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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아버지는 마음을 그림으로 표현하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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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욱진 화백의 딸 장경수씨 "마지막까지 그림 그리셨던 분"

인사아트센터서 탄생 100주년 展

"홀로 덕소 작업실로 들어가신 아버지(장욱진)를 뵈러 청량리에서 버스를 타고 갔는데 그림을 안 그리고 계신 거예요. '식구를 내팽개치고 여기서 뭐 하시느냐'고 여쭈니 술 드신 아버지가 '너는 뭐고 나는 뭐냐'라고 하시더군요. 그땐 '아버지가 소크라테스냐'고 대들었는데 지금 보니 아버지는 빈집에서 그림 그리며 투쟁하고 계신 거였어요."

이중섭·박수근과 함께 한국 근현대 미술사를 이끈 장욱진(1917~1990) 화백의 딸 장경수(72) 경운박물관장이 지난 24일 '장욱진 백년, 인사동 라인에 서다' 전시가 열리고 있는 서울 관훈동 인사아트센터에서 회상에 젖었다. '동심(童心)의 화가'로 불리는 장 화백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이번 전시엔 대표작인 '진진묘(眞眞妙)', 부처의 일대기를 그린 '팔상도' 등 100여 점이 공개됐다. 가족조차 처음 보는 작품도 있다. 장 관장은 "한 번도 본 적 없는 새로운 그림을 마주할 때마다 아버지를 다시 만나는 것 같다"며 "아버지는 투철한 작가 의식을 가진 화가이자 따뜻했던 분"이라고 말했다.

조선일보

장욱진 화백의 대표작‘진진묘(眞眞妙)’앞에 서 있는 장녀 장경수 경운박물관장. /정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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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바닥에서 그림을 그리고 뜻대로 안 되면 술을 드셨지요. 가정적이진 않았지만 저희 형제들은 아버지의 마음을 알았어요. 아버지 그림에 그려진 어린아이를 보면서 형제들이 다들 그 아이가 자기라고 우겼지요."

가족을 주제로 한 작품에선 주로 여자와 아이가 앞쪽에 크고 밝은 색으로 그려져 있고, 남자는 뒤쪽에 어두운 색으로 칠해져 있다. "아버지가 가족을 그리면 어머니를 앞쪽에 크게 떳떳한 모습으로 그리고, 당신은 뒤에 숨어 있거나 반만 보이게 그리셨어요. 그림 그리느라 가장 역할을 제대로 못 한 것에 대한 죄책감이 그림으로 드러난 것 같아요."

부녀(父女)는 죽이 척척 맞았다. "아버지와 일곱 살 때부터 손잡고 산책하러 다녔어요. 성인이 된 후엔 조용히 저를 작업실로 불러 가장 먼저 자랑하듯 완성작을 보여주셨죠. 그래서일까요, 아버지 그림을 보면 아버지의 슬픔, 기쁨이 그대로 느껴지는 것 같아요."

장 화백은 딸에게 "모든 사물을 친절하게 보라"고 일렀단다. 데면데면 보지 말고 자세히 보라는 뜻이다. "아버지는 '모든 것에 최선을 다해 몸을 쓰다가 떠날 것'이라던 말씀대로 마지막까지 있는 힘껏 그림을 그리다 가셨어요. 참으로 언행일치한 분이셨지요."

[정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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