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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30 (목)

일제식 지명, 언제까지 써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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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태종·세종의 마을 ‘준수방’, ‘장의동’ 모두 사라져

서울의 가장 오랜 동네인 ‘(향)교동’은 ‘낙원동’으로

전문가 “옛 지명 조사·정리해 이제 바로잡아야”



한겨레

서울 지명의 30% 이상이 일제가 잘못 붙인 지명으로 나타났다. 서울에서 지명의 왜곡이 가장 심각한 곳은 예부터 사람이 많이 살았고 지명도 많았던 4대문 안이었다. 김규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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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된 지가 72년이나 됐지만, 서울의 지명 중 30% 이상은 여전히 일제의 지배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14일 한국땅이름학회에 따르면, 서울의 법정동 467개 가운데 30% 이상인 140개가량의 이름이 일제 때 잘못 붙여진 것으로 나타났다. 나머지 70%도 조선 때까지 쓰던 전통 지명이 아니라, 일제가 1914년 동 명칭 개정 때 기존 지명을 참고해 새로 붙인 지명이다. 해방 뒤 일제가 잘못 붙인 지명 중 일부를 고쳤으나, 대부분은 일제식 ‘정’(町)을 한국식 ‘동’(洞)으로 바꾸는 수준이었다.

예를 들어 일제의 동 명칭 개정으로 태종 이방원과 세종이 살았던 마을의 지명이 완전히 사라졌다.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세종이 태어난 곳은 서울 북부 ‘준수방’ 잠저(왕의 사저)였고, 자라고 즉위한 곳은 북부 순화방 ‘장의동’ 본궁(왕의 사저)이었다. 그러나 일제의 왜곡으로 준수방은 통인동, 장의동은 효자동으로 바뀌었다. 특히 장의동(장동)은 조선 때 현재 서촌 지역의 대표적 지명인데, 일제의 왜곡으로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또 서울에서 가장 유서깊은 지역이자, 고려 시대 남경(서울)의 향교가 있던 마을인 ‘(향)교동’은 낙원동으로 바뀌었다. 일제가 이 일대의 지명 중 하나인 ‘원동’에 ‘낙’자를 마음대로 붙여 엉터리로 만든 지명이다. 잣나무가 많았던 ‘백동’(잣골)은 동숭동으로 바뀌었다. ‘숭교방’의 동쪽 동네라는 무성의한 이름이었다. 이밖에 ‘약고개’(약현)은 중림동으로, ‘덩굴내’(만초천)는 욱천으로, ‘한내’(한천)는 중랑천으로 아무렇게나 바뀌었다.

일제는 사람이 많이 살아 지명도 많았던 종로구 일대의 지명은 기존 지명 2개 이상을 뒤섞는 방식으로 왜곡시켰다. ‘옥류동’과 ‘인왕동’은 옥인동, ‘청풍계’와 ‘백운동’은 청운동, ‘운현동’과 ‘니동’(진골)은 운니동으로, ‘관인방’과 ‘대사동’(큰절골)은 인사동으로 바꿔 원래 지명의 의미를 잃게 만들었다. 또 ‘누각동’은 누상동과 누하동으로 쪼개기도 했다.

땅이름학회 배우리 명예회장은 “당장 옛 지명을 되살릴 수는 없다 해도 옛 지명들을 조사해 잘 정리해둬야 한다. 그래야 나중에 지명을 다시 붙일 때 활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황평우 한국문화유산정책연구소장은 “해방 뒤 친일파들이 정권을 장악하면서 일제식 지명을 청산하는 작업이 이뤄지지 못했다. 이제라도 우리 실정에 맞지 않는 도로명 주소 도입을 중단하고, 올바른 옛 지명을 되살리는 사업을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규원 기자 ch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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