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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3 (월)

"해외로 떠나는 공장 욕하던 나였는데… 최저임금 때문에 버틸 여력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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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비즈



"남들 다 한국을 떠날 때 국내 공장에 1300억원을 투자하며 한국을 지켰고, 해외로 떠나는 공장 욕하던 내가 최저임금 때문에 더는 버틸 여력이 없어졌습니다."27일 본지 전화 인터뷰에서 전방(옛 전남방직) 조규옥(71·사진) 회장은 격앙된 목소리로 울분을 토로했다.

조 회장은 하루 전날인 26일 본지에 "최저임금이 16.4% 오르게 되면 회사 문을 닫을 수밖에 없다"며 "최저임금을 협상한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에서 탈퇴할 수도 있다"고 밝혔다. 〈본지 7월 27일자 A1면〉

전방은 1935년 광주에서 창업한 국내 최장수 기업 중 한 곳이다. 섬유 산업이 전성기이던 1960년대엔 국내 수출의 15%를 담당할 정도로 한국 경제의 핵심축이었다. 해외 저가 제품과 경쟁해야 하는 섬유 업계는 결국 인건비가 문제였는데, 갈수록 경쟁력을 잃어가던 상황에서 이번 최저임금 인상으로 결정타를 맞았다.

조 회장은 이날 "정말이지 일자리를 끝까지 지키고 싶다"면서 "다른 방직 회사들이 해외로 공장을 이전할 때도 꿋꿋이 국내 생산 원칙을 지켰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전방은 1996년 인도에 600억원을 투자해 설립한 공장 설비도 정부의 '유턴 정책'에 맞춰 포기하고 국내로 생산 물량을 돌리기도 했으며, 이후 한국에 최신 생산 설비를 들이는 등 투자를 이어 왔다.

조규옥 회장은 요즘 하루 2시간을 못 잔다고 했다. 건강도 나빠져 이날도 전화 인터뷰 직전 병원에 다녀왔다고 했다. 그는 "이럴 바엔 남들 다 해외로 나갈 때 함께 보따리 쌌어야 했는데 괜히 버티다가 지금 이런 꼴을 당하고 있다"면서 "이제 모두 의미 없는 일이 됐다"며 허탈해했다. 조 회장은 인터뷰 내내 답답한 듯 말을 잇지 못했고, 자주 목소리가 높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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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답답해… 밥이 목구멍에서 넘어가지 않아” - 27일 조규옥 전방 회장이 언론 인터뷰에서 답답한 듯 손으로 머리를 감싸고 있다. 조 회장은 27일 본지 인터뷰에서 “(지금 상황이 너무 답답해) 오늘도 밥 한 톨 못 먹었다. 밥이 목구멍에서 넘어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한국경제신문 제공



국내 면방 산업이 쇠락으로 빠진 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최대 수출처이던 중국에선 면사 자급도가 급격히 올라가고, 인도는 초저가를 내세워 경쟁력을 높이고 있다. 국내 면방 산업은 원재료인 '원면'을 100% 수입하기 때문에 인건비를 제외하면 원가를 줄이기 쉽지 않은 구조다. 그래서 국내 면방업체 상당수가 베트남이나 중국 등으로 이전한 상태다.

지난 24일 국내 1호 상장 기업인 경방(옛 경성방직)은 최저임금 인상을 이유로 이사회를 열어 광주광역시 공장 설비의 절반 정도를 베트남으로 옮기겠다고 결정했다. 조 회장은 "우리보다 그나마 사정이 나은 경방도 그런 결정을 했는데 우리라고 더 버틸 수 있겠느냐"고 했다.

조 회장은 '일자리' 애착이 남달랐다. 2001년 사장으로 부임한 그는 기울어져 가는 회사의 재무구조를 개선하기 위해 간부들을 구조조정했다. 하지만 공장 직원은 한 사람도 강제로 해고하지 않았다. 불안해하는 직원들을 위해 노조 대의원 회의에 참석해 "앞으로 정년까지는 문제없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전방 직원의 80%는 주부 사원이다. 정년을 넘긴 60대도 많다. 집에 사정이 있으면 한 달씩 휴직도 가능할 정도다.

직원들도 조 회장의 마음을 잘 안다. 2011년 공장 자동화로 어쩔 수 없이 250명을 감축하기로 노조와 합의했지만, 조 회장은 "직원들을 도저히 못 내보내겠다"며 이를 철회하기도 했다. 그러나 전방은 지난해에도 125억원의 적자를 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전방이 50% 지분을 투자해 일본 섬유업체와 함께 설립한 속옷 생산업체 '전방군제'는 일본 측에서 '인건비 인상'을 이유로 철수해 버렸다. 조 회장은 "끝까지 설득해보려 했지만 '한국은 최저임금이 가파르게 올라갈 것 같다'고 하다가 떠나버렸다"고 전했다. 그는 "당시 우리는 일본 측에 '설마 최저임금이 10% 이상 오르겠느냐'고 큰소리쳤는데, 일본 측은 지금쯤 '잘 철수했다'고 생각할 거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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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회장은 "내년도 문제지만 2020년까지 계속 최저임금이 오르면 더는 버틸 여력이 없다"고 했다. 지난해 회사 인건비는 약 162억원. 직원 1200명 중 내년부터 최저임금을 적용받는 직원만 600여명이다. 이들에게 올해 임금 인상분을 적용하면 연간 25억원이 추가로 들어간다. 조 회장은 "최근 600여명을 감축하겠다는 구조조정안을 발표하자 한 직원이 전화를 걸어와 '그동안 고마웠다'며 울먹였다"면서 "국내 공장을 폐쇄하기로 했다가 이를 백지화하면서 내가 '분발해서 같이 가자'고 했던 직원들인데, 이제 다시 그 직원들을 내 손으로 쳐내야 할 상황"이라고 했다.

노조는 현재 회사가 원하는 것은 대부분 수용하겠지만, 감원 폭이 너무 크다는 입장이다. 회사 측은 "지금 상태론 직원 모두를 끌고 가기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이런 상황에서 임원들은 이미 연봉 10%를 자진 반납했다.

조 회장은 정부의 탈(脫)원전 정책으로 산업용 전기료가 올라갈 가능성도 크게 우려하고 있었다. 전기료는 인건비와 함께 생산 원가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절대적이다. 조 회장은 "수많은 섬유업체가 이미 보따리를 쌌고, 전기료마저 오르면 점점 더 많은 업체가 한국을 떠나게 될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는 "우리 회사만은 망하면 망했지 해외 이전은 하지 않는다"고 거듭 강조했다. 그는 대한방직협회 회장을 맡았을 때 해외로 공장을 이전하는 기업에 "도피하는 것 아니냐" "일자리는 어떻게 하느냐"고 했던 적이 있다고 했다. 그는 "그런 내가 어떻게 해외로 공장을 옮기겠느냐"고 되물었다.

최저임금 인상 과정에서 사용자의 입장을 제대로 대변하지 못한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에 대한 '쓴소리'도 이어졌다. 조 회장은 "경총은 전방이 주도해서 만든 단체"라며 "똘똘 뭉쳐도 될까 말까 한 시기에 최저임금 협상에서 경총이 정부의 급격한 인상안에 동조한 것이나 다름없다. 섬유업계가 인건비 때문에 난리인데 경총이 한 게 무엇이냐"며 경총을 비판했다.



곽래건 기자(ra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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