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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3 (월)

청년들 취업 도우며 멘토도 되어줘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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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년째 '토익 스타강사' 명성 이어가는 유수연 씨

매일경제

대한민국에서 가장 잘나가는 영어 강사로 꼽히는 유수연(45) 씨. 취업 준비생 사이에선 원하는 토익 점수를 얻기 위해서는 유수연 씨의 강좌를 반드시 들어야 한다는 말이 있을 만큼 그는 토익 절대 강자로 자리매김했다. 유씨는 2001년 영어 사교육계에 본격적으로 진출하자마자 스타로 부상했다. 2000년대 중반 몸값이 10억원 이상 치솟았고, 2000년대 후반 30억원의 이적료를 제시한 학원도 있을 만큼 그를 '모시기' 위한 업계 간 전쟁이 치열했다. 스타강사 자리를 17년간 이어올 만큼 성공했으며, 통장 잔액을 확인하지 않을 정도로 경제적으로 넉넉해졌다.

그는 이제 강의실에서 벗어나서 편히 살 수도 있지만 지금도 청년들의 영어 주치의로 살고 있다. 강의의 절반가량을 무료로 제공해 취업난으로 고통받고 있는 청년들에게 경제적 부담을 줄여주고 진로 조언도 해주면서 그들에게 버팀목이 돼주고 있다. 하루 수면은 4~5시간에, 밥 먹을 시간도 없어서 10년 넘게 거의 김밥만 먹어온 그를 지난 토요일에 어렵게 만났다.

"학생들과 소통하며 강의할 때가 가장 즐겁고 살아 있다고 느껴요. '이 정도면 충분해'라고 말해도 될 만큼 저는 화려한 스펙을 갖춘 사람이 아니라서 강의를 그만두면 다시 평범한 사람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건강이 허락하는 한 계속 현장에서 뛸 생각이며, 강사를 그만두더라도 완성도를 높인 다음 마무리 짓고 싶어요."

그는 2010년 유스타잉글리쉬 어학원을 설립하며 경영자로도 살고 있지만 원장 대신 강사로 불러 달라고 말했다. 유씨는 한때 비수를 꽂는 독설 강사로도 유명했다. 강의시간에 "공부할 생각 없으면 수강료 환불해줄 테니 나가"라는 발언도 서슴지 않을 정도였다. 하지만 몇 년 전부터 독설을 자제하고 있다. 지금은 사회가 흔들리고 있는 시기이며, 이럴 때일수록 각 분야 전문가들이 꿋꿋하게 제자리를 지켜야 한다고 생각해서다.

"지금의 30·40대들이 20대였던 시절에 제 강의를 들었고 지금의 20대도 제 강의를 듣고 있지요. 다양한 나이대를 거쳐 강의를 하고 있는데, 지금의 20대들이 가장 바른 생활을 하고 있어요. 지금의 30·40대는 독설을 들으면 오기로 버티고 성과를 냈지만 현재의 20대는 성실하지만 독설을 견디지 못하고 도전 자체를 포기해버립니다. 이들만의 잘못은 아닙니다. 독기를 품고 목표를 세워야 하는데 사회가 기회를 차단해버렸거든요. 부모세대가 자녀를 믿지 않고 모든 것을 자신들의 뜻대로 하려는 것도 문제입니다. 젊은이들이 더 겁을 먹고 전진하지 못하는 이유죠."

유씨는 서른 살 때까지 그저 그런 삶을 살았다고 말했다. 영어도 못했고 학벌·집안도 평범한 대학생이었던 그는 인생을 바꿔보고 싶어서 스물세 살에 아르바이트로 모았던 돈을 갖고 호주로 어학연수를 떠났다. 3개월 만에 연수를 끝낸 뒤 호주 전문대학에 입학했다. 돈은 없었지만 다시 영국에서 경영학 석사학위 과정을 밟았다.

"유학시절은 정말 끔찍했습니다. 매일 4~5시간밖에 못 자면서 공부했지요. 그래도 돌아갈 곳이 없어서 포기할 수가 없었습니다. 영국에 간 지 3개월 지났을 무렵 한국에 외환위기가 닥쳤어요. 어머니가 저의 유학자금을 모아 보겠다며 집을 담보로 대출을 받아 식당을 경영하고 있었는데 망하기 직전이었습니다. 유학생활을 접고 급히 한국으로 돌아와서 식당을 호프집으로 바꾸고 장사를 시작했어요. 1년 만에 하루 매출액 1000만원을 달성하는 호프집으로 탈바꿈한 뒤 가게를 팔아 2억원 넘게 남겼습니다."

그는 영국으로 다시 돌아가 공부를 마친 뒤 미국으로 건너가서 하얏트 호텔에 취업해 약 1년간 일했다. 이후 2001년 한국에 와서 영어 사교육 시장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최고가 되기로 마음먹은 그는 청계천 헌책방 거리를 돌면서 국내 출판됐던 문법책 전부를 사서 유형별로 정리·암기했다. 강사 초기에는 비즈니스 영어를 가르쳤고 2002년부터 토익 강사로 활동했다. 17년 동안 스타강사를 지켜오고 있는 비결을 묻는 질문에 "운이 좋았다"며 겸손하게 대답했다.

"저는 외골수입니다. 한길만 묵묵히 걸어온 덕분에 지금 이 자리에 올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누구나 성공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다만 자신을 믿고 앞으로 나가면서 좌절하지 않아야 합니다. 한국인들은 지적 수준이 높고 똑똑해요. 서로가 서로의 기를 죽이지만 않으면 유대인을 능가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을까. "철저한 계획을 세우고 그 계획을 실천하면서 살아오지는 않았어요. 돈을 좇아본 적도 없고요. 남들보다 긴장을 많이 해요. 항상 긴장하니까 기회를 더 빨리 잡는 것 같습니다. 돌아가는 변수를 파악하고 그 판에 맞게 목표를 세웁니다. 나이를 먹는 것은 두렵지 않은데 강의를 하지 못하게 되는 날이 오는 게 두렵습니다. 훗날 강의실에서 완전히 내려오고 난 다음 그 빈자리를 뭘로 채울지 고민하고 있어요."

[신수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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