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5.24 (금)

[현장에서]고개숙인 경찰 수뇌부…‘개혁’으로 말하라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헤럴드경제

지난 13일 오후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은 굳은 표정으로 서울 미근동 경찰청 무궁화회의실에 들어섰다. 부처 장관이 소속 외청 내 분란을 잠재우기 위해 직접 지휘관 회의를 소집하는 일은 극히 드문 일이다.

12만 경찰을 차질없이 이끌어야 할 경찰 총수임에도 논란의 중심에 선 이철성 경찰청장의 표정도 한껏 굳어있을 수 밖에 없었다. 두 사람의 표정은 최근 경찰 내에서 벌어진 경찰 수뇌부 간 ‘상호비방전’을 바라보는 정부의 싸늘한 시선과 신뢰추락의 위기에 직면한 경찰의 참담한 현실을 극적으로 보여줬다.

김 장관이 휴가마저 하루 반납한 채 경찰청사로 달려올 수 밖에 없었던 것은 경찰을 바라보는 국민의 눈초리가 매섭기 때문이다.

국민들은 지난 1주일 간 이 청장과 강인철 중앙경찰학교장이 지난 촛불집회 기간 광주경찰청 SNS의 ’민주화 성지‘ 표현을 두고 벌인 진실공방을 보며 경찰을 시민의 안전과 국가의 안위보다 개인의 영달과 명예만 앞세우는 한심한 조직으로 바라보고 있다.

이번 사태에서 SNS 논란은 일종의 도화선일 뿐 지휘부 내부에 승진과 인사 등을 둘러싼 알력이 존재하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팽배하다. 김 장관이 “뼈를 깎는 반성으로 거듭나지 않으면 국민이 여러분을 버릴 것”이라며 경찰의 어깻죽지에 ‘죽비’를 내려친 이유다.

김부겸 장관은 전날 긴급히 소집된 전국 경찰지휘부 회의에 참석해 이 청장과 강인철 중앙경찰학교장 등 논란 당사자들에게 자제를 촉구하고, 대국민 사과문을 직접 발표해 함께 고개를 숙였다. 논란 당사자인 이 청장도 일선 경찰관들에게 서한을 보내 사과하기도 했다.

사실 이번 사태가 발생하기 전까지 문재인 정부에서 경찰은 권력기관 개혁의 선봉에 나설 핵심 조직으로 떠올랐다.

문재인 대통령이 검ㆍ경 수사권 조정을 적폐 청산의 최우선 과제로 제시한 것 역시 지난 정권 검찰이 보여준 오만함을 견제할 주체로 경찰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비록 고(故) 백남기 농민 사망 사건 등으로 경찰 역시 비판의 대상이 됐지만 경찰이 촛불집회 기간 보여준 차분한 집회 대응 기조는 다시금 ’민중의 지팡이’로 태어날 가능성이 남아있다는 점을 보여줬다.

경찰 스스로도 조직 내에 팽배한 권력의 오만함을 버리고 시민의 안전과 인권을 최우선으로 하는 ‘인권 수호기관’으로 거듭나기 위한 개혁에 박차를 가한 상황이다.

그동안 경찰의 행태를 꾸준히 비판해온 시민단체 인사나 변호사, 학자들을 두루 포함하는 경찰개혁위원회가 백남기 농민 사건을 포함한 경찰권 남용 사건에 대한 진상조사에 착수키로 한 것 역시 이같은 노력의 일환이다. 경찰개혁위는 이후로도 집회 관리나 수사 절차에서의 인권 보호, 자치 경찰을 통한 지역 맞춤형 치안 등 개혁과제를 권고안 형식으로 경찰에게 제시하고 경찰은 이를 적극 수용할 계획이었다.

그런데 수뇌부 간 알력과 갈등이 수면 위로 드러나자 당장 개혁과제도 ‘일시중지’ 됐다. 이번 주 중 세번째 권고안을 내기로 했던 개혁위는 지난 11일 전체 회의를 가졌지만 별다른 합의 사항을 도출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황운하 전 수사구조개혁단장이 울산경찰청장으로 이동하는 등 개혁위에 참여하는 간부 일부가 인사 이동이 있었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다른 분과에서조차 결과물을 내놓지 못한 것은 결국 이 청장을 비롯한 경찰 조직이 이번 사태에 정신이 팔려 개혁 과제를 등한시한 것 아니냐는 의심의 눈초리를 피하기 어렵다.

개혁은 시작보다 그 동력을 유지하기 어렵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번 사태는 자칫 경찰 개혁을 넘어 이번 정부가 사활을 건 권력기관 혁신을 시작부터 망가뜨리는 단초가 될 수 있다. 시민단체의 고발로 개혁의 대상인 검찰이 이 청장에 대한 수사에 착수하는 웃지 못할 상황까지 벌어졌다.

김 장관의 개입으로 일단 드러난 상처는 봉합된 것으로 보이지만 강 교장에 대한 중앙징계위원회가 열릴 예정인데다 경찰 내부망에서조차 두 사람의 퇴진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연일 터져나오는 만큼 불씨는 남아있다.

문 대통령 역시 이번 사태가 계속될 경우 이 청장에 대한 신임을 거둘 수 있다는 뜻을 우회적으로 밝힌 상태다. 결국 조직을 살리기 위해서는 개혁의 폭을 넓히고 속도에 박차를 가해 그 결과로 국민을 설득하는 수 밖에 없다.

why37@heraldcorp.com

- Copyrights ⓒ 헤럴드경제 & heraldbiz.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