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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기자 등급 분류·요주의 인물…MBC판 ‘블랙리스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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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노조 ‘카메라기자 분석 문건’ 공개

2012년 파업 참여 여부 등 기준

‘주동층-회색분자-순응-충성’ 나눠

요주의 12명엔 인신공격성 인물평

사쪽 “경영진은 본 적 없는 문건”

특별감독 고용부, 일부 수사 전환



한겨레

서울 상암동 문화방송 사옥. 정용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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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방송>(MBC) 기자들을 대상으로 한 내부 ‘블랙리스트’의 존재가 뒤늦게 알려졌다. 해당 문건은 카메라기자 전원을 대상으로 2012년 파업 참여 여부, 노동조합과의 관계, 회사에 대한 충성도 등을 기준으로 개별 성향·등급을 분류했으며, 각종 인사 평가와 인력 배치에 실제 활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문화방송이 2012년 파업 참여자에게 징계 등 인사상 불이익을 준 건 널리 알려졌으나, 이렇게 노골적으로 기자들의 성향을 구분해 등급을 매긴 문건이 공개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전국언론노동조합 문화방송본부(노조)는 8일 기자회견을 열고 최근 입수한 문건 ‘카메라기자 성향분석표’, ‘요주의인물 성향’ 2건을 공개했다. 문건들은 2013년 7월6일에 작성돼 2014년 2월16일까지 수정됐다. 김연국 문화방송 노조위원장은 “2013년 3월 법원이 노조의 전보발령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인용하면서, 회사가 파업 참여를 이유로 밀어냈던 기자·피디·아나운서 등 구성원 상당수가 현업으로 복귀했다. 문건 작성 시기를 보면, 회사가 이러한 상황에 대한 대처 방안으로 인사권을 휘두르기 위해 만든 정황이 뚜렷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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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언론노동조합 문화방송본부가 8일 공개한 ‘블랙리스트’ 문건 일부. 전국언론노동조합 문화방송본부 제공 * 이미지를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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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기자 성향분석표’는 문서 작성 당시 보도 부문에 재직하던 카메라기자 65명을 파업 참여 여부, 노동조합과의 친소 관계, 회사 정책에 대한 충성도 등을 기준으로 삼아 네 등급으로 나눈 것이다. 네 등급은 ‘☆☆: 회사의 정책에 충성도를 갖고 있고 향후 보도영상 구조 개선과 관련 합리적 개선안 관련 마인드를 갖고 있는 이들’(6명), ‘○: 회사의 정책에 순응도는 높지만 기존의 카메라기자 시스템의 고수만을 내세우는 등 구체적 마인드를 갖고 있지 못한 이들’(19명), ‘△: 언론노조 영향력에 있는 회색분자들’(28명). ‘×: 지난 파업의 주동 계층으로 현 체제 붕괴를 원하는 이들’(12명)로 분류했다.

‘요주의인물 성향’ 문서에서는 등급별로 개인 평가를 상세하게 서술했다. 특히 ‘×’ 등급은 12명 전원의 인물평을 썼다. 2012년 파업에 적극 참여했거나 노조 또는 영상기자회의 집행부를 맡았다는 이유로 ‘절대 격리 필요’, ‘보도국 이외로 방출 필요’, ‘주요 관찰 대상’ 등의 표현을 사용했다. ‘개인 욕심이 많아 기회시 변절할 인원’, ‘언제든 회유 가능’이라는 인신공격성 표현도 서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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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언론노동조합 문화방송본부가 8일 공개한 ‘블랙리스트’ 문건 일부. 전국언론노동조합 문화방송본부 제공 * 이미지를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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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가 문건을 공개하자 문화방송 ㄱ 기자는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자신이 해당 문건을 작성했다고 밝혔다. ㄱ 기자는 “2012년 170일 파업에 참여했다. 파업이 끝나고 복귀하자 언론노조원들은 (파업) 적극 참여자와 소극 참여자를 구분하며 편가르기를 했고, 2013년 문화방송노동조합(제3노조)에 참여하고 더욱 큰 비난을 받아야 했다”며 “공개를 위해 만든 것도 아니고, 괘씸한 박쥐들을 절대로 잊지 말자고 2명의 친한 카메라기자와 공유한 내용”이라고 주장했다. 자신이 겪은 일을 기록하는 ‘개인적 차원’에서 문건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노조는 문건 작성 지시·관리가 회사 쪽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을 것으로 추정했다. ‘×’ 등급으로 분류된 기자 대부분이 2012년 파업 뒤 보도국 밖으로 쫓겨났거나, 보도국 안에서도 중요도가 낮은 부서에 배치됐기 때문이다. 다수 기자들은 2012년 파업 이후 승진 심사에서도 매번 탈락했다. ‘×’ 등급으로 분류된 23년차 양동암 기자는 “문화방송에서 내가 ‘최고참 차장대우’일 것이다. 2012년 파업 뒤 한번도 승진하지 못했다. 또 파업 뒤 정직 3개월, 교육발령 6개월을 거쳐 2013년 5월에 보도국으로 복귀한 지 한달 만에 보도국 밖으로 밀려나서 지금까지 돌아가지 못했다”고 말했다.

문화방송 영상기자회는 7일 긴급총회를 열고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렸다. 노조는 9일 검찰에 문화방송 법인, 김장겸 당시 보도국장(현 사장), 박용찬 당시 보도 부국장(현 논설위원실장), 문건 작성자를 상대로 부당노동행위 혐의 등의 고소장을 접수할 계획이다.

문화방송은 이날 입장문을 내어 “언론노조가 내세운 ‘카메라기자 성향 분석표’는 회사의 경영진은 물론 보도본부 간부 그 누구도 본 적도 없는 문건”이라며 “허위 사실을 유포해 회사의 이미지를 실추시키고 경영진과 보도본부 간부들의 명예를 훼손한 인사들, 매체들에 대해서 법적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밝혔다.

김효실 기자 tran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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