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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8 (일)

[여적]인격살인 동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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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에 자신이나 가족의 알몸 동영상이 나돌고 있다면? 상상만으로도 등골이 서늘하고 머리가 주뼛 서는 일이다. 놀라운 것은 이런 일을 직접 겪은 사람이 매년 수천 명에 이른다는 사실이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에 따르면 인터넷에 유포된 개인 성행위 영상을 지워달라는 신고가 지난해 7325건이 접수됐다. 동영상이 돌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모르거나, 알고도 신고하지 않을 수 있으므로 실제 피해 사례는 더 많을 것이다.

상당수 동영상은 헤어진 연인에게 복수하기 위해 일부러 유출하는 ‘리벤지 포르노(revenge porno)’라고 한다. 이 밖에 공공장소나 사적 공간에서 피해자의 동의 없이 찍은 ‘몰카’, 유출 가능성을 생각하지 않고 스스로 찍은 ‘직찍’ 등이 있다. 장르가 무엇이든 인터넷에 유출되는 순간 다시는 주워담을 수 없는 ‘인격살인 동영상’이 된다.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의 자원 봉사자들이 인터넷 사이트를 뒤져 동영상을 무료로 삭제하는 공익 활동을 펼치고 있지만 중과부적이다.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가 14일 인격살인 동영상을 집중 단속하겠다고 나섰다. 방통위는 점검 결과를 웹하드 사업자 등에게 알려 삭제하고, 확보한 영상은 방심위와 협력해 데이터베이스로 만들어 유통을 차단한다는 방침이다. 음란 정보가 네이버·카카오·구글 등에 나돌지 않도록 포털 사업자에 대한 책임도 강화하기로 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턱없이 부족하다. 피해자들이 수치심과 정신적 충격에 직장과 학교를 그만두고 극단적 선택까지 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을 고려하면 신속하게 수사를 진행하고 가해자에게 무거운 처벌을 내릴 수 있도록 법 규정이 마련돼야 한다.

지금은 불법 음란정보를 신고해도 당국에서 확인하고 심의하는 데만 1~2주 걸린다. 동영상 유포자의 70% 이상은 1심에서 가벼운 벌금형을 받고 있다. 이미 촬영된 영상을 재촬영하는 등의 꼼수를 쓰면 처벌은 더욱 요원하다. 피해자 보호도 미흡하다. 피해자는 자신의 신체 부위가 찍혔다는 증거를 확보해 피해 사실을 스스로 입증해야 한다. 피해자를 두 번 죽이는 셈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그런 동영상을 보지 않는 것이다. 수요가 없으면 공급도 줄 것이다.

<오창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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