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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4 (화)

[fn스트리트] IOC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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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올림픽의 창시자인 프랑스의 피에르 쿠베르탱 남작은 올림픽에 정치가 개입하는 것을 극도로 경계했다. 그래서 그는 1894년 국제올림픽위원회(IOC)를 결성하면서 왕족과 귀족, 정치가, 사업가 등 내로라하는 명망가들을 위원으로 선임했다. 이들의 면면을 보면 각국 정부가 섣불리 IOC에 간섭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했다. 올림픽 헌장에는 IOC 위원의 자격을 "상당한 직위와 고결한 품성, 올바른 판단력과 실천력을 가진 올림픽정신에 투철한 인사여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스포츠 대통령'으로 불리는 IOC 위원은 최고의 명예와 막강한 영향력을 갖춘 자리다.

IOC 위원은 어느 나라를 방문하든 국가원수 또는 국왕에 준하는 예우와 의전을 받으며 해당국 정부 수반을 언제든 면담할 수 있다. 사회지도층 인사라면 누구나 한번쯤 IOC 위원을 꿈꾸는 이유이기도 하다. IOC 출범 초기에 15명이던 위원은 현재 115명에 이른다. 1998년 올림픽 개최지 선정을 둘러싸고 위원들의 뇌물 스캔들이 터지자 IOC가 개혁 차원에서 위원수를 늘리고 선출 방식을 다양화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IOC 위원은 1955년 선임된 이기붕 부통령이다. 이후 이상백(학자), 장기영(언론인), 김택수(정치인), 박종규(전 청와대 경호실장), 김운용(체육인), 박용성(기업인), 이건희(삼성전자 회장) 등이 활동했다. 우리나라는 특히 2002년부터 약 3년간 세 명의 IOC 위원을 두며 스포츠 외교 전성기를 구가하기도 했다. 선수위원은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문대성(2008~2016년)과 유승민(2016년~)이 계보를 잇고 있다.

1996년 개인 자격으로 IOC 위원에 선출됐던 이건희 회장이 위원직을 21년 만에 자진사퇴했다. 2014년 급성심근경색으로 쓰러져 3년 넘게 투병생활을 하고 있는 이 회장은 임기를 5년 남기고 단안을 내렸다. 그가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유치를 위해 11차례 170일 동안 해외로 동분서주한 것은 유명한 일화다.

막강한 글로벌 네트워크를 자랑하는 이건희 회장의 사퇴는 국가적 손실이다. 국제무대에서 활약할 영향력 있는 IOC 위원을 발굴하는 것이 급선무다.

이재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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