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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9 (수)

사람들은 진짜 자신의 미래를 알고 싶어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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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곽노필의 미래창]

대다수가 ‘알고 싶지 않다’고 답변

후회 피하려는 ‘고의적 무지’ 심리

미래예측 기술에도 가이드라인을



한겨레

미래의 긍정적 사건에 대해서도 다수가 알고 싶지 않다고 답변했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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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신화에 등장하는 카산드라는 불행한 예언자다. 올림포스의 신 아폴론한테서 예지 능력을 받은 카산드라의 눈에는 트로이의 멸망, 아버지의 죽음 같은 끔찍한 미래의 일들이 선명하게 들어왔다. 하지만 사람들은 미래에 닥칠 무서운 일들을 경고하는 카산드라를 미친 사람 취급했다. 아무런 대비도 없이 공포의 미래를 지켜봐야만 하는 카산드라는 예지력을 갖게 된 걸 후회했지만,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는 일이었다.

오늘날 카산드라가 다시 나타나, 나의 미래를 알려준다고 하면 어떨까? 미래의 일을 미리 짚어내는 능력은 인류가 오래전부터 꿈꿔왔던 것이다. 동양의 주역, 서양의 점성술 등이 일찌감치 탄생한 배경이다. 오늘날에도 널리 이용되는 점술법들은 예지력에 대한 갈망이 그만큼 강하다는 걸 뜻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실제로는 대다수 사람들이 미래를 알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특히 죽음처럼 부정적인 경우엔 더 그렇다고 한다. 독일 막스플랑크 인간개발연구소가 독일과 스페인의 성인 2000명을 대상으로 한 연구 결과 내린 결론이다. 이 연구에서 응답자의 85~90%가 미래의 부정적 사건에 대해 알고 싶지 않다고 답변했다. 40~70%는 긍정적인 사건에 대해서도 알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어떤 경우든 자신의 미래를 알고 싶다고 답변한 사람은 단 1%였다.

왜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 연구진은 이렇게 설명한다. “사람들은 미래에 일어날지도 모를 일을 알게 됨으로써 받는 고통과 후회를 피하고 싶어한다. 그리고 지금의 즐거움을 계속 유지하고 싶어한다. 그런 심리가 ‘카산드라의 힘’을 오히려 거부한다.”

연구진은 설문 참가자들에게 긍정적인 것과 부정적인 것 5가지씩 총 10가지의 미래 상황을 가정하고 그것을 미리 알고 싶은지 물어봤다. 자신, 또는 자신의 배우자는 언제 사망할까? 뭣 때문에 죽을까? 결혼생활은 이혼으로 끝날까? 시청중인 축구 녹화경기 결과를 미리 알고 싶은가? 올 크리스마스엔 무슨 선물을 받게 될까? 죽음 이후에도 삶이 있을까? 외국에서 사온 보석이 진짜인지 테스트해 보고 싶은가? 거의 모든 질문에서 대다수가 답을 알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단 하나의 예외가 있었다. 태아의 성별에 대해서만은 대다수가 알고 싶어했다.

연구진은 사람들의 이런 심리를 ‘고의적 무지’로 설명했다. 답을 알면 후회할 것 같아 의도적으로 외면한다는 것이다. 연구진은 “바람직하지 않은 미래의 사건을 알게 될 때 찾아오게 될 ‘후회’라는 부정적 감정을 피하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크리스마스 선물 같은 즐거운 이벤트의 기쁨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도 고의적 무지를 선택하는 경향을 보였다”고 설명했다. 응답자들의 나이, 학력 등은 다양했지만 ‘고의적 무지’의 패턴은 두 나라에 걸쳐 매우 일관됐다고 한다.

미래의 사건이 일어날 때까지 남은 시간의 길이도 영향을 준다. 사건이 더 가까울수록 고의적 무지의 확률이 높았다. 예컨대 노인들은 젊은이보다 자신이나 자신의 배우자가 언제 죽을지, 뭣 때문에 죽을지에 대해 덜 알고 싶어했다.

과학의 발전에 힘입어 인간의 미래 예측력은 점점 높아지고 있다. 예컨대 유전자 분석이 가능해지면서 우리는 이제 자신의 미래 건강 위험도를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게 됐다. 일부 유전자 분석업체는 이미 그런 서비스를 시작했다. 미 식품의약청은 지난봄 유전자분석 업체인 23앤드미의 ‘가정용 유전자 검사 키트’ 시판을 승인했다. 이에 따라 사람들은 10여가지 질병군과 관련한 유전자를 보유하고 있는지 간편하게 알 수 있게 됐다. 149달러(약 17만원)짜리 키트를 사, 용기에 자신의 침을 담아 보내면 몇주 후에 검사 결과를 받는다. 이런 정보는 인생에서 중요한 결정을 내리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그러나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당사자가 그 정보를 담대하게 받아들이지 못할 경우엔 오히려 심리적 혼란만 증폭시킬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미래를 알고 싶어한다. 알고나면 후련해질까? 오히려 그다음엔 ‘후회’라는 또 다른 문제에 맞닥뜨릴 수 있다. 우리가 알아낸 것은 우리가 진짜 알고 싶어하는 것일까? 유전자 분석 결과는 100% 정확할까? 만약 미래를 잘못 읽어낸 것이라면? 어정쩡한 미래 예측은 자칫 돌이킬 수 없는 결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요즘 로봇과 인공지능이 향후 인간에게 해가 되지 않도록 구체적인 개발 규범을 마련하자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그래서 카산드라 기술에도 같은 질문을 던지게 된다. “미래 예측 기술의 개발과 활용에도 오남용을 방지하기 위한 가이드라인이 필요한 것은 아닐까?”

곽노필 선임기자 nop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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