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5.13 (월)

[기자수첩] 취임 100일의 교훈, "'이니' 하고 싶은 대로 하면 안된다"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조선비즈



"우리 '이니(문재인 대통령의 애칭)' 하고 싶은 대로 해."

문재인 대통령의 인기를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지지자들의 말이다. 주요 여론조사 회사들의 문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도는 취임 후 100일간 70% 밑으로 떨어진 적이 없다. 취임 첫날 야당 당사를 방문하고 여야 지도부를 잇따라 청와대로 초청해 대화하는 행보, 청와대 참모 회의에서 직접 커피를 따르는 모습이 문 대통령 인기의 바탕이 됐다.

그런데 대통령과 그의 참모들의 판단이 ‘하고 싶은 대로 해’라고 해도 좋을만큼 정확했을까. 청와대는 이미 경제분야의 판단착오를 시인한 적이 있다. 김수현 청와대 사회수석은 지난 3일 부동산 대책을 설명하는 기자간담회에서 "솔직히 새정부 출범 전에는 주택 가격의 하락 내지 장기 안정을 예측한 게 사실"이라고 했다. 놀라운 발언이었다. 집값은 대선 한참 전인 2015년 중반부터 본격적으로 오르고 있었다. 집값 상승을 주도하는 서울지역의 주택 공급 부족 우려도 하루이틀 일이 아니었다. 불과 석달 전에는 부동산 시장 불안이 보이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아무 거리낌 없이 하는 모습을 보고 당황스러웠다.

사드배치를 둘러싼 논란도 청와대의 판단에 물음표를 달게 만든다. 청와대는 지난 5월말 사드 발사대 배치 현황을 보고하지 않았다고 군을 질책했다. 지난달 28일 국방부는 1년 가량이 소요될 수 있는 일반 환경영향평가 후 사드 배치를 결정하겠다고 발표했다. 이 발표는 하루도 안돼 뒤집혔다. 북한이 이날 밤 ICBM(대륙간탄도미사일)을 발사하자마자 문 대통령은 미군기지에 보관 중인 사드 발사대 4기를 즉시 배치하라고 지시했다. 이럴 것이면 사드배치 논란을 왜 일으켰느냐는 한탄이 나올 수 밖에 없었다.

지난 12일 사퇴한 박기영 전 과학기술혁신본부장(차관급) 인사 파동은 이같은 청와대 '판단착오' 시리즈의 절정이다. 박 전 본부장 말대로 최근 '황우석 줄기세포 논문조작 사건' 책임론은 그에게는 주홍글씨 같은 일이었다. 청와대에서 모를 수가 없는 일이다. 박기영 인사 파동을 계기로 문 대통령의 결정을 처음으로 반대했다는 문 대통령 지지자가 적지 않다. 그런데 문 대통령은 ‘공과 과가 있다’는 논리로 그를 감쌌다. 이번 인사파동으로 문 대통령은 과학기술계와 핵심 지지층의 신뢰를 크게 잃었다.

세상은 복잡하고 사람은 불완전하다. 한 사람의 머리로, 아니면 비슷한 사고방식으로 똘똘 뭉친 이념집단이 하고 싶은 대로 해도 될만큼 대한민국의 현재는 간단하지 않다.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한지 100일이 지났다. ‘우리 이니 하고 싶은 대로'라는 열광 속에 국가의 방향을 바꾸는 정책이 숙고 없이 쏟아져 나왔다. 물론 이때가 아니면 개혁하지 못한다고 할 지 모르겠다. 그러나 이니 마음대로 바꾼 대한민국이 지금보다 나은 내일이라고 장담할 수 있을까. 그게 누구이든 개인이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은 개혁이 아니다.

박정엽 경제정책부 정치팀 기자(parkjeongyeop@chosunbiz.com)

<저작권자 ⓒ ChosunBiz.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