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5.21 (화)

[르포]'동물복지' 산란계 농장에선 '살충제 계란' 없었다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전남 보성군 미력면 '구쁘팜', 산란계 4만4000마리에 살충제 안써

건강한 사료 주고 닭 상태 나빠져 이나 진드기 생기기 전 도태 처리

계란 30구에 1만6800원으로 일반 계란에 비해 2배 비싸지만 인기

중앙일보

전남 보성군에 있는 동물 복지형 산란계 농장 구쁘팜의 계사. 프리랜서 장정필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16일 오후 전남 보성군 미력면 미력리 산란계 농장 ‘구쁘팜’. 방역복을 갖춰 입고 들어간 계사 내부 모습이 여느 농장과는 확연히 달랐다. 비좁은 케이지(사육장) 안에서 옴짝달싹 못 하는 다른 농장의 닭들과 달리 이곳의 닭들은 각 케이지를 활발하게 옮겨 다녔다. 사육장 내부에서 닭 배설물 냄새가 거의 나지 않은 점도 여느 농장과 큰 차이를 보였다.

농업회사법인 구쁘팜 오성주(44) 대표는 “동물 복지형 케이지 8개를 합친 뒤 칸막이를 없애 닭이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게 만든 구조의 계사”라며 “식물성 사료를 먹이기 때문에 배설물 냄새도 거의 없다”고 말했다.

중앙일보

전남 보성군에 있는 동물 복지형 산란계 농장 구쁘팜의 오성주 대표. 프리랜서 장정필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4만4000여 마리의 닭이 하루 평균 3만여 개의 계란을 생산하는 이 농장은 주변 환경도 ‘동물 복지형’이다. 계사 등 건물은 농장 입구 쪽을 제외한 3면이 숲으로 둘러싸여 주변 온도를 낮춘다.

낮 최고기온이 30도 이상까지 치솟아 닭도 스트레스를 받는 여름철에는 계사마다 설치된 18개의 대형 환풍기를 가동한다. 물을 한 방울씩 지속적으로 떨어뜨리는 장치도 있다. 모두가 닭이 생활하기 좋은 온도와 습도를 유지하기 위해 신경을 쓴 흔적들이다.

이 농장은 이번 ‘살충제 계란’ 사태 이후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으로부터 검사를 받았지만, 살충제 성분은 나오지 않았다. 항생제는 물론이고 살충제를 쓰지 않는 만큼 당연한 결과라는 게 농장 측의 반응이다. ‘입맛이 당기다’는 뜻의 순우리말 ‘구쁘다’에서 따와 이름을 붙인 구쁘팜은 지난해 동물복지 축산농장, 안전관리(HACCP) 인증을 받았다.

중앙일보

전남 보성군에 있는동물 복지형 산란계 농장 구쁘팜의 계사. 프리랜서 장정필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항생제 대신 이 농장의 닭은 1㎏에 600원이 넘는 비교적 고가의 사료를 먹는다. 저렴한 사료의 2배 가격인 이 사료는 닭의 면역력 향상과 영양가 높은 계란을 생산하기 위한 일종의 특별식이다. 석류와 유자ㆍ녹차ㆍ매실ㆍ미나리ㆍ인삼 등 12가지 식물성 재료를 숙성시켜 만든 발효액을 사료에 섞어 닭에게 먹인다. 유전자 변형 농산물(GMO)로 만든 사료는 일체 쓰지 않는다.

구쁘팜의 닭들은 병아리 때부터 특별한 관리도 받는다. 이 농장 측은 알에서 깨어난 지 하루나 이틀 밖에 되지 않은 병아리를 들여와 식물성 사료를 먹이고 산란계로 키운다.

상당수 농장들이 비용 절감과 편의를 위해 생후 80일 가량 된 병아리를 들여오는 것과 대조적이다. 병아리는 태어난 지 130일 이상이 지나야 알을 낳을 수 있다. 골격이 형성될 무렵, 알 낳기 전 등 엄격하게 정해진 시기에 백신을 맞는다.

중앙일보

전남 보성군에 있는 동물 복지형 산란계 농장 구쁘팜의 오성주 대표. 프리랜서 장정필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이곳 산란계들은 ‘은퇴 시기’도 다른 농장과 비교해 빠른 편이다. 농장 측은 생후 1년이면 닭을 도태 처리해 가공식품 원료로 공급하고 있다. 닭의 건강이나 위생 상태가 나빠져 이나 진드기 등 해충이 생기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새 병아리를 들여오려면 비용 부담이 크지만 예방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해충이 유입되는 것을 막기 위해 알을 놓는 판인 난자도 재활용하지 않는다.

이 농장에서 생산되는 계란은 30개당 1만6800원으로 일반 계란보다 2배 가량 비싸지만 소비자들의 주문이 끊이지 않는다. 농장 측은 아이스팩과 함께 아이스박스에 담은 계란을 주로 택배로 판매한다. 이 때문에 구쁘팜의 계란은 특별한 상황을 제외하면 생산된 지 36시간 안에 소비자에게 도착한다. 중간 유통 판매망을 거쳐 빨라도 일주일 후에나 소비자가 구매하게 되는시중의 대다수 계란과 유통 과정 자체가 다르다.

중앙일보

전남 보성군에 있는 동물 복지형 산란계 농장 구쁘팜의 계사. 프리랜서 장정필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구쁘팜 오 대표는 “살충제 계란 같은 문제들을 원천적으로 막기 위해선 농가들의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오 대표는 “대다수 농가들이 어떻게든 생산비는 낮추고 생산량은 늘리려고 한다”며 “그러나 덜 좋은 사료를 먹는 닭은 상대적으로 면역력이 떨어지고 태어난 지 오래되고 여러 차례 알을 닭은 건강 상태가 나빠져 계사 내부도 이나 진드기가 생길 환경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오 대표는 “소비자들의 생각도 바뀌어야 한다”고 했다. 그는 “동물 복지형 환경에서 계란을 생산하려면 당연히 비용이 더 든다”며 “소비자들이 조금 더 돈을 지불하더라도 건강한 닭이 낳은 안전한 계란을 선호할 때 농가들의 사육 방식도 크게 개선될 수 있다”고 말했다.

보성=김호 기자 kimho@joongang.co.kr

▶SNS에서 만나는 중앙일보 [페이스북] [트위터] [네이버포스트]

ⓒ중앙일보(http://joongang.co.kr) and JTBC Content Hub Co., Lt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