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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2 (일)

욕설·성희롱 콜센터 악성 고객, 이제 음성인식 인공지능이 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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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짜고짜 반말로 하는 사람이 많아요. ‘안들려? 너 이름이 뭐냐, 됐어, 다른 사람 바꿔’라고 하거나, ‘너 귀가 어떻게 된거 아냐? 병원부터 가봐’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지요. 뭐라고 대답할 수 없었습니다.” (17일 발간된 서울노동권익센터 자료에 나온 콜센터 상담원 인터뷰 내용)

지금까지 콜센터 노동자들은 욕설과 인격모독, 성희롱, 협박을 일삼는 악성 민원인들의 손쉬운 먹잇감이었다. 상담원들이 감정노동으로 인한 피해를 호소하며 일을 그만두는 경우도 많다. 현재 콜센터를 운영하는 기업들은 악성민원고객을 분류해 자동으로 상담을 종료하도록 하는 등의 조치를 취하고 있지만 대개는 3회 정도 반복되어야 가능한 조치이다. 상담이 이뤄지고 일정 정도까지는 욕설과 성희롱을 견뎌야 하는 문제는 해결되지 않은 상황이다.

고객이 욕설과 폭언 등을 할 경우 인공지능이 자동으로 텍스트 기반의 상담으로 넘어가게 하거나, 악성 고객을 대응하는 전문 상담사로 연결해주면 감정노동의 고통도 줄어들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수준의 음성인식을 구현할 수 있는 인공지능(AI)이 개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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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는 25일 서울 우면동에 최근 문을 연 ‘AI 테크센터’에서 기계학습 알고리즘인 ‘딥러닝’(Deep Learning) 기술을 적용한 인공지능 콜센터 기술을 선보였다. 고객 음성을 텍스트로 변환하고, 주제와 핵심어를 추려 자동 분류할 수 있는 기술이다. 사투리도 들을 수 있도록 음성인식 정확도를 크게 높였다.

이 기술을 상용화하면 콜센터 직원들이 감정 노동에 노출되는 걸 줄일 수 있다. 고객이 욕설을 할 경우 이를 인식한 인공지능이 ‘욕설 고객’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상담사에게 자동으로 연결시키기 때문이다. 또 고객의 음성을 자동으로 글자로 변환하기 때문에 음성을 듣는 스트레스를 줄일 수 있고, 텍스트로 전환된 불만사항을 보고 처리할 수 있다. 이럴 경우 상담사가 상담을 위한 메모를 작성할 필요도 없어 노동 강도도 개선할 수 있다. KT는 향후 이 시스템을 자사 콜센터에 적용할 계획이다.

KT ‘AI 테크센터’의 음성평가실 류창선 팀장은 “콜센터 직원들은 감정노동에 따른 고통 때문에 이직률이 높다”며 “직원들이 감정노동으로 고통받고 있는 상황에서 기술로 회사 내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라고 말했다.

음성인식은 생활밀착형 인공지능 서비스를 위한 핵심 과제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연구센터에 있는 음성 평가실은 마룻바닥부터 소파, 대형 TV, 카펫까지 일반 아파트와 동일한 구조를 갖춰놓고 있다. 평가실에 들어가려면 집에서처럼 거실 앞에서 신발을 벗어야 했다. KT는 이곳에서 콜센터로 들어오는 고객의 요구를 인공지능이 인식해 적합한 답을 찾아내는 음성인식 ARS 기술을 선보였다. 시연자가 “핸드폰을 잃어버렸는데 전화번호는 ○○○이야. 분실신고를 해줘, 마지막 위치는 어디였어?”라고 물으면 음성인식 ARS가 “분실신고가 접수됐습니다. 마지막 위치는 KT 연구개발센터입니다”라고 답하는 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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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창선 팀장은 “음성인식 기술의 발전을 위해서는 오랜 실제 경험과 핵심 기술, 양질의 데이터와 이를 학습할 컴퓨팅 자원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하루에도 수천건씩 음성 데이터를 학습하는 슈퍼컴퓨터는 연구센터 내 테크 존에 있다. 이곳의 슈퍼컴퓨터는 에너지 효율을 고려한 전 세계 슈퍼컴퓨터 순위(Green Top 500)에서 10위권, 연산량 기준으로는 세계 400위권으로 기존에 일주일 걸리던 음성 데이터 학습을 하루만에 끝낼 수 있다.

슈퍼컴퓨터는 여러 고객센터에서 모은 음성 데이터를 학습하거나 지리 정보, 교통 정보 등을 분석해 기계학습과 인공지능 서비스에 활용한다. 콜센터의 녹취 데이터는 고객들이 어떻게 행동하는지, 원하는 바는 무엇인지 빠르게 파악하고 대응하는 인공지능을 개발하는 데 활용된다. 국내 최대 규모의 고객센터를 보유한 KT는 이 점에서 이점이 있다.

인공지능을 콜센터에 결합하려는 움직임은 금융업에서도 보인다. 지난 17일 AIA생명은 보험업계 최초로 인공지능에게 보험상품 불완전판매 여부 확인을 맡기는 ‘인공지능 콜센터’를 선보였다. IBM의 슈퍼컴퓨터 ‘왓슨’ 기반의 인공지능 플랫폼 ‘에이브릴’을 기반으로 한 것이다. 에이브릴은 한국어 학습을 마친 상태로 앞으로 보험업 관련 내용을 학습할 예정이다. SK텔레콤도 음성인식을 콜센터에 활용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인공지능이 콜센터의 상담원을 대체하는 일은 상당 기간 없을 것이라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기본적으로 고객들은 사람하고만 대화하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한 업체 관계자는 “고객들이 콜센터에 전화했을 때 다양한 질문과 요구를 하는데 인공지능이 이에 답하려면 굉장히 높은 수준의 음성인식과 인공지능 기술이 필요하다”면서 “틀에 박힌 대답만 하면 사용자들은 곧 짜증을 내기 때문에 인공지능을 채용한 콜센터라 하더라도 사람을 직접 대체하기는 힘들다고 본다”고 말했다.

<주영재 기자 jy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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