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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3 (월)

[신율의 정치 읽기] 대권도전 실패한 안철수가 돌아온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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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경이코노미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가 지난 8월 10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당대표 후보자 등록 신청을 하며 환하게 웃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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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의 당대표 경선 출마 선언으로 국민의당은 지금 ‘난리 났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의 진통을 겪고 있다.

안철수 전 대표뿐 아니라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에 이르기까지, 대선 후보였던 이들의 정계 복귀가 빨라졌다. 과거엔 일단 대선에 패배하면 책임을 지겠다며 정계 은퇴 선언을 했다가 한 2년 정도 지난 후에 복귀하거나, 정계 은퇴 선언을 하지는 않았다 하더라도 정계 복귀까지는 일반적으로 2년 정도의 시간이 소요됐다.

작금의 현상이 반드시 나쁘다고 볼 수는 없다. 따지고 보면 대선 실패가 대선 후보만의 잘못은 아니다. 선거 전략과 정치 판세 그리고 대선 후보의 역량이 종합적으로 어우러져야 대선에서 이길 수 있기 때문에 대선 실패를 후보만의 책임으로 돌릴 수는 없다.

과거 정당은 특정인을 중심으로 돌아갔다. 소위 3김 시대에는 DJ와 YS 그리고 JP가 각자 정당의 전부였다. 그래서 이들 3김은 대선 때가 되면 당연히 대선 후보가 됐고, 유권자도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때문에 당시 대선에서 실패했다는 것은 대선 후보 책임이 그만큼 크다는 것을 의미했다. 이들이 대선에서 실패하고 한동안 정치 전면에 나서지 않았던 이유다.

또 이들 3김은 정치 전면에 나서지 않아도 자신이 만든 정당을 얼마든지 컨트롤할 수 있어, 굳이 욕을 먹으면서 조급하게 정계 복귀를 할 필요가 없었다. 지금은 다르다. 어떤 정당도 특정인을 중심으로 모여 있다 보기 힘들다. 여당도 마찬가지다. 여당은 대통령을 배출한 정당이기에 대통령 중심으로 한 정당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대통령도 5년 임기가 끝나면 여당에 대한 영향력이 급속도로 약화되기 때문에 결국 대통령의 정당이 아니다. 지금 우리나라 정당은 인물 중심에서 탈피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이제 우리나라 정당도 추구하는 이념 혹은 방향성에 의해 평가받을 수 있는 시대를 맞을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상황은 오히려 대권 도전에 실패한 후보들을 불안하게 만든다. 과거처럼 자신이 당의 중심이 아니기 때문에, 언제 어떻게 ‘밀려나게’ 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가질 수 있다.


이때 가장 좋은 것은 본인이 당대표를 맡는 것이다. 지금 같은 상황에선 당내에 ‘자기 사람’이 많아야 하는데, 자기 사람을 심기 위해서는 지방선거나 혹은 총선이 좋은 기회다. 총선은 총선대로 지방선거는 지방선거대로 중요하다. 특히 지방선거는 이른바 당의 밑바닥 조직을 맡을 이들에 대한 공천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에 중요하다. 총선은 문자 그대로 ‘굵직한 인물’들을 자기 사람으로 만들 수 있는 좋은 기회다. 그래서 당내 기반이 약하면 약할수록 이런 선거 때 공천할 수 있는 위치에 오르려 하는 것이다.

물론 안철수 전 대표와 홍준표 대표는, 입장에서 차이가 난다. 경남지사였던 홍준표 대표는 한동안 중앙 정치 무대에서 멀리 있었다. 당내 주류였던 친박 인사도 아니었다. 반대로 안철수 전 대표는 대선에 이르기까지 국민의당을 이끌어왔다. 대선 전까지만 보면 홍준표 대표는 당내 기반이 아주 취약했고,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이라는 극단적인 상황이 아니었다면 자유한국당의 대선 후보가 되기도 힘들었다. 하지만 홍준표 대표는 탄핵이라는 최악의 상황에서 나름 선전했다는 평가를 받으며, 이런 여세를 몰아 당대표에 선출됐다. 반대로 안철수 전 대표는 대선 이후 그 세력이 급속도로 약화됐다. 특히 대선 당시 호남에서 문재인 대통령에게 크게 밀리면서 당내 기반이 더욱 취약해졌다.

바로 여기에 홍준표 대표와 안철수 전 대표의 공통점이 있다. 두 사람 모두 과거 혹은 현재에 당내 기반이 그리 튼튼하지 못했거나 약하다는 공통점이다. 반면 한 명은 대선 덕분에, 다른 한 명은 대선 때문에 지금의 당내에서 차지하는 위치가 달라졌다는 차이도 있다. 또 다른 차이점도 있다. 자유한국당은 현재 탈당해 바른정당으로 가겠다고 하는 의원이 거의 없고, 또 당장 바른정당과의 합당을 주장하는 인사도 많지 않다. 하지만 국민의당은 내심 더불어민주당과의 합당을 원하는 인사가 적지 않고, 최악의 경우 개별 탈당을 통해서라도 원대 복귀를 원하는 이도 있다. 이 점 역시 안철수 전 대표를 불안하게 만드는 요인이다. 국민의당이라는 울타리가 무너져 더불어민주당과 얽히게 된다면, 안 전 대표 자신은 설 땅이 없어지는 셈이 된다. 그렇게 되면 아예 정치계에서 사라질 위기에 빠진다. 따라서 안철수 전 대표에겐 이번 당대표 경선이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는 싸움이 된다.

이런 이유로 국민의당이 여론의 주목을 받는다. 요새 국민의당을 보면, 故 김영삼 전 대통령 말이 생각난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모름지기 정치인이라면 본인 부고(訃告) 말고는 언론을 타는 것이 좋다”는 말을 남겼다. 이 말이 들어맞는지 몰라도 요새 국민의당 지지율이 조금 오른 것은 사실이다.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가 7월 31일부터 8월 4일까지 전국 성인 남녀 2535명을 상대로 한 조사 결과(95% 신뢰 수준에 오차 범위는 ±1.9%포인트)를 보면, 증거 조작 사건 이후 꼴찌를 못 면했던 국민의당은 지지율 6.9%로 지지율 3위를 기록했다.

이는 두 가지를 의미한다. 먼저 여론 주목을 받다 보니 국민의 관심이 늘었고, 그래서 지지율이 오른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시각과 유사하다. 두 번째는 안철수 전 대표가 출마 선언을 하면서, 더불어민주당이나 문재인 대통령 지지로 돌아섰던 중도층이 다시 국민의당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 이는 안철수 전 대표가 출마 선언을 하면서 밝힌 ‘극중주의’와도 관련이 있다. 극중주의란 중도층을 흡수하겠다는 강력한 의지의 표현이다.

이론적으로 보면 우리나라 유권자 중 스스로를 중도라고 생각하는 층이 가장 많다. 이들 중 상당수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문재인 대통령 지지층으로 흡수됐다. 박 전 대통령과 최순실 그리고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재판이 계속되고 이를 통해 탄핵 정국이 계속되는 한, 이들은 계속 문재인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을 지지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이들이 계속 문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지지층으로 남아 있을지는 미지수다. 너무 변수가 많기 때문이다.

일단 북한 변수가 있다. 북한 도발이 이어지고 미국과 북한의 대결구도가 지속되면, 문재인정부는 아무래도 부담이 커진다. 이렇게 되면 안보 이슈가 주요 이슈로 대두될 텐데, 여기서 중도 지지층 이탈이 발생할 수 있다. 두 번째는 경제와 부동산 상황이다. 경제가 지금보다 나아지지 않는다면, 그리고 부동산을 잡지 못하거나 거꾸로 지나치게 부동산 경기가 나빠져 오히려 그 부작용을 걱정할 정도가 되면, 중도층의 문 대통령과 민주당에 대한 지지는 철회될 수 있다. 안철수 전 대표는 바로 이런 상황을 대비하려는 의도를 가진 것으로 보인다.

물론 속내는 다를 수 있다. 안철수 전 대표는 일단 이념적 차별성을 부각시키면서 호남 쪽 의원들과는 다른 길을 걸으며 자신을 부각시키는 전략을 사용할 수 있는데, 이는 호남에서의 지지 복원이 어렵다는 판단을 하고 있기 때문일 터다. 결국 안 전 대표가 호남의 지지 기반 대신 중도층을 지지 기반으로 삼으려 한다고 할 수 있다. 지역 기반 대신 이념 기반을 선택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인데, 일정 부분 공감할 수는 있지만 우리나라 정치사에서는 새로운 시도기 때문에 그 한계를 드러낼 가능성도 있다. 한마디로 상당히 모험적인 시도다.

이런 이유에서 국민의당 전당대회는 정계 개편의 단초가 되거나, 우리나라 정치사에 있어서 초유의 실험을 보여주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당연히 안철수 전 대표의 도전 또한 나름 의미가 있다.

여기서 한 가지 밝히고 싶은 점은, 정치란 권력 게임이고 정치인들은 권력 의지가 상당히 강한 사람들이라는 점이다. 이들의 행위를 도덕적 관점에서 파악하고, 이를 기준으로 정치인을 판단하는 것은 맞지 않다. 정치는 정치일 뿐이고, 정치인은 정치인일 뿐이다. 우리는 이런 정치인을 우리에게 유익하도록 이용하면 된다. 즉, 정치인은 따르거나 추종하는 존재가 아니라 유권자의 의도대로 만들어가야 하는 존재다.

지금의 정치 상황도 그렇게 보면 된다. 정치를 이상화시키면 곤란하니.

매경이코노미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1921호 (2017.08.16~08.22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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