번 봉사활동을 통해 생각을 180도 바꿨다고 했다.

“처음에는 엄마가 추천해 무작정 갔어요. 제 일은 주로 몽골 어린이들과 놀아주는 거였는데요. 해맑은 아이들과 보내는 시간이 진짜 즐거웠어요. 제 작은 행동 하나하나에 고마워하고 기뻐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니 뿌듯하기도 했고요.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아, 내가 이렇게 진심을 다해 무언가 해 보는 게 처음이구나’라고 말이에요.”

4년 전부터 김양은 굿네이버스 일대일 결연을 통해 베트남에 사는 부이(11)라는 아이도 후원하고 있다. 한 달에 3만원씩 용돈을 아껴 후원금을 내고 있다. 그는 “방에 부이 액자가 걸려 있는데 부이와도 언젠가 꼭 한 번 만나보고 싶다”고 말했다.

“장차 공적개발원조 분야서 일하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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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들에게 희망을’ 캠페인에 참여한 뒤 대일외고 학생이 남긴 소감문.[사진 월드비전]


명덕외고 3학년인 이수현(18)양은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꾸준히 굿네이버스 ‘아임유어팬(I’m your PEN)’ 번역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 후원자들과 일대일 결연을 맺은 해외 아동들이 보낸 편지를 번역하는 일이다. 매주 목요일마다 지구 반대편에서 온 편지를 40통씩 번역한다. 이양은 “아이들이 보낸 편지를 보면 내용들이 참 순수해 기분이 절로 좋아진다. 얼마 전에는 ‘내가 만약 고양이와 얘기할 수 있게 된다면 왜 내가 널 좋아하는지 말해 주고 싶어요’라고 쓴 편지를 번역했는데 그 마음이 너무 귀여웠다”고 소감을 밝혔다.

고등학교에서 기숙사 생활을 하는 이양은 같은 학교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일도 하고 있다. 지난해 꾸린 교내 자율동아리 ‘데미안’을 통해서다. 이양은 “고등학생이다 보니 성적 경쟁이 치열하고 기숙사 생활을 하다 보니 적응 못하고 힘들어하는 친구가 많아 도움을 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지난해 8월에는 교내에서 ‘싸웠지만 아직 화해하지 못한’ 학생들을 위한 ‘사과데이’ 행사를 열기도 했다. 각 학급에 ‘사과편지함’을 설치해 학우들이 쓴 사과편지들을 상대방에게 전달해 주는 행사였다. 당시 반응이 워낙 좋아 제2회 사과데이도 준비 중이다.

이양은 봉사활동을 통해 공적개발원조(ODA) 분야에서 일하고 싶다는 목표가 생겼다. 그는 “내가 조금만 노는 걸 줄이고, 조금만 더 부지런해지면 누군가에게 큰 행복을 가져다줄 수 있다. 그래서 이 시간이 아깝지 않고 오히려 더 소중하다”고 했다.

‘꽃은 그 자체로 예쁘다. 스스로 싹틔우고 활짝 피어난 꽃들은 그 자체로 소중하다’. 대일외고의 한 학생이 최근 진행된 월드비전의 ‘꽃들에게 희망을’ 캠페인에 참여한 뒤 남긴 소감글의 일부다. 이 캠페인은 면생리대 DIY 키트를 구입해 직접 생리대를 만들어 아프리카 여아들에게 기부하는 행사다. 대일외고 학생들은 지난해부터 학생부 주도로 전교생이 이 캠페인에 동참하고 있다.

‘꽃들에게 희망을’ 캠페인 외에도 학생들은 학급마다 해외 아동을 한 명씩 후원하는 ‘한 학급 한 생명’ 캠페인과 기부 바자회 행사 등을 자발적으로 꾸려 나가고 있다. 이 학교 2학년 남우현(17)군은 “봉사활동을 할 때마다 내가 가진 작은 것 하나 내어 주고 더 큰 기쁨을 받는 느낌이라 학업에 좀 부담이 돼도 계속하게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한국인의 봉사활동은
올해 초 독일 시장조사기관 GFK가 한국·미국·독일 등 17개국의 15세 이상 국민 2만2000명을 대상으로 온라인 조사를 벌인 결과 한국인 중 봉사활동을 가장 활발히 하는 연령층은 10대였다. ‘한 번이라도 봉사활동을 한 적이 있다’고 답한 10대 한국인 응답자의 비율은 64%였다. 한국인 전체 응답자 중 52%는 봉사활동에 참여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이는 조사 대상 국가 중 가장 낮은 비율이었다.



홍상지 기자 hongs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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