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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8 (화)

[전문가가 만드는 Fact Check] 건국 초기엔 경찰도 영장청구권… 1962년 개헌서 검찰에만 부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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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주제: 검·경 '수사권 조정' 재점화 양상… 어떻게 흘러왔고, 쟁점은 뭔가]

해방 직후부터 검·경 싸우다 검찰이 완승, DJ정부 때 수사권 조정 불거져 계속 갈등

2011년 경찰에 독자적 수사 개시권 부여… '검찰 견제' 내건 文정부 출범후 다시 시끌

美, 경찰에 영장청구권 주는 곳이 더 많아… 佛·獨은 검찰이 모든 사건 지휘해 '막강'

조선일보

김상준 변호사·법학박사


검찰과 경찰 간의 '수사권 조정' 문제는 이 나라 건국 때부터 계속돼 온 해묵은 현안이다. 검경(檢·警)의 권한과 역할을 어떻게 나누느냐가 걸린 사안이라 양측이 첨예하게 맞서온 것이다.

1945~48년까지의 미(美) 군정 시절은 물론이고 1954년 형사소송법이 처음 제정(制定)될 때도 이 논란이 반복됐다. 1962년 개정된 헌법에서 검사만 영장을 청구할 수 있도록 못 박으면서 검찰의 완승으로 일단락됐다. 이 문제가 다시 불거진 것은 김대중 정부 때인 1999년이다. 이렇게 시작된 수사권 조정 논란은 10년 넘는 갈등 끝에 2011년 경찰이 독자적으로 수사를 개시하고 진행할 수 있도록 형소법이 일부 개정됐다. 그러나 경찰은 이 정도로는 성에 차지 않는 듯하다. '검찰 권력의 비대화와 이에 대한 견제'를 내건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면서 검경 수사권 조정 논란이 다시 불붙는 양상이다.

경찰은 현재 수사와 기소를 완전히 분리해 수사는 경찰이 맡고, 검찰은 공소제기(기소)와 유지(공판)에 집중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국회에 제출된 경찰 출신 표창원(더불어민주당) 의원의 형사소송법 개정안은 이런 내용을 담고 있다. 검사 출신인 같은 당 금태섭 의원의 개정안은 1차 수사는 경찰이 맡되 검사의 수사 지휘는 유지하도록 했다. 원칙적으로 수사는 경찰이 수행하지만 검찰의 견제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검찰은 이런 여러 방안과 논란들에 대해 구체적 입장 표명을 보류하고 있지만 마뜩잖아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수사권 조정 문제는 '개헌 논의'로까지 번지고 있다. 최근 국회 개헌특위가 영장 청구 주체를 검사로 한정한 부분(헌법 12조3항)을 삭제하자는 안(案)을 내놨다. 이 문제가 개헌에 반영된다면 검경의 권한이나 역할 문제를 넘어서 일반 국민의 삶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학계의 논의를 보면 이 헌법 조항은 '인권 침해 방지를 위한 결단'이라는 견해가 우세하다. 반면 이 정도 이슈는 헌법이 아닌 법률 개정으로도 충분한데 왜 헌법에까지 넣었는지 의아해하는 전문가들도 있다. 따라서 이 조항이 헌법에 들어가게 된 경위를 짚어보고 당시 심도 있게 논의가 이뤄졌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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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서도 언급했듯이 검찰과 경찰은 미 군정 시절부터 엄청난 갈등을 빚었다.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문준영 교수의 저서 '법원과 검찰의 탄생'을 보면, 1946년 경찰이 관할 지검의 검사장을 좌익(左翼) 활동 혐의로 구속한 사건을 검경 갈등의 사례로 다루고 있다. 이 사건의 발단은 경찰이 송치한 피의자를 검찰이 가볍게 처벌한 것이다. 이에 반발한 경찰이 검사장을 구속하자, 검찰은 검사장을 '뒷조사'한 경찰관 2명을 고문과 독직(瀆職) 혐의로 구속하는 것으로 맞서려 했으나 수포로 돌아갔다. 오히려 경찰관들이 자신을 수사한 검사를 비리 혐의로 연행했다고 한다. 당시에는 경찰이 독자적인 영장청구권과 수사권을 갖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경찰이 '검찰로부터의 수사권 독립'을 외치는 장면에 익숙한 우리 세대에겐 격세지감도 들게 한다.

1954년 제정된 형소법은 경찰과 검사 모두 법원에 구속영장을 청구할 수 있도록 규정했다. 이 법이 발효된 바로 그날(9월 23일) 정부는 경찰은 반드시 검사를 통해서만 법원에 영장을 청구할 수 있다는 내용을 담은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지만 법 개정은 이뤄지지 않았다. 1957년에도 똑같은 개정안이 제출됐지만 국회를 통과하지 못했다.

결국 검사만이 영장청구권을 갖도록 하는 조항은 5·16 이후 폭풍처럼 이뤄진 1962년 5차 개헌에서 형소법이 아닌 헌법에 등장했다. 헌법에 규정하면 법률(형소법)에 비해 시스템을 바꾸기 훨씬 어렵다. 1945년 해방 이후 10년 넘게 이어져 온 검찰의 노력이 '헌법 조항'에 영장청구권 독점 조항을 넣는 결과로 이어진 것이다.

건국 초기에 이뤄진 수사권 조정 논란과 법 개정의 역사를 돌이켜 보면 이 문제를 결코 수사기관 간의 다툼으로 그냥 놔둬서는 안 된다는 점을 분명히 알 수 있다. 수사권은 어느 기관이 행사하든 남용될 소지가 충분하다. 검찰과 경찰 어느 한쪽의 권한 남용을 막는다고 다른 쪽에 독점적 지위를 몰아준다면 또 다른 문제가 불거질 수밖에 없다. 그에 따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갈 것이다.

이제 수사권 조정 문제는 수사기관의 눈이 아닌 시민의 시각에서 접근해야 한다. 이 글을 쓰면서 불가피하게 수사권이라는 말을 썼지만, 이 문제를 '권한'의 관점으로 보는 것 자체가 맞지 않는다. 형소법에는 '(수사기관이) 수사하여야 한다'고 되어 있지 '수사할 수 있다'고 돼 있지 않다. 수사권을 권한이 아닌 국민을 범죄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수사기관이 마땅히 해야 할 일, 즉 책무(責務)로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형사 사법제도와 정책의 방향은 수사기관이 그 임무를 저버리는 것을 차단하고 통제하는 데 중점을 두어야 한다. 수사기관의 상호 견제 방안은 물론이고 시민의 사법 참여, 법원에 의한 심사 강화 방안에 관심을 더 쏟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김상준 변호사·법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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