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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6 (목)

인간 PB vs 로봇 '수익률 생존 경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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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한은행 위성호 행장은 최근 스마트폰으로 가입하는 이 은행의 모바일 자산 관리 서비스인 '엠폴리오'에 1000만원을 투자했다. '엠폴리오'에 가입하는 첫 단계는 PB(고객 자산관리 전문가)와 로보어드바이저(robo-advisor) 가운데 어느 쪽을 선택할 것인지 정하는 것이다. 위 행장은 인공지능(AI)을 기반으로 한 온라인 자산관리 서비스인 로보어드바이저를 선택했다.

그리고 며칠 뒤 위 행장은 서울 시내의 한 지점을 방문해 같은 금액을 PB에게 맡겼다. 그는 "자산관리 전문가와 로보어드바이저 가운데 어느 쪽이 수익을 더 낼지 궁금하다"고 말했다. 은행권 관계자는 "행장께서 PB와 로보어드바이저 간 수익률 경쟁을 시킨 셈"이라며 "행장은 로보어드바이저가 이기면 '신한은행 로보어드바이저가 매우 훌륭하다는 것이 입증됐다'고 하면 그만이지만, PB로서는 '이겨야 본전'이다. 만약 로보어드바이저에게 진다면 곤혹스러운 처지가 될 수 있어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위 행장에게 1000만원씩을 투자금으로 받은 로보어드바이저와 PB가 '정면 승부'를 벌이게 된 판이다.



조선비즈


로보어드바이저가 은행권에서 본격적으로 출시되기 시작하면서 은행 PB들의 스트레스가 커지고 있다. '로봇(robot)'과 '투자전문가(advisor)'의 합성어인 로보어드바이저는 빅데이터 분석을 통해 인간 대신 컴퓨터가 투자 포트폴리오를 짜주는 서비스를 뜻한다. 핀테크(fintech·금융과 정보기술의 결합) 회사를 중심으로 많이 개발돼 오다가 최근엔 은행들도 디지털 전략 강화 차원에서 관련 상품을 잇달아 내놓고 있다. 로보어드바이저 도입이 늘어나면서 금융위원회는 작년 말부터 일종의 인증이라고 할 수 있는 테스트베드(시험 운영)를 진행하고 있다. 주요 은행들은 지난 5월 초 금융위의 1차 테스트베드를 통과했다는 통보를 받고 본격적으로 로보어드바이저 상품을 내놓고 있다. 신한은행이 로보어드바이저 전문업체인 디셈버앤컴퍼니와 구축한 '엠폴리오', 우리은행의 '로보-알파', NH농협은행의 '로보-Pro' 등이 1차로 '합격' 통보를 받았다. KEB하나은행은 기존 시스템을 업그레이드해 5월부터 진행 중인 2차 테스트베드에 참가 중이다.

금융회사가 앞다퉈 디지털 전략 강화를 내세우는 가운데 금융위가 은행권 로보어드바이저의 '문'을 열어주면서 은행장들부터 로보어드바이저 상품에 돈을 투자하기 시작했다. 신한은행 위 행장과 우리은행 이광구 행장이 5월 말 각 은행의 로보어드바이저에 돈을 투자했고, KEB하나은행 함영주 행장도 지난달 12일 이 은행의 로보어드바이저인 '하이로보' 출시 첫날 로보어드바이저에 투자하고서 수익률 추이를 지켜보는 중이다.

은행원들은 로보어드바이저의 확산이 거스를 수 없는 대세라고 인정하면서도, 불편한 심정을 감추지 않고 있다. 한 은행 PB는 "지점과 인력에 투입돼온 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인 인터넷 전문은행들이 예상보다 좋은 호응을 얻으면서 시중은행의 막대한 인력이 과연 필요한지에 대한 회의론이 회사 안팎에서 대두하고 있다"며 "이런 가운데 로보어드바이저가 PB보다 더 나은 수익을 내서 고객 자산관리 업무도 인간보다 AI가 낫다는 결론이 내려지면 어쩌나 싶다"고 말했다.

온라인 금융이 확산되면서 은행권이 전반적으로 직원을 줄이고 있지만, AI 전문가만은 '부르는 게 몸값'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영입 경쟁이 치열하다. 우리은행은 AI·빅데이터 관련 전문 인력을 채용 중이고 국민은행도 8월 10일까지 빅데이터 분석 전문가 채용 서류를 받고 있다. 국민은행은 '비(非)금융권 시각의 고객 분석 능력'이 필요하다고 공고했다. 한 은행 PB는 "이러다가 은행원의 업무가 AI 유지·보수로 전락하는 것 아니냐는 걱정도 나온다"고 말했다. 지난해 말 은행 직원 수는 6만7693명으로 한 해 전(6만9669명)보다 약 2000명이 줄었다.




김신영 기자(sky@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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