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6.03 (월)

'문재인 케어’, 고소득자·기업에 또 계산서 들이미나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이진석 사회비서관 “부가세에 건보료 추가 검토해야” 주장

조선비즈

문재인 대통령은 9일 서울 반포동 서울성모병원에서 대부분의 비급여 항목에 건강보험을 적용하겠다는 건보 개혁안을 발표했다. 정부는 그동안 쌓인 적립금에 연 3% 내외 건보료 인상을 통해 재원을 조달하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고령화로 인한 건보료 지출 증가를 감안하면 정부 재정 투입 증가와 건보료 인상 가능성이 높다. /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그동안 건강보험 혜택을 주지 않았던 의료 행위, 치료 재료, 약 등 비급여 항목 3800여개에 건강보험을 적용하겠다는 건강보험 개혁안을 발표했다. MRI(자기공명영상장치), 초음파 등 일부만 건보 적용됐던 항목도 건보 혜택을 받게 된다. 문 대통령은 9일 서울 반포동 서울성모병원에서 “건강보험 하나로 (의료비) 걱정 없이 치료받을 수 있도록 건강보험 보장성을 획기적으로 높이겠다”며 “"건강보험 비급여에 앞으로는 미용·성형을 제외하고는 모두 건강보험을 적용하겠다”고 말했다.

이번에도 문제는 재원이다. 보건복지부는 2022년까지 재정 소요가 30조6000억원이 들어간다고 발표했다. 여기서 2016년말까지 약 20조원이 쌓인 적립금을 헐고, 보험료를 최근 10년간 평균 보험료 인상률(3.2%) 정도 인상해 충당하겠다고 밝혔다. 그리고 부족한 부분은 정부 재정을 추가 투입하겠다는 것이다. 올해 정부 재정 지원 규모는 6조9000억원이다. 2022년 이후에 크게 늘어날 건강보험 지출 소요를 3% 정도인 보험료 인상분으로 감당할 수 있는 지, 그리고 추가로 정부 재정을 어느 정도 투입해야하는 지가 관건이다. 2017~2022년 동안 연도별 신규 소요 규모를 합치면 6조6000억원이다. 매년 이 정도 금액은 더 필요하다는 얘기다.

◆ 국정과제에 빠져있던 사업 비용…조달 계획은 ‘깜깜이’

조선비즈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건보 개혁은 문 대통령의 주요 복지 공약 가운데 하나였다. ‘건강보험 하나로 모든 의료비 해결’이란 구호를 내걸고 건보 보장성을 강화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여기에 소요되는 재정을 어떻게 마련하겠다는 것인지는 언급하지 않았다. 사실상의 인수위원회인 국정기획자문위원회가 7월 발표한 ‘문재인 정부 국정운영 5개년 계획’에서 국정과제 수행을 위한 지출 소요 178조원에 건보 개혁은 언급되지 않았다. 국정기획위 전문위원으로 재정 조달 계획 수립에 깊숙이 관여한 한 더불어민주당 인사는 “당시 발표한 178조원 재정 소요에 건보료는 포함되지 않았다”며 “건보 적립금과 앞으로 흑자 예상분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해 반영하지 않았던 것”이라고 말했다.

건보 재정이 자체적으로 비급여 항목의 전면 폐지를 감당할 수 있는 지에 대해선 정부도 제대로 된 추계를 갖고 있지 않다. 좀 더 정확히 이야기하면 대규모 적자를 예상하던 것에서 추가 지출 여력이 많은 것으로 입장이 확 바뀌었다.

3월 기획재정부는 사회보험 재정 추계에서 2023년에 적립금을 모두 소진하고, 2025년부터는 연간 20조원이 넘는 적자를 낼 것으로 전망했다. 당시 기재부는 건보료 인상액을 최근 3년간 평균인 1.3%를 적용했고, 의료계에 지급하는 수가(진료비)는 2.2% 인상, 정부 지원금은 건보료 수입의 15.6%로 가정했다. 7월에는 보건사회연구원이 ‘인구구조 변화와 사회보험 장기 재정전망’ 보고서에서 건보 적자가 20조원 규모까지 커지는 시점을 2020년으로 당초 정부 전망(2025년)보다 5년 앞당겼다. 보사연은 고령화로 인해 지출이 급격히 늘어나면서 2030년에는 한 해 적자만 108조원이 될 것으로 봤다. 이 보고서는 ‘비현실적인 가정에 기반한 전망’이라는 이유로 보사연 인터넷 웹사이트에서 삭제 처리 됐다. 이러한 비관론은 9일 쑥 사라졌다. 대신 복지부는 건보료를 2~3% 선에서 매년 인상하고, 올해 건보료 수입의 13.8%인 정부 지원금을 17%로 늘리면 "건보 재정이 소진될 가능성은 없다"고 발표했다.

◆ 민주, 黨論은 “고소득자, 사업자 건보료 적게 내고 있다”

조선비즈

청와대 내의 건강보험 관련 전문가이자 관련 업무를 맡는 이진석 사회정책비서관(전 서울대 의대 교수)는 고소득자의 부담이 적다는 것을 현행 건보료 부과체계의 핵심 문제로 본다. /자료: 더불어민주당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이 때문에 결국 건강보험료가 인상될 가능성이 높다. 특히 고소득자, 사업주를 겨냥한 ‘부자, 기업 증세’ 기조가 이어질 것이란 예상이 지배적이다. 민주당이 지난해부터 소득 기준으로 건보료 책정 방식을 바꾸고, 고소득자와 사업주의 부담을 늘리자는 의견을 꾸준히 당론으로 내왔기 때문이다.

지난해 8월 민주당이 개최한 ‘건강보험료 부과체계 개편방안’ 토론회는 민주당의 건보료 부과체계 개편안을 잘 보여준다. 이날 발표를 맡은 이진석 당시 서울대 의대 교수는 지금 청와대 사회정책비서관으로 일하고 있다. 이 비서관은 현행 부과체계의 문제점으로 ‘고소득 직장가입자의 불공정한 부담’, ‘고소득 피부양자의 무임승차’, ‘지역가입자 보험료 부담의 역진성’ 등을 들었다. 고소득 직장가입자는 근로외 소득에 대해 추가 보험료를 내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근로외 소득이 있는 피부양자 몫도 부담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역가입자의 경우 재산을 기준으로 하다 보니 저소득층이 무거운 부담을 지고, 고소득층은 오히려 부담이 가볍다고 이 비서관은 지적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합산소득을 기준으로 건보료를 부과하고 종합소득 기준도 낮춰야 한다”고 이 비서관은 주장했다. 지역 가입자의 경우 전문 자영업자, 1인 이상 근로자를 고용한 사업체를 직장가입자로 대거 자격을 전화하자는 의견도 개진했다.

여기에 한 발 더 나아가 이 비서관은 “소비 활동에 대한 보험료를 부과하는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소비세에 건보료를 함께 포함시키는 독일 방식을 도입해 부가가치세에 건강보험료를 함께 부과하자는 것이다. 하지만 “소득역진성이 강해질 수 있는 데다 미래의 재원으로 쓰일 수 있기 때문에 당장 시행하는 것은 어렵다”고 그는 덧붙였다.

기업 부담이 가볍다는 지적도 당시 토론회에서 제기됐다. 이 비서관은 “근로소득 비중은 줄고 근로외 소득 비중은 늘면서 자연스럽게 건강보험에 대한 기업 부담 보험료 비중이 감소하고 있다”며 “기업 부담 비중을 적정하게 유지하기 위한 방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노사 보험료 비율을 조정하거나 기업 활동에 대한 건강보장세를 신설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었다. 당시 민주당 건강보험 특보를 맡았던 김종대 전 건강보험공단 이사장도 이날 토론회에서 “사업주 부담 비율이 형편없이 낮은 현실을 감안해 법인세에 부가하는 형태의 사회보장세를 둬서 사업주 부담 비율을 증가시키는 입법적 노력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결국 이번에 발표하진 않았지만 민주당의 당론은 고소득자, 사업주의 건보료 부담을 늘리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건보료 체계를 개편하는 한편 사회보장세 등을 도입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정부 재정 지출 확대도 민주당의 당론이다. 그리고 8월 초 발표한 세제 개편안에서 드러난 것처럼 재정 지출 확대의 타깃은 주로 고소득자와 기업이다. 문 대통령의 9일 발표에 대해 부자와 기업에 대한 추가 증세 가능성이 높아졌단 분석이 나오는 것은 이때문이다.

조귀동 기자(cao@chosunbiz.com)

<저작권자 ⓒ ChosunBiz.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