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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3 (월)

[취재일기] 유럽서 살충제 계란 파문 없었다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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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장주영 산업부 기자


지난주 살충제 계란 파문으로 유럽은 발칵 뒤집혔다. 당시만 해도 남의 일인 줄만 알았다. 하지만 우리의 일이기도 했다. 국내에서도 인체에 유해한 살충제 성분인 피프로닐이 검출된 계란이 드러나면서다. 만일이지만 유럽에서 살충제 계란 파문이 일어나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우리는 살충제 성분이 함유된 계란을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먹고 있지는 않았을까.

이런 가정을 꼭 억지로만 볼 수 없는 이유가 있다. 정부가 보여준 태도는 안일했고, 뒷북 대처로 일관했기 때문이다. 지난 10일 유럽에서 살충제 계란 파문이 터져 나왔을 때 정부는 남의 일처럼 이야기했다. 정부는 문제가 된 네덜란드 계란은 수입되지 않았으며 가공식품은 섭취해도 해가 없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하지만 ‘혹시 우리도’라는 불길한 예감은 빗나가지 않았다. 정작 검사를 해보니 네덜란드산 탓을 할 만한 입장이 아니었다.

문제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보다 더 광범위하게 더 오래전부터 산란계 농가에서는 살충제를 사용했을지도 모른다는 점이다. 그런 정황도 속속 드러나고 있다. 실제로 문제가 된 경기 남양주시의 마리 농장 관계자는 “옆 농가에서 진드기 박멸에 효과가 좋다는 이야기를 듣고 사용했으며, 피프로닐인 줄 몰랐다”고 진술했다.

이처럼 살충제 사용이 공공연하게 이뤄지고 있다는 의심은 일찌감치 민간에서 제기됐다. 지난 4월 한국소비자연맹은 ‘유통계란 농약 관리방안 토론회’를 열고 ▶진드기 감염 실태 조사 ▶사용 살충제 실태 조사 및 적합성 검사 등의 건의 사항을 식품의약품안전처에 전달했다.

그런데도 정부는 지금까지 소극적인 대응으로 문제를 키웠다는 점에서 이번 살충제 계란 파동은 인재(人災)라 부를 만하다. 농림축산식품부가 계란 안전을 위해 생산 단계에서 살충제 잔류 물질 검사를 시행한 것은 지난해 9월부터다. 그나마 체계적인 검사를 본격적으로 한 것은 올해부터고, 이달에 접어들어서야 친환경 인증 산란계 농장 780곳에 대한 전수 검사를 실시했다.

이쯤 되면 비단 계란만 문제일까, 의구심이 든다. 먹거리 안전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정부가 선제적으로 대응하지 않는다면 제2, 제3의 파동은 다른 먹거리에서도 반복될 것이다. 그때도 다른 나라에서 먼저 경고음이 들려오길 기대해선 안된다. 정부가 이 참에 농·축산물 관리를 총체적으로 점검하고 개선책 마련에 나서야 한다.

장주영 산업부 기자 jang.joo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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