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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취재파일] 삼성의 '비근무 추정 시간표'를 전격 해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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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로자 동의 없이 '분' 단위 동선 파악한 것으로 드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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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11일 A(28) 씨는 삼성전자에 첫 출근했습니다. 신분은 비정규직입니다. 그래도 자랑스러웠습니다. 삼성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넉 달째인 5월 10일, A 씨는 해고 통보를 받았습니다. A 씨를 직접 고용한 파견 업체를 통해서입니다. 근태가 나쁘다는 이유로 삼성이 계약 해지를 요구했다는 겁니다.

A 씨는 납득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삼성전자 인사팀 관계자 B 씨를 찾아갔습니다. B 씨는 A 씨에게 엑셀로 정리된 문서 한 장을 보여줬습니다. 거기엔 A 씨의 사내 분 단위 동선이 기록돼 있었습니다. 바로 ‘비근무 추정시간표(비근무 추정표)’가 세상 밖으로 나온 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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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근무 추정표’는 A 씨의 첫 출근 일부터 시작됩니다. 1월 11일 09시 37분. A 씨가 사무실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앞 게이트를 통과한 시각입니다. 17시 55분. 퇴근 시각이지요. 10시 5분~44분까지 R3지하(사내 지하 커피숍)에 있던 걸로 추정된다고 나와 있습니다. 14시 14분~15시 6분까지 R3 1층(사내 1층 커피숍)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이걸 근거로 삼성은 비근무 추정 시간을 ‘추정’해냅니다. 추정치를 보니 1시간 31분이라고 나와 있네요.

1월 24일을 보겠습니다. 14시 3분~10분. 피트니스에 다녀왔다고 적혀 있습니다. 비근무 추정 시간은 7분입니다. 쭉 내려가서 3월 21일도 살펴보지요. 이날은 비근무 추정 시간이 가장 많은 1시간 32분이나 됩니다. 08시 20분~48분까지 피트니스에 다녀왔고, 09시 32분~42분까지 1층 커피숍, 15시 6분~16시까지 커피숍을 다녀온 시간 모두를 합한 시간입니다. 분 단위로 직원의 동선을 파악할 수 있는 삼성의 시스템. 이게 분 단위 감시가 아니면 도대체 뭘까요? 강문대 노동전문 변호사는 “과도한 감시이자 사찰한 정황”이라고 잘라 말합니다.

삼성 홍보팀 관계자는 취재진에게 “A 씨는 첫 출근부터 지각한 사람”이라고 말했습니다. 과연 그럴까요? A 씨는 첫 출근 당일 파견 업체로부터 사무실 옆 건물에 있는 ‘방문자 센터’를 바로 찾아오라는 지시를 받았습니다. 08시 10분쯤으로 취재진이 확인했습니다. 그곳에서 파견 업체 관계자를 만나 근로 계약서를 씁니다.

이후 삼성전자 인사팀 관계자 C 씨가 사원증을 갖고 내려옵니다. A 씨가 C 씨를 따라 인사팀으로 올라간 시각이 바로 09시 37분입니다. 자, A 씨는 삼성의 주장대로 정말 첫날부터 09시 37분에 지각 출근한 근태 불량자일까요?

첫 출근 당일 커피숍에서 1시간 31분이나 ‘농땡이’를 부렸다는 기록도 살펴보지요. A 씨는 이 커피숍들로 데려간 정규직 동료(선후배)들을 정확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업무와 관련돼 해준 조언들도 떠올리고 있습니다.

그곳에서 비정규직인 자신에게 보여준 그들의 호의 역시 가슴에 새기고 있다고 합니다. 근무하다 동료들과 커피 한 잔 마시고, 담배 한 대 태우고 들어오는 시간들을 모두 근무 시간에서 제외한다면 그 어떤 대한민국 노동자가 자유로울 수 있을까요? 그렇다면 과연 A 씨와 함께 커피숍을 다녀온 정규직들도 비근무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을까요 삼성은?

‘비근무 추정표’대로라면 A 씨가 피트니스에 들른 횟수는 모두 11번입니다. 가장 오래 있었던 시간은 31분입니다. 1월 24일 14시 3분~10분 동안 7분 보이시죠? 2월 7일 10시 8분~20분 동안 12분하고요. 이 두 번이 A 씨가 근무 시간에 피트니스에 다녀온 횟수입니다.

A 씨는 “처음 7분은 부서에서 견학을 다녀오라고 했던 시간이고, 두 번째는 등록을 하러 다녀왔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근무 시간에 방문한 게 맞아서 잘한 건 아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나머지 9번은 모두 출퇴근 전후로 운동이 아니라 간단히 샤워를 한 시간들입니다. 그리고 A 씨는 이 시간들조차 추가 근무로 분명히 채워놨습니다.

2월 1일부터는 삼성이 A 씨 같은 통번역사들에게도 탄력 근무제를 확대 적용한 때라고 주장하는 시점입니다.(이에 대한 사실 여부는 추가 취재파일에서 밝히겠습니다.) A 씨가 피트니스를 다녀온 시간대를 보더라도 점심시간 한 번을 제외하고 모두 상식적인 근무 시작 시간인 09시 전이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A 씨가 09시, 10시에 출근하더라도 주 40시간만 채우면 되기 때문에 그 시간 피트니스에서 샤워를 한다 해도 삼성은 A 씨를 비난할 수 없습니다. A 씨는 ‘비근무 추정표’가 제시하고 있는 것처럼, 그리고 삼성이 주장하는 것처럼 “근무 시간에 피트니스에서 밥 먹듯 운동이나 하는 파렴치한 사람”이 아니란 말입니다. 이는 ‘체류 시간’ 항목을 보기만 하면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주 5일 동안 40시간 근무 시간을 채우지 못한 때는 단 한 차례도 없었습니다. 4개월 여 근무 기간 동안 말이죠.

삼성이 무슨 말을 해도 ‘비근무 시간표’를 직접 만든 사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표가 비정규직 해고(계약 해지)의 근거가 된 사실도 변하지 않습니다. 취재진은 그래서 삼성에 물었습니다. 왜 이걸 만들었느냐고 말이죠. 삼성의 답은 이랬습니다.

“2월 1일(탄력 근무제 시행일) 이전부터 A 씨를 포함한 나머지 5명의 비정규직 통번역사들의 근태가 좋지 않다는 얘기가 많이 나왔다. 그래서 시행일부터 6명 중 한 명(A 씨 아님)의 근태를 확인하는 작업에 들어갔다. 그랬더니 상당히 문제 있는 걸로 나왔다. 하여 6명 모두의 근태를 다 확인했다. 대략 3월까지 마무리했다. A 씨는 다른 5명에 비해 상대적으로 좋긴 했지만 문제가 있는 걸 확인했기 때문에 파견 업체에 전부 계약 해지를 요구했다.”

약 두 달 동안 비정규직의 ‘분’ 단위 동선을 확인했다는 얘기입니다. 문제는 이들의 동의를 전혀 받지 않았다는 것이지요. 국제노동기구의 ‘근로자 개인정보 보호를 위한 행동 준칙’에 따르면 전자감시를 포함한 노동 감시는 사전에 감시 목적과 사유, 기간, 방법, 수집할 정도 등을 알려야 합니다. 정규직이이든 비정규직이든 다 포함됩니다. 또한 동의를 받더라도 지속적 감시를 하려면 보건 안전이나 재산 보호를 위한 경우로 한정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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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은 ‘비근무 시간표’를 개인의 동의도 없이 만들었습니다. 특히 비근무 ‘확신’도 아닌 ‘추정’을 한 뒤 비정규직들에게 소명의 기회도 주지 않은 채 해고(계약 해지)를 통보했습니다. 이게 쉬운 해고가 아니면 도대체 어떤 게 쉬운 해고입니까?

삼성은 해당 보도가 나가기 전 여러 차례에 걸쳐 취재진에게 전화했고, 직접 찾아와 해명과 설득을 했습니다. 취재진의 팀장과 데스크에게도 마찬가지였고요. 네. 맞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SBS가 해당 보도를 내보낸 건 그들의 해명을 하나하나 검증할수록 비정규직을 상대로 ‘잘못된 추정표’를 갖고 ‘쉬운 해고’를 했다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과연 삼성은 같은 사안에 대해 정규직들에겐 어떤 잣대를 갖고 있을까요. 보도 이후 삼성은 ‘심각한 왜곡 보도’라고 주장하며 반박하고 있는데 정말 취재진이 왜곡 보도했을까요? 이어지는 다음 번 취재파일에서 상세히 다뤄드리겠습니다.

▶ '분' 단위 동선 내밀며 "회사 떠나라"…비정규직 내쫓은 삼성

[조기호 기자 cjkh@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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