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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7 (금)

[사설] 靑 인사검증시스템 못 고치면 ‘박기영 사태’ 재발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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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영 전 과학기술혁신본부장이 그제 자신의 페이스북 글을 통해 “(언론과 교수 등의) 마녀사냥에 희생됐다”며 “나는 황우석 사건의 진범도, 공모자도 아니다”고 했다. 임명 나흘 만인 지난 11일 잦아들지 않는 비판 여론에 밀려 자진사퇴했는데, 이튿날 억울함을 강변한 것이다. 그는 “마녀사냥 재물을 만들어내는 적폐를 청산해야 진짜 민주사회”라고도 했다. 여권 내부에서조차 ‘불가론’이 나왔던 박 본부장 사퇴는 예고된 수순이었다. 적반하장 격으로 나오는 부적격자를 발탁했던 청와대는 반성해야 한다.

차관급 이상 고위공직자 낙마는 김기정 전 청와대 국가안보실 2차장과 안경환 전 법무부, 조대엽 전 노동부 장관 후보자에 이어 박 전 본부장이 네 번째다. 자격 미달인데도 ‘내 사람’이라는 이유로 강행한 ‘코드 인사’가 근본 원인이다. 장·차관과 청와대 비서관급 이상 110여명 중에서 대선 캠프 출신이거나 노무현정부·인수위 참여 인사가 절반에 이른다. 박 전 본부장도 노무현 청와대에서 과학기술보좌관을 맡아 문재인 대통령과 함께 근무한 바 있다. 문 대통령이 논란을 예상하고도 ‘박기영 카드’를 선택했다는 소리가 나온다. 더 큰 문제는 대통령과 인연 있는 인사라면 무조건 ‘패스’하는 청와대 인사검증시스템이다.

청와대는 10일 “우리나라의 IT 분야와 과학기술 분야의 국가경쟁력은 참여정부 시절 가장 높았다”며 “박 본부장의 과와 함께 공도 평가해야 한다”고 두둔했다. 과학기술계 반발 등 반대 여론이 비등했는데도 그를 감싸며 임명 고수 의지를 보인 것이다. 참모진이 박 전 본부장 전력을 알면서도 문 대통령 의중을 살펴 아무 소리 못했음을 짐작할 만하다. 정상적인 인사 추천·검증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박수현 대변인은 박 본부장이 사퇴하자 “청와대는 본인의 의사를 존중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사태를 자초한 청와대가 남 일처럼 대응하는 꼴이다. 4명의 낙마는 형식만 자진사퇴이지, 내용은 경질이다. 당연히 인사 실패의 책임은 청와대에 있다. 문 대통령은 이번 일을 거울삼아 코드 인사를 지양하고 인사검증시스템을 전면 쇄신해야 한다. 문제를 알고도 잘못을 고치지 않는다면 ‘박기영 사태’는 반드시 재발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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