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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7 (월)

[이한상의 발굴 이야기] [7] 백제·가야·왜, 제사 함께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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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12월. 국립전주박물관 조사팀은 변산반도로 향했다. 서해안에서 패총 유적을 찾아볼 셈이었다. 대상지인 적벽강에서 출발해 채석강까지 걸으며 유적을 찾기로 했다.

조선일보

부안 죽막동 유적에서 출토된 장구 모양 그릇받침 조각. 높이 22.9㎝. /국립전주박물관


몰입하며 걷다 보니 어느새 발길이 '군사시설보호구역' 죽막동 해안 절벽 위에 다다랐다. 오후 4시를 조금 넘겼을 뿐인데 주위는 벌써 어둑어둑했다. 유병하 학예사는 더 어두워지기 전에 조사를 마치고 이곳을 빠져나가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바빠졌다. 설상가상 눈보라까지 몰아치자 일행 모두 누가 먼저라 할 것도 없이 교통로를 따라 빠르게 움직였다.

그때 토기 조각 몇 점이 유 학예사의 눈에 스치듯 들어왔다. 교통로 공사 중 유적이 훼손되면서 토기 조각들이 드러난 것이었다. 토기는 이웃한 대나무 숲과 자그마한 건물 즉, 수성당 주위까지 펼쳐져 있었다. 대나무 숲 속으로 들어가 꽃삽으로 바닥을 조금 긁어내자 화려한 장식이 부가된 백제 토기 조각들과 함께 지름 3㎝ 가량의 원판 모양 석제품이 모습을 드러냈다. 오키노시마(沖ノ島) 등 일본 제사 유적에서 종종 출토되는 미니어처였다. "아! 제사 유적이다." 바다 제사 유적의 존재가 국내 최초로 확인되는 순간이었다.

이듬해 5월 7일. 국립전주박물관은 이 유적에 대한 정식 발굴 조사에 나섰다. 3세기부터 조선시대까지 면면히 이어져 내려온 바다 제사의 흔적이 베일 벗듯 차례로 속살을 드러냈다. 유물 가운데 백제 토기가 가장 많았고 대가야산 토기와 철기, 왜에서 만든 토기와 미니어처 석제품과 함께 중국 남조산 도자기 몇 조각이 출토됐다.

백제 땅이던 변산반도의 절벽 위에 어떻게 백제·대가야·왜·중국 남조에서 만든 물건이 함께 묻힌 것일까? 항아리에 담긴 대가야 유물, 다양한 종류로 구성된 왜의 미니어처 석제품으로 보면 적어도 백제·대가야·왜 등 세 나라 사람들이 함께 제사를 지낸 것은 분명해 보인다. 풍랑이 거세기로 유명한 죽막동 앞 바다의 높은 파도를 잠재우고 바닷길의 안녕을 빌기 위해 평소 그 길을 이용하던 세 나라 사람들이 '국제적 공조'를 이뤄 함께 제사를 거행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한상 대전대 역사문화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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