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5.12 (일)

[TOPIC] 격변의 통신 시장…약정 할인율 놓고 갈등 정부 강압에 업계 ‘초상집’…해법은 자급제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통신 시장이 격랑에 휩싸였다. 선택약정요금 할인율을 놓고 정부와 이동통신업계 간 갈등이 극심해지고 있는 가운데 단말기 자급제(잠깐용어 참조) 도입 논의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통신 3사는 정부가 예정대로 선택약정요금 할인율을 20%에서 25%로 올릴 경우 가처분 소송도 불사하겠다는 입장이다.

매경이코노미

약정 할인율 인상을 놓고 정부와 통신업계 간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사진은 서울 시내 한 휴대폰 대리점 매장. <매경DB>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선택약정 할인율 20%→25%

▷통신업계 “소송도 불사하겠다”

통신 3사는 8월 9일 정부의 가계 통신비 인하 정책 중 “선택약정 할인율을 20%에서 25%로 올리는 정부의 ‘통신비 절감 방안’에 대해 반대한다”는 의견서를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제출했다. 의견서에는 “정부 고시상 할인율 인상의 상한선이 20%의 5%, 즉 1%기 때문에 25%가 아닌 21%로 인상해야 한다”며 “5G 등 4차 산업혁명 관련 투자로 인해 통신비를 대폭 인하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입장이 담겼다.

당초 정부는 9월 1일부터 ‘선택약정요금 할인율 25% 적용’을 추진할 예정이었다. 지난 7월 28일 이해 당사자인 통신 3사에 이와 관련한 의견 수렴 공문을 보냈다. 하지만 통신업계는 ‘정부안을 절대로 수용할 수 없다’며 강경한 입장을 내비쳤다. 통신 3사 한 관계자는 “(25% 할인이 적용되면) 통신업체들은 각각 수천억원 이익이 줄어든다. 주주들로부터 배임을 이유로 소송을 당할 수도 있다. 통신사가 이 소송에서 이길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말했다.

통신비 인하가 정권 교체 때마다 되풀이될 수 있다는 점도 통신사들이 ‘25% 상향 조정’에 반대하는 이유다. 통신비 인하의 부담을 통신사에만 전가하고 있다는 것이 이들의 논리다. 또 다른 통신업계 관계자는 “선거 때마다 통신비 인하는 단골 공약이 되고 있다. 5년에 한 번씩 선택약정 할인율이 올라가면 통신사들은 모두 문을 닫아야 한다. 단말기 제조사나 데이터 소비를 발생시키는 포털 사이트, 통신 복지를 제공해야 하는 정부 또한 통신비 인하에 책임이 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통신사들의 이 같은 입장에도 정부 방침에 큰 변화는 없을 전망이다. 유영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은 9월부터 할인율 인상안을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정부가 25% 인상을 강행한다면 통신사들은 법적 대응으로 맞선다는 방침을 세웠다. 통신업계 한 관계자는 “법적 검토를 진행한 결과 법원에서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며 “통신사별로 생각이 다르겠지만 의견이 한데로 모아진다면 충분히 소송에 들어갈 수 있다”는 입장을 보였다.

통신사들이 이처럼 강경하게 나오자, 정부는 실력 행사에 나서는 모양새다. 공정거래위원회와 방송통신위원회 등을 활용해 통신 3사에 대한 조사에 들어갔다. 공정위는 통신 3사 요금제 담합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다. 방통위 또한 통신 3사가 약정할인 기간이 만료되는 가입자에게 약정할인제도를 제대로 알리고 있는지를 점검하겠다고 밝혔다.

▶단말기 자급제 논의 본격화

▷SK텔레콤 “도입 검토 가능해”

‘25%’를 둘러싼 정부와 통신업계 간 갈등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단말기 자급제’가 새로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통신업계 1위인 SK텔레콤이 “완전자급제 도입을 검토할 수 있다”고 밝히면서다. 이상헌 SK텔레콤 CR전략실장은 2분기 실적 발표 콘퍼런스콜에서 “정부와 논의해 통신비 인하 합의점을 도출할 계획”이라며 “단말기 자급제 등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다”고 말했다. 단말기 자급제가 정부와 통신사 간 입장 차이를 줄이는 절충안이 될 수 있음을 암시한 것이다.

단말기 자급제 도입 논의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김성태 자유한국당 국회의원이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을 발의하면서 포함됐던 내용이며 이전 19대 국회에서도 등장했지만 별다른 논의 없이 자동 폐기된 바 있다.

지금까지 통신사들은 삼성전자 등 제조사로부터 휴대전화를 구입한 뒤 대리점 등을 통해 소비자에게 판매해왔다. 통신사를 통해서만 단말기 구입이 가능했기 때문에 소비자들은 불만이 많았다. 반면 자급제는 휴대전화 유통을 제조사가 직접 맡는 제도다. ‘제조사→통신사→대리점→판매점’으로 이어지던 통신사 중심의 중간 유통 과정을 없앤다는 취지다.

그간 통신사들은 타사에 점유율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막대한 ‘판매장려금’을 지급하며 유통망(대리점·판매점) 유지에 힘써왔다. 자급제가 도입되면 이런 비용이 줄어들면서 통신사가 통신비를 깎아줄 여력이 커진다.

소비자 입장에선 통신사들이 단말기와 이동통신 서비스를 묶어 팔 때 발생하던 불필요한 낭비를 줄일 수도 있다. 금액을 한정하는 특정 요금제에 의무적으로 가입할 필요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윤문용 녹색소비자연대 ICT정책국장은 “통신사들이 가입자 유치를 위해 차별화된 요금제를 내놓는 등 가격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소비자 혜택도 늘어날 것”으로 예상했다.

지금까진 통신사와 제조사 등의 반발이 커 도입 논의 자체가 제대로 진행되지 못했다. 하지만 통신업계 1위인 SK텔레콤이 ‘검토 가능성’을 내비치면서 도입 논의가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다.

SK텔레콤이 자급제 도입에 찬성으로 돌아선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해석할 수 있다. 우선 매년 조 단위로 지급하던 마케팅 비용을 아껴 다른 신사업에 투자하겠다는 뜻으로 보인다. 또 다른 이유는 다분히 현실적이다. 선택약정요금 할인율을 25%로 올리는 것보다 차라리 자급제를 도입하는 것이 손해가 적다고 내다봤기 때문이다.

SK텔레콤의 속내와 달리 다른 통신사나 제조사는 자급제 도입 논의가 마냥 달갑지 않다. 우선 제조사들은 유통망 관리 등 신경 쓸 부분이 너무 많아진다.

SK텔레콤을 제외한 다른 통신사들도 자급제 도입에 적극적이진 않은 모습이다. 자칫 업계 1위면서 브랜드 평판이 좋은 SK텔레콤에 쏠림 현상이 가속화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또 다른 통신업계 한 관계자는 “자급제는 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커 당장 실현될 가능성이 높지 않다”면서도 “통신 시장구조에 대한 소비자 불만과 정부의 통신비 절감 대책에 대한 업계의 고민이 교차한 결과”라고 해석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대리점 등 영세 유통업자들의 거센 반발이 우려된다. 이들의 모인 단체인 전국이동통신유통협회 관계자는 “6만명에 달하는 중소상인 대부분이 생계를 유지하기 어려워질 것”이라며 “자급제가 도입되면 대형 유통망을 중심으로 시장이 재편되면서 골목상권이 위축될 수 있다”고 반발했다.

아직 논의 단계에 있지만 자급제 도입이 현실화되면 현재 통신 시장구조는 급변할 가능성이 높다. 당장 논란이 되고 있는 단말장치유통구조개선법(단통법)은 유명무실해진다. 통신사와 정부 간 갈등의 씨앗인 ‘선택약정할인제도’도 힘을 잃을 것으로 보인다. 자급제에서는 통신사의 보조금 자체가 없다. 때문에 보조금에 상응하는 요금 할인을 해주는 약정할인제도 또한 존재 근거가 사라지게 된다. 한현배 아주대 ITS대학원 교수는 “25% 약정 할인율 인상은 위헌 소지가 많은 제도다. 정부가 처음 약속했던 통신 기본료 폐지처럼 유야무야로 끝날 수도 있다. 통신사에서 자급제 도입을 먼저 하겠다고 나선 이상 정부가 심도 있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용구 통신소비자협동조합 이사는 “ ‘선택약정 할인율 25%’가 땜질 처방이라면 ‘단말기 자급제’는 병의 원인을 찾고 해결하는 근본 처방전이 될 수 있다”며 “도입 초기에 혼란이 예상되지만 ‘단말기 유통공사’와 같은 공기업을 만들어 운영한다면 문제를 최소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잠깐용어 *단말기 자급제 휴대폰 구입은 전문 판매점에서, 개통은 이통사 대리점에서 각각 따로 하는 제도다. 완전자급제는 대리점에서의 판매도 금지함으로써 휴대폰 구입과 개통의 ‘완전한’ 이원화를 꾀하는 제도다.

[강승태 기자 kangst@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1921호 (2017.08.16~08.22일자) 기사입니다]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