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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7 (월)

[일사일언] 그림도 숨을 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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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박미정 환기미술관장


새 전시를 위해 작품 진열을 마친 뒤 전시장을 돌아보며 단상에 젖는다. 환기미술관을 설립한 김향안이 떠오른다. 종이 작품들이 습기에 눅눅해지는 것을 걱정하자 그녀가 담담히 말했었다. "그림도 사람처럼 생명이 있어 언젠가 수명이 다하면 떠날 거예요. 그림도 우리처럼 숨을 쉴 테니, 그림이 걸리는 공간은 사람도 편안한 공간이어야겠지요." 그날, 내가 단지 지식으로 알던 작품 보관의 조건, 즉 20℃ 내외의 온도와 50% 정도의 습도는 사람에게 최적인 상태와 같다는 것을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깨닫게 되었다.

전시실마다 작가들의 조형적 사유와 창작의 열정이 파노라마로 펼쳐진다. 끝없는 모색과 시도가 만들어낸 울림이 가슴으로 밀려온다. 순간 작은 작품 하나가 손짓해 멈춰 섰다. 음식 먹을 때 사용하는 포크가 물감 덩어리를 찍고 있는 형태의 작품.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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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는 창작욕도 식욕처럼 강한 본능이라고 말하고 싶었던 걸까? 혹은 "글 써서 밥 먹는 작가가 되고 싶다"고 외치는 것처럼 화가도 그림으로 생존할 수 있기를 간구하는 것일까? 작은 소품 하나가 미술관의 사명을 더 깊이 생각하게 한다. 창작 활동 지원을 위한 '저작권'과 '작가비 지급'의 실천에 앞장설 것, '추급권'이 도입돼 작가의 생존권 보장과 안정된 창작 환경 조성에 도움이 되도록 노력할 것!

우리의 팀워크(teamwork)도 돌아본다. 창작의 완성인 전시는 큐레이터들의 협심과 협업으로 이뤄진다. 함께 연구하고 의논하며 땀 흘리는 연대의 협동은 기획을 보람있게 완수한다. 전시 준비를 통해 새로운 인연을 만나고 선배의 경험을 전수받으며 동료애가 자라는 것도 큰 선물이다. 매번 전시를 준비하면서 진행상의 어려움이나 육체의 고단함보다 뿌듯함과 감사함이 남는 것은 예술이 우리 삶에 선사하는 인연과 미래, 그 '낙관적 가능성'을 확인하기 때문이다.

[박미정 환기미술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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