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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7 (금)

[매경이 만난 사람] 카카오뱅크 고문 역할로 돌아온 김승유 前하나금융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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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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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명 남짓한 작은 금융회사를 공격적인 인수·합병(M&A)을 통해 직원 2만3000여 명의 금융그룹으로 키워낸 '금융권 최고 승부사' 김승유 전 하나금융그룹 회장이 3년 만에 금융권으로 돌아왔다. 최근 한국투자금융지주는 국내 2호 인터넷은행인 한국카카오은행(카카오뱅크) 출범을 앞두고 김 전 회장을 비상근 고문으로 전격 영입했다.

한국투자금융지주는 27일 문을 여는 두 번째 인터넷은행 카카오뱅크 지분 58%를 보유한 최대주주다. 김남구 한국투자금융지주 부회장 부친인 김재철 동원그룹 회장이 직접 나서 금융계에서 산전수전 다 겪은 그를 카카오뱅크를 성공으로 인도할 '키잡이'로 발탁했다.

김 전 회장을 24일 서울 여의도 한국투자증권 9층에 위치한 임원실에서 만났다. 김 전 회장은 넥타이 없는 와이셔츠 차림에 밝은 얼굴로 취재진을 맞이했다. 그는 "하나금융 시절엔 치열한 경쟁을 직접 뚫어야 하는 선장이었지만 지금은 유능한 젊은 사람들의 '조력자' 역할만 하면 된다"면서 "새로운 분야를 공부한다는 기대감 때문에 금융업에 처음 뛰어든 젊은 시절로 돌아간 기분"이라며 환하게 웃어보였다. 다음은 일문일답.

어떻게 인터넷은행에 합류하게 됐나.

▷김재철 동원그룹 회장은 하나은행 전신인 한국투자금융을 세웠을 당시부터 사외이사 겸 대주주여서 오랜 인연이 있다. 김 회장은 벤처 창업부터 시작해 한국금융지주를 키워낸 타고난 경영자이자 기업가정신이 뛰어난 분이라고 생각한다. 오랜 기간 은행원이자 관리자로만 살아온 나에게는 부족한 부분이어서 평소 교류하면서 많은 가르침을 얻고 있다.

다른 회사에서도 제의가 있었지만 김 회장이 내 경험을 살려 이번에 시작하는 카카오뱅크 고문 역할을 맡아달라고 해서 참여하게 됐다. 무엇보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본격적인 이종산업 간 융합이 시작되는 과정을 곁에서 지켜보고 싶다는 마음이 강했다.

카카오뱅크의 앞날을 어떻게 보나.

▷시중은행과 똑같이 해서는 당연히 승산이 없을 것이다. 다행히 카카오가 IT기업으로서 은행과는 마인드가 많이 다르다. 카카오의 대고객 노하우와 금융산업 노하우를 서로 결합시키면 새로운 금융서비스 영역을 개척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인터넷은행을 중심으로 한 핀테크는 예상보다 빠르게 우리 사회를 바꿔놓을 것으로 본다. 세계에서 스마트폰 보급률이 가장 높은 나라가 한국이다. 일본도 70%밖에 안 되는데 한국은 90% 이상이다. 금융, 유통, 통신 등 서로 다른 산업이 융합되는 현상이 빠르게 진행될 것이다. 단순하게 규모가 작은 인터넷은행보다 시중은행이 핀테크 서비스를 훨씬 더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시중은행들은 기존 사업에 대한 카니발라이제이션(내부 잠식) 우려 때문에 적극적으로 핀테크 서비스를 개발하는 게 쉽지 않다. 외국의 경우를 봐도 자산 규모가 작은 JP모건 같은 곳이 훨씬 더 인터넷뱅킹에서 앞서가고 있다. 카카오뱅크도 향후 5~10년간 장기적 안목을 갖고 준비하면 기존 은행을 뛰어넘을 수 있을 것이다.

시중은행이 모두 인터넷전문은행화되면서 실물점포가 사라지는 시대가 올까.

▷한 은행당 1만5000명 이상의 직원들이 있는데 은행원들이 과감하게 역할을 바꿔야 한다. 이대로 가면 직장을 다 잃을 수도 있다. 위기감을 느껴야 한다. 보험업계에선 보험판매사를 '라이프플래너'로 부른다. 은행원들도 자산만이 아닌 고객의 생애주기별 재테크를 종합적으로 관리해주는 라이프플래너가 돼야 한다. 고령화 시대를 맞아 정년이 가까워진 직원들이 젊은 세대에게 양보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도 중요하다. 큰 급여를 기대하지 말고 젊은 층을 도와준다는 차원에서 잡셰어링으로 일을 나눠야 한다. 조기정년제도, 임금피크제 등을 통해 젊은 층 실업 문제가 해결될 수 있도록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 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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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상반기 하나금융을 비롯한 4대 금융지주가 모두 사상 최대 실적을 냈는데.

▷금융업 이익은 결국 대손충당금과 순이자마진(NIM)이 어떻게 움직이느냐가 좌우한다. 대손충당금은 자산의 질과 관련이 있고 순이자마진은 전체 시장 상황과 고객 구성에서 결정된다. 후자는 전체 업종이 비슷하게 간다. 결국 이번에 실적이 좋았던 것은 금융사가 장사를 잘해서 그런 게 아니라 시장이 좋아서 그랬다는 얘기다. 누가 가장 많은 이익을 냈는지 등 보여주기를 위한 이익 경쟁에 지나치게 집착하지 말고 돈을 벌 때 대손충당금을 충분히 쌓아놓을 필요가 있다. 사이클을 그리는 게 금융업 특성이기 때문에 미리 위험에 대비하는 차원이다. 웰스파고은행은 300~400%까지 충당금을 쌓는다.

또 공익적인 성격이 강한 은행권이 이익을 많이 내는 것에 대한 국민적 시선도 좋지 않다. 실적 경쟁을 하기보다 사회공헌을 늘리고 중장기 투자를 통해 일반 국민들로부터 지지와 사랑을 받는 산업으로 거듭나야 한다. 내가 1997년 하나은행장이 됐을 때 처음으로 만든 것이 어린이집이었다. 우리 사회의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시도였는데 금융사 최초였다. 치매 노인들을 위해 노인요양센터도 만들었다. 사회 공익을 위해 은행들이 분담해서 다양한 사업을 할 필요가 있다.

산업 발전을 위한 벤처펀드를 조성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지난 20년간 네이버 등 일부 기업을 빼고 시가총액 상위권 기업이 바뀐 곳이 거의 없다. 은행이 직접 투자하긴 힘드니 벤처펀드를 만들어서 벤처 생태계를 살리는 노력을 할 필요가 있다. 남는 이익금을 투자해 금융산업 전문가를 육성하는 것도 고려해볼 만하다. 홍콩이나 싱가포르 등 외국에서 인재 콘퍼런스를 개최해 해외 네트워크를 강화해야 한다.

실손보험료나 카드 가맹점 수수료 인하 등 정부가 가격에 개입하고 있다.

▷정부가 가격 체계에 직접적으로 개입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가격은 시장 경쟁을 통해서 결정되도록 해야 한다. 직접 개입하는 것은 그 업종의 경쟁력을 키우는 데 도움이 안 된다. 경쟁력은 자유경쟁을 통해서만 배양된다. 치열한 경쟁을 스스로 하도록 해야지 정부가 직접 가격에 개입하면 잘한 곳, 못한 곳이 차별화가 안 되고 잘못되면 나중에 정부가 다 구제해야 한다. 자유롭게 경쟁하되 기업 간 담합 같은 행위에는 철저히 과징금을 부과하는 등 사후규제를 강화하면 된다. 한국 금융산업은 진입장벽이 너무 높은데 이를 완화할 필요가 있다. 진입장벽은 완화하고 경쟁을 통해 가격이 자연스럽게 인하되도록 만들어 소비자에게 이득이 되도록 하는 게 맞는다.

은산분리 완화없인 인터넷銀 미래없어

산업자본 지분 25%까지 늘려도 은행 독립성 아무 문제 없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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넥타이를 매지 않은 셔츠 차림으로 인터뷰에 응한 김승유 전 회장은 하나금융 회장으로 재직하던 시절보다 한층 편안해진 얼굴이었다. 비결을 물어보니 요즘 사는 곳의 주변 환경이 좋아진 영향이 큰 것 같다고 했다.

김 전 회장은 지난 5월 삶의 터전이었던 서울 을지로를 떠나 부친의 고향인 충남 당진시 전원주택으로 거처를 옮겼다. 하루 일과 시간의 대부분을 고향에서 작은 텃밭을 일구며 인터넷은행 미래를 구상하는 데 쓰고 있다고 한다.

김 전 회장은 "당진 시내에서 한참 들어간 한적한 곳에 농가주택을 짓고 살고 있다"며 "1층이 30평, 2층이 10평쯤 되는 작은 집을 2년에 걸쳐 직접 지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김 전 회장은 "일주일에 하루 이틀 정도만 서울에 올라오고, 나머지 시간은 당진에서 조용히 보낸다"며 "텃밭을 일구면서 시간이 날 때마다 핀테크나 미래 산업에 대한 책을 읽고 있다"고 덧붙였다.

김 전 회장은 스스로를 정보기술(IT) 문화에 익숙한 '얼리어답터'라고 소개했다. 그는 "출장으로 외국에 가면 택시보다 편리한 '우버'를 자주 이용한다"며 "인터넷은행도 일단 편리하다는 인식이 퍼지면 우버처럼 전 세계적으로 빠르게 확산되는 데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김 전 회장은 이번에 고문 역할을 맡은 카카오뱅크가 앞서 지난 4월 출범한 1호 인터넷은행 케이뱅크 실적 증가 속도를 구태여 따라잡을 필요가 없다고 선을 그었다. 그는 "케이뱅크가 70여 일 만에 자산 1조원을 쌓았다고 하지만 시중은행 한 곳의 자산 규모가 350조원 정도 되는 것을 감안하면 여전히 미미한 수치"라며 "케이뱅크와 실적을 비교하며 성급한 마음을 갖기보다 장기적인 안목으로 신선한 서비스를 개발해 소비자 마음을 사로잡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당장 인터넷은행과 시중은행 모바일뱅킹 애플리케이션(앱)의 차이가 거의 없기 때문에 급하게 자산을 늘리는 것보다는 기존 은행에 없는 새로운 서비스를 개발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인터넷은행이 기존 시중은행 모바일뱅킹보다 나은 서비스를 구현하려면 최소 5년에서 10년은 걸릴 것"이라며 "성급히 실적을 내기보다는 농사를 짓는 것처럼 시간이 걸리더라도 이용자들에게 '뭔가 다르다'는 인식을 심어줘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는 낯선 영역인 인터넷은행 고문을 선뜻 맡은 데 대해선 "인터넷뱅크는 내가 잘 모르는 영역이라 오히려 공부를 해보고 싶다는 마음으로 일을 맡게 됐다"며 "한국금융지주는 물론 기업가정신이 투철한 카카오와 손잡고 금융권 '메기' 역할을 하게 될 카카오뱅크의 새로운 출발에 동참하게 돼 기쁘게 생각한다"고 소회를 밝혔다.

김 전 회장은 인터넷은행이 성공하려면 은산분리(산업자본의 은행 지분 보유 제한) 완화가 꼭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카카오뱅크는 애초 IT 기업인 카카오가 설립을 주도했지만 은산분리 원칙 때문에 많은 지분을 갖기 어려워 한국금융지주가 최대주주가 된 상황이다. 현행법은 산업자본이 의결권 있는 은행 지분을 4%까지만 보유할 수 있도록 하고 있기 때문에 카카오뱅크 역시 앞서 출범한 케이뱅크처럼 자본 조달에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높다.

김 전 회장은 "정치권이 1970~1980년대에나 통하던 옛날 논리를 가지고 '전가의 보도'처럼 은산분리 원칙을 고집하고 있다"며 "이미 기업들은 주식, 채권 발행 등 직접금융을 통해 자본을 충분히 조달하고 있기 때문에 은행이 재벌의 사금고가 될 수 있다는 우려는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인터넷은행에 한해 산업자본의 보유 지분을 25% 정도까지 확대해도 은행 독립성에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이라며 "정치권이 더 고집을 부리다가 우리보다 앞서 나가고 있는 선진국 핀테크 산업에 더 뒤처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금융권 최고 승부사' 김승유 前 회장은

김승유 전 하나금융 회장의 별명은 '금융권 최고 승부사'다. 직원 20명의 단기금융투자사로 출발한 하나금융을 과감한 인수·합병(M&A) 전략으로 국내 4대 금융그룹으로 성장시켰기 때문이다.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충청은행을 인수했고 이후 보람은행(1999년), 서울은행(2002년), 대한투자신탁(2005년)에 이어 2010년엔 외환은행까지 손에 넣었다.

김 전 회장은 1965년 고려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후 한일은행에서 일하다가 서던캘리포니아대(USC)에서 경영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1971년 한국투자금융(하나은행 전신)에 입사해 1991년 하나은행 전무, 1997년 하나은행장을 역임했고 2005년부터 하나금융지주 회장을 맡았다. 2003년 CNN으로부터 '차세대 아시아 리더'로 선정됐고, 2009년 미국 아시아 소사이어티로부터 '국제 비즈니스 리더십 어워드'를 수상하기도 했다.

[정지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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